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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 |
[서평] 스승으로 다가온 선비정신의 실천자들
관리자(2007-03-14 11:22:51)
스승으로 다가온 선비정신의 실천자들.....『벼슬길의 푸르고 맑은 바람이여』 이희권ㅣ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요즘 우려되는 하나의 세태(世態)가 출판물이 홍수를 이룬다는 것이다. 범람하는 그 많은 책들 중에는 우리에게 유익한 읽을거리를 제공해주는 것도 있지만, 그 중에는 공해(公害)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는 데에 오늘의 심각성이 있다. 사실 의식있는 독자들 간에는 읽을거리 있는 책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자조적(自嘲的)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세상이 돼버렸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출간된 최승범님의 『벼슬길의 푸르고 맑은 바람이여』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한 분들 중 한 평생을 올곧고 소박·절실하며, 청렴·결백하게, 그리고 강직한 성품으로 사시에 푸른 대나무처럼 절개있게 살았던 청백리(淸白吏)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고결(高潔)한 삶을 정감있게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저들 청백리들은 한결같이 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 구차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예(禮)를 갖추어 예에 맞게 나아가고, 의(義)에 따라 의롭게 물러나는 선비정신의 실천자들이었다. 결코 속스런 명리(名利)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청아(淸雅)하고 격조(格調)높은 삶을 누린 가히 존경스럽기까지 한 사람들이었다. 오늘의 우리들이 그 시대의 선비처럼 살지는 못한다 해도, 그리하여 비록 속세의 추이(推移)에 따라 황금을 쫓는 생활을 한다 해도, 우리들 내면에는 저들의 올곧은 삶, 청렴·결백한 삶에 찬사를 보내며 그를 동경하는 맑고 깨끗한 영혼이 있다. 이 책은 저자 스스로가 앞서 간 청백리들의 삶을 동경하며, 우리들 내면에 잠자고 있는 맑고 깨끗한 영혼을 깨울 요량으로 저술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마광(司馬光)은 독락원기(獨樂園記)에서, 그가 평일 독서할 때 ‘위로는 성인을 스승으로 하고, 아래로는 여러 어진 이를 친구로 한다(上師聖人 下友群賢)’하였는데, 나(評者)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어진 이들을 스승으로 만난 느낌이었다. 이 책에 대한 평자의 느낌은, 첫째,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소재(素材)였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야흐로 황금만능의 시대여서, 모두가 어떻게 많은 돈을 벌어 욕정을 누리며 살까하는 생각에 매몰(埋沒)되어 온통 재부지향적(財富志向的)이 되어버린 것이 작금의 시대상이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회뢰(賄賂)와 횡령과 부정축재사건 등이 이를 말해준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 가치관을 상실하고, 정신적 지향(志向)을 잃고 방황하는 이 시대인에게, 이 책은 우리가 진정 소중히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정치인들에게도 금과옥조(金科玉條)일 팔조계(八條戒)를 임금에게 바쳤던 홍석주(洪奭周), 사시 푸른 대나무의 기품을 지녔던 박신규(朴信奎), 천성이 고결하여 백이(伯夷)의 지절(志節)로 칭송되었던 조원기(趙元紀) 등 나라와 겨레를 위한 한 평생을 산 사람들, 한 평생의 삶이 백지와 같이 청렴·결백하였던 사람들의 일생은, 우리를 비추어볼 자기성찰의 거울이었다. 옛말에 어진 이는 어짊을 보고, 지혜로운 이는 지혜로움을 본다(仁者見仁 知者見知)는 말이 있다. 황금만능사회의 병폐를 직시(直視)한 저자가 물질이 아닌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시도한 의도적인 집필이었다는 느낌을 짙게하는 저서였다. 둘째, 폭넓은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히 검증한 객관적 저술이었다. 한 인물의 삶을 그려 그 일생을 논한다는 것은 원래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 인물이 40여 인에 이르러서야 말할 것도 없다. 역사를 전공했다는 사람들조차도, 어떤 책들이 이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지, 이들의 삶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어떤 책을 참고해야할지, 우선 겁부터 나고 망설여질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을 기본사료로 하고, 《연여실기술》, 《국조인물고》, 《매천야록》, 《석담일기》, 《사계전서》 등 수많은 저술과 문집들을 참고하였으며, 비명(碑銘)·신도비(神道碑)까지를 확인하였고,《조선왕조실록》의 사론(史論)과 졸기(卒記)를 검토하여 인물들에 대한 객관적 서술에 주력함으로써, 훌륭한 한 편의 인물사를 완성한 느낌이다. 박처륜의 예에서 보듯이 확인되지 않는 박처륜의 전라감사 재임기간을, 김안국이 지은 묘표(墓表)를 통하여 추정해낸 것이며, 김경선의 전라감사 도임이 《호남도선생안》에 1842년 9월 3일로 되어있는 것을, 《헌종실록》을 상고하여 김경선이 전라감사에 임명된 것이 그해 11월 20일임을 확인하여 바룬 것 등은 검증에 철저하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셋째, 일화의 발굴·소개로써, 때로는 시(詩)로써, 한 인물의 성품과 삶의 자세를 드러낸 감동적인 저술이었다. 인물을 논함에 있어 빠지기 쉬운, 가문과 학문의 정도와 관력(官歷)의 소개에 인품에 대한 공허한 찬미로 일관하는 서술에서 탈피하여, 저자는 공허한 찬미보다는 시와 일화를 조화롭게 곁들여 흥미로우면서도 현실감있게 삶의 모습을 십분 드러내었다. 김안국의 청렴·결백했던 삶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의 거처에 베이불과 나무베게뿐이던 한사(寒士)의 모습을 전해주는 일화를 원용하였고, 김양진의 올곧은 성품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가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추존(追尊)을 반대하다가 하옥되어 참혹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그가 전라감사를 마치고 귀경할 때 뒤따르던 말의 새끼를 전라도의 것이라며 돌려주었다는 일화를 소개한 것이 그 좋은 예다. 그 중에서도 이약동의 금을 돌처럼 여겼던 청백한 삶을 증언하기 위해서, 그가 임지(제주도)를 떠나면서 평소 사용하던 물건은 물론 말채찍마저도 관청의 기둥에 걸어놓고 떠났다는 말채찍 일화며, 제주도 사람들이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어준 갑옷을 바다에 던졌다는 투갑연(投甲淵)일화는 그 백미(白眉)였다. 넷째, 정철을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은 이 책이 지니는 옥의 티이다. 정철이 가사문학의 제일인자라는 것과 그의 시인으로서의 천재성은 인정되지만, 그는 청백리도 아닐뿐 아니라, 정여립 모반사건 때 역옥(逆獄)을 다스리던 위관(委官)으로서 역옥을 무고(誣告)와 날조로 점철된 무옥(誣獄)으로 이끌어 물경 천여 명의 희생자를 낸 장본인이었다. 《선조실록》의 졸기에도, ‘정철의 성품이 편협하고 말이 망령되며 행동이 경망하여 죽을 때까지 비방이 그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을, 푸르고 맑은 바람과 같은 기상으로 올곧게, 청렴·결백하게 산 분들의 삶을 기리는 자리에, 나란히 수록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자기성찰의 거울로서 꼭 한 번 읽어두어야 할 책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 이희권/ 전북대학교에서 문학석사를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전북대학교 교수로 일했다. 현재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조선시대사학회 평의원,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주요 논저로는 <조선후기 지방통치 행정연구> <조선 전기의 공관 연구> <고려 군현제와 지방통치정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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