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 |
[소리-워매드] 워매드 타고 세계로 나가라
관리자(2006-10-14 10:38:40)
글 | 배석호 공연마케팅 컨설턴트
워매드가 소리축제 속으로 들어왔다? 그렇지 않다. 소리축제가 워매드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언어의 뉘앙스 차이가 금년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본 전북도민들 인식의 차이여야 한다. 소리축제가 워매드를 도입한 것 같지만 그것은 ‘얼핏보기’이다. ‘알고보니’로 보았을 때, 비로소 워매드에서 소리축제를 도입했음을 보게 된다.
‘알고보니’는 소리축제 진의파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리축제가 지역축제의 하나로 머물고 말 것인지 아니면 세계적인 음악시장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우리 관심은 축제의 경제성이다. 왜냐고? 축제의 산업화가 벌써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 이후 전국엔 지금 1800여개의 축제가 생겨났지만 쓸 만한 축제는 두서너 개 정도에 불과하니 말이다. 언제 잔치가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낱 지역 안에만 머물며 도민들의 혈세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알고보니’와 ‘얼핏보기’
에딘버러 페스티벌이 에딘버러를 먹여살리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잘츠부르크를 먹여살리고, 아비뇽 페스티벌이 아비뇽을 먹여살리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바이로이트를 먹여살린다. 그렇듯 워매드를 타고 한국의 소리가 세계로 나갈 때, 전주세계소리축제도 전주를 먹여살릴 때가 올 것이다. 그러려면, 이제는 ‘얼핏보기’에서 벗어나 ‘알고보니’로 바꿔야한다. 그런데 여섯 번째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여전히 ‘알고보게’ 해주지 않았다. 여전히 ‘얼핏보기’ 안에서 헤매고 있었다.
경제학 용어 중에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란 말이 있다. 어떤 선택을 위해 포기했던 다른 하나의 가치를 말한다. 소리-워매드로 인한 기회비용은 얼마였을까? 만약에 소리축제가 워매드를 선택하지 않고 그 비용으로 다른 공연을 했다면 얼마만한 가치 효과를 올렸을 것인가? 객석 점유율이나 유료입장객이 작년에 비해 높았다고 한다. 언론의 관심도 높았다. 특히 중앙 및 해외언론사들의 스포트라이트와 정치 문화계 인사들의 방문, 해외 예술가들의 방문이 눈에 띠게 늘었다.
소리-워매드의 기회비용은 우선 행사 자체만으로도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리-워매드의 기회비용은 지금부터 창출 될 것이다. 제6회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끝난 2006년 9월 24일 이후부터 다음해 소리축제가 개막되기 전까지 대략 3백 며칠 동안 계속될 것이다. 우선 소리축제에 출연했던 국내 아티스트들이 이 기간 동안 계속 세계 각국의 워매드에 초청받아 나가야한다.
워매드(WOMAD, The World Of Music, Arts and Dance)는 연중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통상 수십개국이 벌이는 월드뮤직의 향연이다. 이번 소리축제에서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19팀에서 100여명의 음악가들이 무대에 섰다. 이렇듯 소리축제가 워매드를 유치한 것은 소리축제가 워매드로 나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선택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예산이 들고 지역주민들의 정서가 부합(附合)되어야 한다. 또 시간이 필요하고 노련한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이번 소리-워매드에서 이런 면들이 원만하게 잘 충족되었는가? 그것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우선 예산상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우리가 너무 ‘예술가들에 대한 예우’를 짜게 해주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너무 아끼고 절약해서 행사를 치러냈다. 누가 바이어인가를 봤을 때 바이어에게 각박해 보이는 인상은 경영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대미술과 음향, 조명 등의 하드웨어 부문과 전문 인력의 투입 문제에서도 고급화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연예술에서 기술적인 노하우는 우선권을 점거하는데 좌지우지될 만큼 큰 것이다. 홍보비와 스태프(Staff)를 위한 교육과 훈련비용에 인색하면 그만큼 더 큰 마이너스 요인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보다 세련된 진행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가 요구되었다.
특히 엄청난 숫자의 외국인 예술가들의 입국을 위해서는 사전에 충분한 예산을 세워둘 필요가 있었다. 화물 이동경비라든지 숙식비 등 작은 것을 아끼려다 더 큰 것을 놓치게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화의 산업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적은 예산으로 너무 큰 행사를 치르려는 것은 올바른 투자법이 아니며 욕심일 수 있다. 외국 유명 뮤지컬 한 편 제작비가 1백억원대, 외국 유명 오케스트라 초청비가 10억원대를 호가하는 세상이다. 금전 만능주의는 아니더라도 금전 지혜주의는 필요하다.
워매드, 주목할 만한 소리들
워매드 아티스트들은 음악의 지구촌시대를 선포한다. 이들에게 모든 국적은 중요한 소재가 된다. 종족음악의 본능적 욕구를 현대의 정서와 과학으로 버무린 퓨전 중의 퓨전이 워매드에서 전개된다.
필자가 워매드의 예술성을 신뢰한 것은 다라 지(Daara J)의 ‘에스페란짜’를 들으면서였다. 사전에 배포된 다라 지의 음반 속에서 이 곡을 듣고 ‘바로 이거다’하는 확신이 들었다. 세네갈의 힙합 레게음악 그룹인 다라 지는 아프리카적 요소가 아니라 이제는 세계적 요소의 랩으로 우리들을 단박에 자신들의 공감대 속으로 끌어들였다.
구오 유에(Guo Yue)는 중국 피리 연주가로 매우 신선한 멜로디를 선사했다. 영화 ‘마지막 황제’와 ‘킬링필드’ 등에서 명상적 선율로 휘감던 그의 음악은 이제 무대에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려내고 있었다. 그는 중국피리를 들고 세계음악시장에 나가 성공한 케이스다.
코코 음바시(Coco Mbassi)는 카메룬의 여성 보컬로 타악기들을 배경으로 절묘한 목소리를 혼합해낸다. 그녀의 독특한 창법은 미니멀리즘 음악을 연상시킨다. 선샤이너스(Sunshiners)는 다국적 레게 음악그룹으로 이들에게 음악은 국경이 없었다. 팝의 레게화를 꿈꾸는 이들은 이번 소리 워매드 첫날부터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융첸 라모(Yungchen Lhamo)는 티벳의 소리꾼. 마치 구음처럼 번져가는 그녀의 목소리에 서구의 리듬이 얹어져있었다. 다소 극적이고 애절한 리듬에 읊조리는 듯한 대사는 티벳의 전통선율에서 떠온 것으로 신비함에 가득 차 있었다.
워매드의 공식 한국팀으로 참가한 공명과 들소리는 국내 관객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관객들과 워매드 관계자들에게 많은 박수를 끌어냈다. 상상력과 열정이 식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워매드는 현대예술의 정신적 지평을 열어주는 불꽃같은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지구촌 시대, 지구인들이 들어야할 국경 없는 음악을 들려줬다.
배석호 | <객석> 기자를 거쳐 94년 재창간 된 <월간음악> 편집장 역임. 클래식 음반잡지 <CD가이드>를 창간, 통권 제71호까지 발행했다. 23년 동안 음악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유럽의 주요 음악제와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