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 |
[판소리] 공공성과 문화적 파급력이 관건이다
관리자(2006-10-14 10:33:18)
글 | 권오성 축제평론가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이한 전주세계소리축제가 9일 동안의 소리 향연을 마무리했다. 개막식을 시작으로 해서 소리캠프, 다양한 실내외 공연 및 행사, 그리고 폐막 무대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일정이 끝난 것이다.
여러 우려 섞인 비판 속에서 여전히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정체성 및 방향성과 관련한 논쟁이 잠복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전국적인 가을 축제의 홍수 속에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치러낸 축제 관계자의 노고를 한번쯤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지친 심신을 달래면서 차근차근 지난 축제를 복기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럼 이번 축제에서 눈에 띄게 변화하며 관객을 맞은 부분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논의를 해보자. 잘 알려졌듯이 올해 축제의 가장 큰 변화는 1일 통합 입장권, 세·중·굿 소리캠프, 소리-워매드 페스티벌 등으로 압축된다.
우선 안정적인 수익 확보와 공연의 저변 확대를 노린 1일 통합 입장권 체계는 예년과는 달리 획기적으로 도입되었다. 성인 기준 1만원이면 하루의 모든 공연 및 행사를 보거나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최 측은 관람비용의 경쟁력을 어느 정도 갖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주최 측을 포함한 다수의 평가인 듯하다. 실제로 지난 24일 폐막일에 배포한 보도 자료를 보면, 객석 점유율이 전년도보다 10% 포인트 늘어난 75%였으나 입장권 수익은 7천5백만원으로 지난해보다 3백만원 가량 소폭 상승했을 뿐이었다.
무료 관람객을 포함 연인원 10만여 명이 다녀간 것으로 계산한다면, 어린이를 포함하여 10명 중 많아야 두 명이 입장권을 구입한 것이다. 아마 이런 식의 추세라면 100% 관객 점유율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입장권 수익은 1억원 내외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식으로 수익 구조가 계속해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한다면, 마케팅 능력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반드시 필요한 대목에 해당한다.
물론 이는 축제의 자생력을 논의하며 피해갈 수 없는 수지타산의 계산기를 두들겨본 것에 불과하다. 당연하게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문화적 함의와 성과를 고려한다면, 당분간 전라북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적자의 손익 계산서를 계속 감당해야 하는 건 자명하다. 가능한 한 양질의 공연을 도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향유할 수 있는 자리와 기회가 확대된다면, 문화의 공공성 차원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엔 여전히 찝찝한 복병이 숨어 있다. 수익 구조는 둘째 치고 문화적 파급 효과가 가시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규모를 축소해야 하거나 단명의 축제로 사라질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다 잠재력이 많은 도내의 다른 축제에 지원하는 게 훨씬 타당하다는 주장이 충분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이 점은 주최 측도 상당한 중압감 속에서 분명히 인지하고 있을 터이다.
이러한 상황은 아직까지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축제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연관한다. 특히 올해에는 무엇보다 지리적 여건이나 문화의 간극을 극복하려는 주최 측의 의지를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상당히 실망스런 부분이다.
예를 들자면, 14개 시군의 날을 적절히 나누어 정해서 초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어느 식으로든 자신의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공연 마당을 의도적으로 만들 필요도 있었다. 비록 관에 의한 동원이나 형식적인 구색 맞추기라고 비난 받을 여지가 다분하나, 내실 있게 기획하고 운영한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소리-워매드 페스티벌’의 경우는 공연과 워크숍을 통해 대중들과 쉽게 호흡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했는데, 보다 많은 도민들이 이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도록 폭넓은 홍보를 통해 관객 연계 방안을 면밀히 검토했더라면 축제의 인지도에 상당한 효과를 냈을 것이다.
이밖에도 전반적인 운영과 관련해서 꼭 지적할 부분이 있다. 일단 공연예술축제라고 한다면 쾌적한 관람 환경이 우선이다. 하지만 음식 및 상점 부스들이 공연장 바로 코앞까지 들어왔어야 했는가는 의문스럽다. 축제를 후원하는 업체가 다수여서 불가피한 측면도 없진 않았겠지만, 그 공간은 관람객들의 열린 소통이나 휴식의 장소로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였어야 했다.
그리고 소리와 악기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한 점도 못내 아쉬웠다. 일례로 23일 오후 연지홀 정원 마당에서는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면서 북을 손으로 두드릴 수 색다른 경험의 기회가 있었다. 적어도 한두 개의 체험 행사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고가며 두드리고 즐길 수 있는 상설 프로그램을 배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소리 축제의 취지와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보다 고유의 차별화 전략으로 그만인 행사는 없지 않을까 한다.
또한 어떤 공연은 분명 매진인데도 막상 현장에서는 빈 좌석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무리하게 좌석권을 받은 사람이 상당수 있었던 것 같은데, 입장권 한 장당 볼 수 있는 공연과 체험 행사를 현실에 맞게 제한하는 방안도 한번쯤 고민해야 할 듯하다. 같은 시간대의 공연은 하나만 선택할 수 있게 한다거나, 하루 동안 볼 수 있는 실내 공연(물론 야외 공연은 무제한)을 서너 편으로 제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요컨대 좌석권이 보다 많은 관객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한 가지 더, 프레스 센터의 효과적인 운영은 축제의 생생한 현장을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짐을 뜻한다. 그럼에도 이용자가 직접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와야 한다든가, 인터넷 회선도 충분치 않고 축제 스태프들과 함께 공간을 사용한다는 점은 꽤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다 원활한 기자들의 취재 활동을 위해서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사례를 적극 참고해야 할 듯하다.
한편 ‘세·중·굿 소리캠프’도 야심찬 기획과 함께 많은 이의 관심 속에서 올해 처음 도입했다. 세마치·중모리·굿거리 등 우리의 장단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캠프의 이름이 주는 독특함과, 놀이와 교육 등으로 축제 마니아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여느 축제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또한 향후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이끌 원동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행사의 일반적인 진행을 살펴보면, 참가비 2만5천원을 내면 식사(3끼)·1일 입장권·텐트가 제공되었고, 참가자들은 사물놀이·판소리·단가·단소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저녁에는 축제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밤에는 대동마당과 귀신 체험 등의 행사가 펼쳐졌다.
하지만 첫날 태풍의 간접적인 영향과 미숙한 운영 능력으로 기대한 효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조금씩 일정이 지나면서 좋아졌다고는 하나 전반적으로 볼 때 투입한 인력이나 애쓴 노력에 비해 주목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 이른바 ‘소리 마니아’를 집결시킬 수 있는 특화된 프로그램이나 홍보 능력이 부족했다. 첫 시도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내년부터는 면밀한 준비로 축제의 진정한 알짜 프로그램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폐막 공연에서 그 즉흥적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듯이, 상당한 내공과 잠재력을 가진 축제임에는 틀림없다. 세계 유수의 공연축제와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 것과 해외 것의 조화를 모색한 점도 진취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내적인 동력과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언제고 허물어질 수 있는 체질이 허약한 축제임을 부인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누가 뭐라 해도 체질 개선의 기본은 소리 축제 마니아의 양성화, 명실상부한 전북 대표 축제로서 위상 정립, 전국적인 경쟁력을 갖춘 특화된 프로그램 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러한 목표로 가기 위한 이정표를 세웠다면, 구체적인 실행 과정을 그리는 일은 주최 측의 지난하고 고된 작업으로 완성될 것이다. 소리 축제여, 부디 매년 가을만큼은 전북의 도민들을 행복한 축제의 계절로 인도하여 만끽하게 해 주시라.
권오성 |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했다. 한겨레 문화기획학교를 수료하고 문화연대 축제모니터링단에서 일한 바 있다. 현재 전북 익산에 거주하고 있으며 지역 축제 및 문화와 관련한 비평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지역 축제의 다양한 문화적 자산과 사회 통합적 기능, 축제 문화를 매개로 하여 사회의 변화 가능성도 탐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