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 |
[전주한옥마을의 ‘한옥’ ] 한옥마을 한옥의 방향
관리자(2006-10-14 10:06:40)
현대적으로, 하지만 원칙에 맞게
글 | 남해경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전주’하면 이제는 대표적인 명사로 ‘비빔밥’과 ‘한옥마을’이 떠오를 정도로, 한옥마을은 어느 정도 성공한 정책이 되었다. 사실 그동안 전주시와 시민들이 들인 정성과 노력을 생각하면 이러한 결과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조상님으로부터 받은 문화유산을 “박제된 문화재”가 아닌 “활용하는 문화재”로 보기 드물게 성공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실제로 한옥마을을 가보면 평일에도 유치원 어린이들이 견학 온 것을 비롯하여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이 답사를 오고, 일반인들도 관광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외국인들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전주의 명소가 되었다. 즉, 한옥마을은 전주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었으며 앞으로 문화관광적 차원에서 그 중요성은 최근에 시작된 “한 브랜드 사업”과 관련하여 더욱 강조될 것이다. 따라서 한옥마을이 전주시를 더더욱 대표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한옥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한옥마을에는 학인당을 비롯한 조선시대 후반기의 살림집, 경기전, 풍남문, 전주향교, 한벽대, 오목대, 이목대 등의 문화재, 전동성당과 그 주변의 근대건축, 그리고 최근에 건축되어진 한옥과 서양식 건물들의 현대건축이 혼재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기와지붕이 상징하는 한옥마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살림집의 경우 한옥마을에 있는 한옥들은 외관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집들이 비교적 많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옥마을에 건축하는 새로운 건축물을 보면 과연 한옥마을의 방향과 목표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건축활동을 통하여 한옥마을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정체성(identity)은 더욱 강화되면서 한옥마을이 완성되어 가야 할텐데 외형은 완성되는 반면 내부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지금의 한옥마을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집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아니 자세히 보지 않아도 관심을 가지고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 건축적 문제점들을 유형별로 보면 첫째, 지붕과 건물 몸체의 비례가 맞지 않은 집들을 볼 수 있다. 이는 한옥이 건물의 양식이나 공포에 의해서 지붕과 건물 몸체가 일정한 비례를 가지는데 반하여 한옥 마을의 일부 집은 2층을 변형시켜 설치하거나(다락, 창고 등) 바닥을 높이는 방식으로 한옥의 본래 비례를 파괴해 버렸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이상한 집이 되어 버렸다. 물론 현대인의 생활습관과 규모(scale)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면도 없지 않으나 그렇게 할 경우 건물의 전체적인 비례를 맞추어 조화를 도모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둘째, 건축의 조영기법과 건축재료의 문제이다. 본래 한옥은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짜맞춤의 예술과 기술의 총합체이다. 물론 현대에 이러한 기술은 활용되지 못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가구방식은 지켜져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고 변형된 구조가 많이 보인다. 특히, 최근에 서양식 목재가 유입되면서 가구법까지 같이 도입되어 전통적인 가구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재료에 있어서도 본래의 한옥에서 사용하는 재료가 아닌 치졸한 재료를 사용하여 한옥 마을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다. 일례로 지붕에 시멘트 기와나 동기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외벽의 시멘트 몰탈이나 조화되지 않는 색의 페인트, 외국산 낮은 품질의 목재는 한옥마을의 경관훼손의 주범이 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새마을 주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건축적인 논리와도 맞지 않아 건물의 외벽에 흙을 바르고 안에는 시멘트 몰탈로 마감하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셋째, 건물의 격에 관한 문제이다. 최근의 한옥마을은 보조금과 더불어 전통적인 가옥으로 신축하거나 보수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물론 전통적인 양식을 따르는 것은 좋으나 양반집에 있어야 할 건축적 요소(머름, 공포, 부재의 크기 칸의 변형 등) 들을 살림집도 아닌 화장실이나 행랑채에 적용하고 있어 한옥에 관한 개념의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넷째, 건물의 색채계획이다. 우리나라의 한옥이 가지는 전통적인 색채는 음양오행에 기본하여 이루어진다. 그런데 한옥마을의 색채는 현대적인 색채와 전통적인 색채가 혼용되어 국적과 시대불명이 되어 버렸다. 특히 색채는 외관으로 드러나는 제1의 시각적인 요소인데 색채계획이 이렇게 쉽게 처리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외에도 마을길의 바닥 포장문제, 무분별한 증·개축으로 인한 건물 외벽과 담장의 혼용문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 주민뿐만 아니라 단체나 기관에서 건축하는 한옥이 더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옥은 권위의 상징이나 부의 상징보다는 마을과 조화되는 즉, 인간과 집이 어우러지는 건축적 진리가 깨지는 한편 마을의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집단 한옥마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생활의 변화에 의한 한옥의 현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한옥의 현대화는 건축조영의 원칙이 지켜지는 가운데 현대화가 이루어져야지 이들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옥은 그 자체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옥마을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한옥의 원형(prototype)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즉, 한옥마을의 컨셉(concept)을 과거 학인당과 같은 조선시대의 살림집으로 결정할 것인지, 아니면 일제강점기의 한옥 살림집을 원형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이 지방(전라북도 또는 전주) 살림집의 원형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학인당과 같은 조선시대 살림집과 근대의 한옥을 혼용된 채로 보존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그런 살림집들의 원형을 연구하고 이를 기초로 하여 복원하고 정비하여 역사관광자원화 했을 때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이러한 예는 일본의 가나자와나 오사카의 근대건축 보존지역, 중국 상해의 외탄지역에서 쉽게 벤치마킹할 수 있으며 실제로 한옥마을을 조성하는데 일부는 참고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용인의 민속촌처럼 관광을 주목적으로 한 마을이 있는가 하면 순천의 낙안읍성처럼 역사자원을 관광자원으로 동시에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다음에 이들 컨셉이 지켜지는 가운데 새로운 건축을 하고, 보수를 하고, 리노베이션을 한다면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멋진 한옥마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운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어쩌면 운영이 가장 중요한지 모른다. 지금처럼 한옥건축위원회의 활동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주민들이 한옥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들이 마을의 전통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문가와 시민단체, 주민이 같이 참여하여 이러한 건축적 원칙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기반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오사카나 유럽의 경우 주민들 자체의 규정에 의해 운용되는 경우를 잘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헤이리 마을에서 성공한 예를 볼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컨셉을 다시 검토하여 재설정하고 이를 원칙으로 지켜나간다면 한옥마을의 역사성과 관광성을 동시에 겸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주민과 관광객으로부터 영원히 사랑받는 우리의 한옥마을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남해경 | 전북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 건축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전라북도 문화재 전문위원, BK21 평가위원, 학술진흥재단 심사위원, 의치학 전문대학원 출제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