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 |
[전주한옥마을의 한옥] 한옥의 어제와 오늘
관리자(2006-10-14 10:04:43)
한옥은 생활이다
글 | 이연노 건축공학박사
“韓屋”이라고 하면 “韓 민족의 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민족의 집을 한옥이라고 한다면 그 시대에 따라 매우 다양한 한옥이 있었을 것이다.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쉽게 접하는 수혈주거 역시 한옥이며, 역사시대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도 한옥이며, 현재 많이 건설되고 있는 아파트 역시 한옥의 일종이다. 이 모든 한옥이 우리역사의 집들이며 모든 집들은 시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화해왔다. 또한 생활방식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도 새로운 한옥들이 실험되고 세워질 것이다.
현대적 통념으로 한옥이라 하면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집을 지칭하고 있다. 이 한옥은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을 이용해 집을 지었다. 인근 산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이용해 뼈대를 만들고 뼈대에 살을 붙이듯 흙으로 살을 붙여 완성한 집이다. 한쪽에는 너른 마루를 두고, 또 다른 쪽에는 방들을 구성한 집이다. 거대한 지붕은 경사지게 만들고 이 위에 흙을 덮어 바탕을 만들고 기와를 얹은 집이다. 근래 들어 이런 집들이 다시 각광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옥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라면 하나의 건물 안에 방과 대청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에는 온돌이 깔려있고 대청에는 넓은 마루가 만들어져 있다. 무더운 여름에는 마루가 있어 시원하고, 차가운 한파에는 구들이 있어 따뜻하다. 그러나 한옥이 우리 역사에서 항상 이런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만은 아니다. 역사상으로 살펴본 온돌과 마루는 각각 그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건물에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지역에서 하나의 주택이 발굴되었다. 고구려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저택의 일부였다. 세 채의 건물이 발굴되었는데 두 채의 건물에서 구들시설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그 구들의 형태가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하던 방식이 아니었다. 방 전체가 아니라 한쪽 구석에만 “ㄱ”자 형태로 온돌을 높게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입식생활을 위주로 살았다는 것이다. 건물 내부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지 않으며, 바닥에 앉지 않고, 의자나 탁자를 사용하며, 구석의 온돌은 취침 시에만 사용하는 것이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 신라의 주택들 역시 모두 입식생활에 적합한 집을 짓고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입식”과 “좌식”생활은 아주 커다란 차이를 보이게 된다. 사람이 서고 앉는 차이만이 아니라 이에 따라 천장의 높이가 변화하며, 창의 높이가 달라지고, 가구의 형태가 달라지며, 난방방식이 달라지는 등 수많은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편 한반도 남쪽 지역 가야와 신라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건물들이 확인된다. 마루를 갖추고 있는 건물이다. 대부분 집 모양을 묘사한 토기들에서 확인되는데 중층 즉 2층으로 만들어진 건물의 모습이다. 하층은 비워져 있고 계단을 통해 상층으로 진입하는데, 상층의 내부 바닥은 마루로 만들어졌을 것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의 건물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확인된다. 이것이 일본에 전래되어 나라의 토오다이지‘東大寺’ 및 여러 고대 사찰의 보물창고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따로 존재하던 온돌과 마루는 고려시대 중반 경에 하나의 건물로 합체되기 시작하였다. 방의 일부에만 설치되던 온돌이 바닥 전체에 걸쳐 만들어지게 되었고, 따로 독립되어 존재하던 마루가 한 지붕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온돌과 마루가 같이 공존한다는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즉 입식생활에서 좌식생활로 생활패턴이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집에 들어설 때 신발을 벗게 되었고, 방바닥 및 마루바닥에 앉아 생활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택은 조선시대에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건축물의 뼈대가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지만 공간적으로 크게 변화하였다. 가장 커다란 변화는 주택이 남성의 공간과 여성의 공간으로 나뉘어진 것이다. 사랑채는 남성만의 공간으로 안채는 여성만의 공간으로 크게 양분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옥이 현재 우리가 통념상 알고 있는 한옥의 모습이다. 수천 년의 역사와 더불어 상황에 맞게 그 당시의 생활방식에 따라 만들어지고 변화한 모습의 결과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한옥의 모습이다. 이 땅에서 수천 년의 변화를 거쳐 우리에게 적합한 장점을 고루 갖춘 한옥이 우리 시대에 전래된 것이다.
나무와 흙으로 짓던 전통 방식의 한옥은 매우 훌륭한 친환경적인 건축이다. 여건만 충족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전통방식의 한옥을 짓고 생활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나, 현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이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집을 짓는데 사용할 나무의 고갈, 숙련된 장인의 부족 등 여러 여건들이 좋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한옥이 갖는 장점을 최대한 살린 집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어야한다. 또한 전통방식의 한옥 역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50년 사이에 우리의 생활방식이 급격히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점점 좌식에서 입식으로 생활패턴이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생활방식이 변했으니 집 역시 변화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집을 바꾸기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주택이 중요한 재산임에는 분명하나 재산 외에 더 다른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내가 평생 살아갈 집, 내 모든 역사가 진행되고 실현되는 집은 재산이라는 벽에 부딪쳐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현재 전해지는 전통 한옥은 모두 제각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건물이 지어지던 시기의 집주인이 어떤 의도로 집을 지었는지에 따라, 자손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활했는지에 따라 그 모습이 변화된 것이다. 최근 우리의 집은 건축가와 건설회사가 집을 짓는다. 집은 건축가가 짓는 것이 아니다. 집은 집주인이 짓는 것이며, 건축가는 그 집이 완성될 수 있도록 전문지식을 동원해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 집의 주인은 건축가도 건설회사도 아니며 내가 집주인이다. 우리가 전통 한옥에서 배워야 할 것은 형태적인 것보다 오히려 집에 대한 주인의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연노 |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계획을 전공했다. 현재, 고려대 와 동국대에서 강의를 하며, 서울시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