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 |
송이북어국의 향미·선미
관리자(2006-10-14 09:57:51)
올 들어 송이의 첫맛을 본 것은 강원도 ‘만해마을’에서였다. 송이철로는 아직 이른 8월 중순이었다. ‘현대시조 100년세계민족시대회’에 참석, 8월 13일, 만해기념관에서였다.
‘아침식사는 2층 다실(茶室)에서 있다’
는 무산(霧山 : 曺五鉉)스님의 귀띔으로 8시 다실을 찾았다. 식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서울대 김용직, 서강대 박철희, 중앙대 이영구 교수를 비롯하여 일본 쿄토시립예술대 나카니시 스스무, 이태리 포스까리대 비센싸 두루소, 타이완사범대 웬신후, 옌벤대 김해룡 교수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식탁은 간소했다. 김치·묵은나물무침·고춧잎볶이·가지나물, 생오이·된장이 찬의 전부였다. 이윽고 밥과 국이 나왔다. 상차림에 먼저 개운한 맛이 돌았다.
밥그릇 덮개를 열며 국그릇에 눈을 주자 북어국이다. 먼저 수저를 들어 국을 떴다. 국물을 맛보자 여느 북어국 맛이 아니다. 송이의 향그러운 맛이 입안을 넘실거리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국맛은 난생 처음이다. 이 국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엇이라고 해야할까.
-북어송이국
-송이북어국
재료의 분량으로 보아선 ‘북어송이국’이라 하겠으나, 국물 맛을 챙긴다면 ‘송이북어국’으로 송이를 앞세우고 싶다.
송이는 옛날에도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엔 구경만 하재도 보기 어렵고, 맛만 보자해도 금값이다. 앞자리에 앉은 나카니시 교수에게
‘이건 송이국(松 湯)이요’
하자, 곧 맛을 보더니 황홀해한 눈빛이다. 일본에도 송이가 있으나, 송이국의 맛은 처음이라고 한다.
강원도 평창이 고향인 <모밀꽃 필무렵>의 작가 이효석(李孝石)은 어느 글에서 였던가. ‘송이 맛을 보지 않고는 가을 맛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무던히도 송이를 좋아하였던 것 같다. 하기야 송이 맛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고려때 이인로(李仁老)의 송이를 읊은 5언절구도 떠오른다.
-‘간밤에 식지(食指)가 움직이더니/오늘 아침 기이한 것을 맛보겠네/원래 작은 언덕에서 나는 것이 아닌데/오히려 복령(茯笭)의 향기를 지녔네’
(昨夜食指動 今朝異味嘗 元非培 質 尙有茯笭香)
‘식지가 움직인다’는 말은 좋은 음식을 먹을 조짐을, ‘복령’은 버섯의 일종을 말한다. 이 또한 소나무의 땅속뿌리에 기생한다. 송이를 이인로는 한자로 ‘송지’(松芝)라 했다. 문헌에 따라서는 송이(松 , 는 목이 이), 송심(松 , 은 버섯 심), 송화심(松花 ), 송균(松菌, 菌은 버섯 균)이라고도 했다. 우리나라의 송이는 주로 적송(赤松)의 잔뿌리에 균근(菌根)을 형성하여 공생하다가 가을에 땅위로 돋는다고 한다.
나는 어린시절에 직접 송이를 따보기도 했다. 네가 자란 노봉(露峯)마을의 노적봉에서 였다. 저때만 해도 적송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북풍받이의 산비탈에서 어느해의 가을이었던가, 도도롬히 돋은 흙속의 송이를 따내기도 하고, 땅위로 솟아 갓이 퍼진 송이들 따기도 하였다. 저 송이로 끓인 송이국에는 북어 아닌 호박채가 들어 있었어도 한 대접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다.
만해마을 송이북어국의 맛은 지금 생각해도 입안을 넘실거리는 향기요 선미(仙味)다. 이래, 송이를 ‘채중선품’(菜中仙品)이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