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 |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는 국경의 섬'대마도'
관리자(2006-09-11 14:17:11)
가면 후회하는 곳, 그러나 안가면 더 후회하는 곳, 대마도를 다녀오다
글 | 진명숙 호남사회연구회 간사
지독한 무더위. 비좁은 도로와 답사버스. 조선통신사. 귀곡산장 신사. 기념탑들. 푸르고 맑은 해수욕장. 내부욕실이 없는, 그러나 전망은 기가막힌 대아호텔. 아리랑 마츠리. 불꽃놀이. 선플라워 대아여객…
이번 마당의 대마도 여행을 떠올리며 조합해 본 문구들이다. 그리 오래 지난 것도 아닌건만 푸르른 대마도 섬이 점점 아스라해진다.
마당의 백제기행과 연(緣)이 닿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일본 대마도를 가보고 싶어했던 적도 없었다. 나의 이번 여행은 순전 그이 때문이었다. 어느 날 밤, 그이는 문화저널 5월호 맨 첫 장에 실린 마당의 백제기행 홍보면을 보자마자, 그 기행에 꼭 가야겠다며, 나에게 신청을 좀 해달라 하였다. 각시를 어여삐 어겨, 이 참에 겸사겸사 함께 여행하자는 권유도 없었다. 그이 혼자 보내기에는 배 아프고(?), 여행이란 걸 너무 좋아했기에, 호박넝쿨 치듯, 대마도 백제기행단에 합류했다. 아마 그이가 문화저널 첫 장을 그냥 지나쳤으면, 이 대마도 기행은 없었을 것이다.
첫째 날부터 강행이었다. 새벽 네 시 전주를 출발해서 대마도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대마도의 이즈하라 곳곳을 발품을 팔며 돌아다녔다. 살갗을 태우는 듯한, 작열하는 태양과 비오듯하는 땀과의 전쟁 속에서, 나는 그때서야 남편 이름 등록할 때, 내 이름 석자 올리며 쉬이 동반한 여행이 아님을 깨달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여행 한 주 전 가졌던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인터넷이나 서점에 들러 대마도에 관한 사전 지식을 얻어 오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이번 여행에 대한 어떤 기대와 목적을 품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때까지 잊고 있었다. 바쁜 일상을 접고 잠시 몸과 마음의 피로를 녹이는 녹색휴가가 아니란 걸. 그이와 오붓하면서도 한갓진 여행에 온 게 아니란 걸. 이 여행은 대마도 역사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이해하는 학습의 과정이자, 철저히 다리품을 팔아야만 그 값어치를 얻어가는 역사유적 답사라는 걸 말이다.
연일 보고, 주워듣는 게 있어서인지 대마도가 눈에 들어왔다. ‘왜적의 소굴’로만 알고 있었던 대마도는 한국 역사의 파편들로 가득했다. 덩그라니 남아 있는 기념탑들이 이를 말해준다. 덕혜옹주의 결혼기념비. 조선역관사위령비, 의병장 최익현 순국비. 신라 충신 박제상 순국비… 특히 한일관계의 주춧돌이 되었던 조선통신사는 조선정부의 최고 관료에서부터 금수를 잡는 백정에 이르기까지 3-500명에 달하는 대사절단이자 문화사절단이었다. 조선통신사는 반드시 이 대마도를 통해 거쳐 갔기에, 오늘날로 치면 대마도는 ‘외교거점도시’이자, ‘문화교류도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과 둘째 날, 답사버스를 오르내리는 일정은 가까스로(?) 소화할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양보다 질’이라는 내 나름의 여행 철학을 세운 뒤로, 마당이 계획한 ‘시간에 쫓기는’, ‘다다익선’ 유적 답사가 편치는 않았다. 다음날 푸르른 해수욕장, 아리랑마츠리, 그리고 불꽃놀이가 없었으면 볼멘소리가 나왔으리라.
우리가 오전 한갓지게 머물렀던 해수욕장은 피서철 목욕탕을 방불케하는 한국의 해수욕장을 연상하면 매우 시시한 곳이다. 흔하디흔한 튜브대여점도 없고,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아줌마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더더욱 해수욕을 즐기러 온 관광객은 우리팀과, 부산서 온 한 가족 여행객뿐이었다. 그래서 작지만 조용한, 푸르고 맑기 그지없는 이 바닷가가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이번 여행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리랑 마츠리였다. 대마도의 미나토 마츠리 안에서 주요 행사로 자리잡은 이 아리랑 마츠리는 조선시대 조선통신사 행렬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축제이다. 우리가 시내 중심 8번궁에 모였을 때는 당시의 지위와 역할에 맞게 옷차림과 소품으로 치장을 한 수많은 조선 통신사 일행들이 모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통신사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시내 도로와 상가 골목을 지나 마지막 마츠리의 주무대인 이즈하라 항구 선착장에 도착하기까지 시민들은 행렬에 환호를 보냈다. 통신사 행렬 속에는 한국에서 온 공연단과, 남녀노소를 불문한 다양한 계층이 섞여 있었다. 과거 조선통신사 그대로를 재현하고자 했으면서도 오늘날 현대적 입맛에 맞게 다시 각색한 이벤트였다.
이 날 밤, 대마도 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놀이는 긴 시간동안 진행되었다. 하늘을 올려보는 내 목이 아플 정도로 길었으니 말이다. 그이는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하며 흡족해했다. 특히 기모노를 차려입고 축제의 현장을 찾는 일본인의 모습 속에서 ‘다름’을 느꼈다.
아리랑 마츠리는 쓰시마시가 국제적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중국과 한국을 겨냥해 만든 관광축제로의 성격이 짙다. 가장 덥고 서비스 질도 가장 떨어지는, 이 시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대마도를 찾는 이유는 아리랑 마츠리를 보기 위해서라는 해설사 선생님 얘기를 떠올리니 이 아리랑 마츠리가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주민의 동의 없이 관료 1인에 의해 아리랑마츠리가 시작되었다며, 자신들의 고유한 봉오도리 행사도 사라져 버렸다며, 미나토 마츠리와 아리랑 마츠리를 분리해야 한다는,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열변을 토한 한 주민의 얘기를 들어보니,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그 안의 진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날 해설사 선생님이 대마도는 오면 후회하는 곳이라 한다. 잠시 당황한 순간, 그러나 오지 않으면 더 후회하는 곳이라 한다. 대마도는 휴가철 피서지는 결코 아니다. 특히 역사에 관심이 없거나 전공자가 아니라면, 그 뜨거운 태양 아래 돌덩이 있는 곳을 힘겹게 올라, 지난 날 한일관계의 스토리를 이해하며 역사적 파편들과 흔적들을 조합해보는 데 즐거워할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아리랑 마츠리가 화려하면서도 재미진 프로그램들로 그득하여 다음에 또 오고 싶을 만큼 매력적 축제도 아니다. 그래서 후회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한 시간 여만 가면 닿는, 한국에서 너무나 가까운 대마도이기에, 마을 안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들쭉날쭉한 리아스식 해안과 크고 작은 가파른 산으로 이색적 풍경을 자아내는 작은 섬이기에, 특히 부여나 경주, 서울만큼 우리 역사의 굵직한 잔흔들이 남아있는 곳이기에 오지 않으면 더 후회할 뻔했다.
진명숙 | 전북대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사단법인 호남사회연구회에서 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축제, 문화관광, 여성 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