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 |
[영상저작물]괴물과 시간
관리자(2006-09-11 14:09:55)
올 여름 시작과 함께 영화계를 흔들어 놓은 영화 <괴물>에 관한 뉴스는 그 내용보다도 “최단기간 최다관중”이라는 보도에 집중되었다. 연일 종전 기록인 <왕의 남자>에 비하여 얼마나 단축된 것이라는 기록 중심의 보도는 마치 육상이나 수영과 같은 스포츠 뉴스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언론보도는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기왕지사 볼 것이라면 빨리 보는 것이 그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을 것 같아 필자도 그 기록에 넷을 더해주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기존 영화와는 소재가 크게 다르고, CG(컴퓨터 그래픽)로 화면을 처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어색감이 들지 않았으며, 가족애를 느끼게 하는 감동적인 장면도 좋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과연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 씩이나 볼 정도의 영화인지, 한동안이나마 우리나라 영화를 대표할 만한 영화로 자리잡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흔쾌히 동의할 수 없었다.
<괴물>이 한참 뜨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김기덕 감독의 기자회견이 또 하나의 뉴스거리가 되고 있었다. 김감독은 자신의 신작 영화 <시간>의 시사회 자리에서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영화를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였다. 이어서 <괴물>이라는 영화에 1천만 명 이상이 몰리는 현상에 대하여, “한국영화의 수준과 한국관객의 수준이 최고점에서 만났다. 이는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라는 다소 모호한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괴물>과 이에 환호하는 관객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김감독의 이 말은 언론에 의해 그 말의 배경이나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괴물>에 대한 기록위주의 객관적(?) 보도처럼 사실 그대로 전파를 타게 되었다. 그 후 김감독은 그야말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국민과 <괴물>의 봉준호 감독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발표하였으며, 이에 더하여 그동안 자신의 영화는 모두 쓰레기였다는 말과 함께 영화판에서 떠나겠다는 극단적인 선언을 하였다.
필자는 그의 영화가 그의 말대로 쓰레기였는지는 모르지만, <사마리아>, <파란대문> 등에서 보여준 불편하면서도 아름다운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잘은 모르지만 예술은 참(眞)과 착함(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美)을 추구하는 것이라 알고 있다. 추함을 통해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예술의 또 다른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영화를 쓰레기로 표현한 김감독의 말은 단지 중의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고 싶다.
작년 늦봄 필자는 열흘간 씨애틀에 머물렀는데, 그때 대학가에 있는 한 극장에서 체류기간 내내 김기덕 감독의 <빈집>이 상영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표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선 이들 중에 한국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저들이 우리 영화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였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접한 것도 모두 케이블 TV를 통해서 였던 것 같다. <괴물>이 국내상영관을 장악할 때, 자신의 영화도 국내 극장에서 평가받을 기회를 갖고 싶다고 한 김감독의 발언은 영화제작에 참여한 대기업들이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이른바 멀티플랙스 상영관까지 장악하여 영화산업을 수직계열화하고 있는 우리의 영화산업 풍토 하에서 볼멘소리로 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괴물>에 대한 기록위주의 보도와 김기덕 감독의 인터뷰를 가감없이 보도하는 것은 모두 객관적인 사실보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쏠림현상이 생긴 상황에서 기록위주의 객관보도라는 것은 강자를 더욱 강하게 하고, 약자의 주장은 억지로 보이게 만들 뿐이라는 점에서 금번 관객수에 대한 기록위주의 보도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 hd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