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 |
방학 예찬
관리자(2006-09-11 14:09:25)
글 | 박현철 군산중앙중학교 교사
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3학년이 먼저 개학을 하여 학교에 나와 아이들을 만나보니 반가움이 앞선다. 지난 학기에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아 나를 힘들게 했던 아이들조차도 한달 사이에 더 의젓해 보이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귀엽다. 중학시절은 정말 아이들 모습이 하루가 다르다.
간혹 만나는 친구들이 교사는 방학이 있어 좋겠다고 부러워한다. 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이 방학이 교사에게는 참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학기 중에 고갈된 내 마음의 양식을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그리고 교실분위기가 급격히 바뀌는 요즈음에 들어와서 학교생활이 힘들어지자 이런 생각이 더 들었나 보다. (하지만 옆의 인문계고등학교선생님들은 마치 군대 가서 제대 날짜 기다리는 심정으로 방학을 지워가고 있다고 한다. 지나친 보충수업 때문이다.)
방학을 이용하여 학기 중에 시간보다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여 하지 못한 읽고 싶은 책이나, 역사 유적지 답사, 높은 산에 오르기, 새로운 지역에 대한 여행 등을 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사)마당에서 주관하는 대마도기행과 원주에서 있은 전국역사교사모임에 각각 3박4일 동안 참여하여 재충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거기다 평소에 집근처 산책에만 머물다 지리산, 치악산, 오대산, 태백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 이렇게 자연인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끼리 모여 공통 관심사에 대해 얘기 나누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메마른 영혼을 생명수로 적셔주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런 활동들이 결국은 지금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게 되어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새로운 정을 담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게 만든다.
지난 6월말에 군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교사가 학급 어린이에게 손찌검하는 모습이 인터넷에 올려져 결국 이 일로 사직하고 만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이 방송에 보도되면서 선생님이 그 어린 학생에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항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나의 지난 교직생활을 돌아다보면 정말 부끄러워 꺼내 놓을 수 없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고백한다. 내가 옳다는 생각만으로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였으니 상처를 준 그 학생에게는 나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수년 동안 피교육자의 입장에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교사란 직책을 맡으면서 많은 학생들을 마음대로(?) 지도하는 권한이 교사에게 주어진다. 대개 한창 젊은 나이인지라 사회 경험도 적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교직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조직 생활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직장생활에 적응하기도 쉽지가 않다.
한마디로 인격적인 미성숙의 단계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마음만 앞서지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것이다. 물론 교사 자신이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노력이 앞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는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경험이나 기술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교육환경이 크게 바뀌니 경력 있는 교사들이 오히려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50대 전후의 교사들은 한동안 요술방망이 같은 컴퓨터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거기다 나이가 드니 아무래도 신세대 학생들하고의 세대차이로 교감이 부족함을 느낀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6년 전부터 남녀공학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이 사춘기 시절이라 친구관계나 이성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반면에 교사에 대해서는 나의 학창시절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존재가치가 줄어들고 말았다. 거기다 사회적으로 최근에 불거진 체벌이나 촌지 등으로 인하여 교사에 대한 신뢰도나 존경심은 낮아져 이제는 교사들조차도 하나의 직업인으로 자처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집의 청소기가 고장이 나서 서비스를 받으러 갔다. 정말 친절하였다. 고객이 주인임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그동안 민주화의 성숙으로 우리 사회는 의식면에서 내가 자라면서 대우 받고 느꼈던 인간관계가 크게 변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에 걸맞게 교사의 의식변화가 쉽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교사가 노동자라면 거부감이 있듯이 서비스맨이란 말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변화된 교육 환경이 지금의 교사들을 위축되게 만들고 학생들하고의 관계에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런 교사들의 마음에 원기를 불어 넣어주는 시기가 바로 방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간혹 친구들은 일주일에 수업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고 그 정도면 할만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한다. 거기다 방학까지 있으니 살판 났다고 질투한다.
이 글을 쓰면서 학생들이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가를 알고 싶어 중학교 3학년 한 반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보니 대체적으로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은 5시간 정도였지만 잠자는 시간은 8-9시간이나 되었다. 공부하는 방법으로는 학원이나 개인지도를 받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꼭 하고 싶었던 것은 여행이 제일 많았다. 이런 생활 태도를 보면 방학에도 학교 다닐 때와 비슷한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나는 가끔 우리 학생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책상에만 붙잡혀 있지 않나 하는 염려가 든다. 지금은 컴퓨터 게임까지 겹치니 더 그렇다. 그렇지만 청소년기에는 이런 간접 지식도 필요하지만 자신이 땀 흘리면서 체험하는 가운데 얻을 수 있는 성취감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문이불여일행(百聞而不如一行)이라. 이래서 방학에는 학과 공부 외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폭 넓은 독서도 하면서 여행이나 수련회 각종 봉사활동 등에 직접 참여하여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도 매번 방학 때마다 수행평가 과제물로 역사유적지에 대한 답사 보고서를 내고 있다. 꼭 역사유적지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직접 체험한 어떠한 활동도 좋으니 체험담을 남기라고 부탁한다.
결국 방학이 학생이나 교사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이번 전국역사교사 모임에서 알게 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자애, 겸손, 검소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그 분이 한 말씀을 소개한다.
“거지는 행인이 하나님이라면 학교 선생님에게는 누가 하느님인가? 그렇다. 학생이다. 공무원에게는 누가 하느님인가? 지역 주민이다. 대통령에게는 국민이 하느님이고, 신부나 목사에게는 신도가 하느님이다. 이들을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이 알아서 다 해결해주신다 이 말이야.”
박현철 | 중앙대 사학과와 전북대교육대학원을 나오고 1981년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하여 현재 군산중앙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