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 |
[흑백사진]계남정비소 방문기
관리자(2006-09-11 14:00:28)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옛날’이 거기 있더이다
글 | 정철성 문화저널 편집주간
마령에 정미소를 개수하여 문화공간을 만든 곳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벌써 두어 달 전이었다. 그런 일을 꾸민 사람이 김지연 씨인데 정미소와 이발소를 줄기차게 찍어낸 사진작가라는 소개를 덤으로 들었다. 그러다가 정성이 뻗혀 한 번 찾아가보자는 의논이 일더니 한 번 다녀오라 한다.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끌림도 있었던 모양이나 하는 일 없이 마음만 바빠 이리저리 미루다보니 팔월의 끝자락이 저기 보인다. 슬금슬금 걱정이 곰팡이처럼 피어난다. 토요일을 골라, 면식이 있다는 김성식 씨를 부추겨, 마침내 정미소를 찾아 나섰다.
솥내옹기 가는 길에 지나다니던 그 길이다. 마령에서 백운 쪽으로 접어들어 전봇대 몇 개 사이로 계남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개울을 건너 고샅길로 들어가니 모정 너머로 정미소가 보인다. 동네와 정미소 사이의 거리가 꼭 그만큼이다. 문을 열기 전에 정미소를 등지고 북쪽을 한 번 둘러보니 마이산에서 광대봉으로 흘러가는 바위산 줄기가 튼실하다. 마이산 영봉은 앞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산 아래 마을이 원평지인데, 기가 막힌 들노래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김 씨가 한 장단 흥얼거리며 뽐을 내다말고 입을 다문다. 일도 없이 소리를 하려하니 멋쩍었던 것일까?
분지를 이룬 들판이 제법 넉넉하다. 여기 계남마을 앞을 흐르는 물길이 마이산 쪽에서 내려오는 서천과 만나는 두물머리가 바로 마령이다. 그런 자리이니 현의 치소로 한 몫을 하던 시절을 불러왔던 것이리라. 정미소 뒤로 보이는 산은 내동산이다. 계남마을은 산자락을 사이에 두고 눌러앉은 갈미와 방화 사이에 있다. 근동의 논을 둘러보면 계미에 정미소가 필요한 이유가 환하다. 새 단장을 한 방앗간에는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라고 문패가 달려있다. 방충망을 끼운 미닫이를 밀치니 염소방울 소리가 난다.
먼저 온 손님들이 밖으로 나온다. 차림새로 보아 멀리서 온 손님들인 듯하다. 호기심을 누르고 목례하며 지나쳤다. 낯선 문 안을 둘러보았다. 도정기계가 멈추어 선 방아실에서는 아직도 쌀겨 냄새가 난다. 한 걸음 더 들어가니 동네사람들의 사진이 촘촘하다. 사진첩 아니면 천장 아래 사진틀 속 흑백사진을 끄집어내어 확대한 것들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옛날이 사진 속에서 웃는다. 세월을 뒤집으니 환갑맞는 동네 부인의 소싯적 사진이 그대로 한 폭 미인도가 되었다. 개관전 ‘계남마을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의 낡은 앨범을 뒤적여 잊힌 이야기들을 끌어내서 함께 즐기는 시간”을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내부는 동굴처럼 깊다. 네 칸으로 나뉜 공간은 방앗간, 전시실, 응접실, 부엌으로 이어진다. 막힌 미로처럼, 돌아 나오는 길이 유일한 통로이다. 주인이 차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석자짜리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건성으로 훑어본다. 묵은 책 가운데 이근삼 저 연극의 정론, 버너드 헤일 저 김용권 역 미학예술비평의 새 방향 이런 제목도 있다. 무대미술에 뜻을 두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살림에 몸이 묶여 젊음이 흘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사진을 시작했으나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김지연 씨의 소회에는 맺히고 풀림이 확연하다. 사람의 욕망은 쉽게 사라지지 아니하고 만족은 아무데서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한다.
차탁 옆에 놓인 김 씨의 사진집을 덮으며 나는 물었다. 이발소 연작은 왜 흑백으로 찍으셨어요? 원래 흑백으로 작업을 했는데 정미소를 찍으면서 녹슨 양철의 질감을 살리고 싶어 천연색을 썼을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흐린 날 새벽이나 오후에 주로 작업을 한 연유도 확산광에 비추어 화면을 구성하려는 의도에 있다고 한다. 쨍하고 푸른 하늘이 정미소를 오히려 풍경의 부수적인 요소로 만들 수 있고, 또 사물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서로 간섭하는 그런 이미지를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김 씨의 정미소들은 돌이킬 수 없는 추억처럼 처연하다. 그러나 몽환적일 정도로 경계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그곳에, 무너지면 무너진 그대로, 웅크린 짐승처럼 정미소가 있다.
정미소 연작을 두고 최소주의의 일종이라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김 씨는 어느 독일 부부 사진작가의 무미건조하면서도 섬뜩한 작업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정미소 연작에서 정형의 의도를 발견하지 못하였고 이발소 연작에서 비로소 그런 시선을 확실히 느꼈다. 이발소가 대개 큰길가에 있어 통행차량을 피해 찍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비슷한 거리에서 비슷한 형태를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찍고 또 찍어 축적함으로써 일정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이발소 연작의 기획인 것이다. 작가는 추억과 감정이 묻어나서 철저히 객관적일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서운한 말씀이지만, 의도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정미소의 표정이 이발사들의 표정보다 더 절실하게 들어왔다.
김 씨의 작업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발소, 정미소, 전주천, 남광주역 등이 등장한다. 찾아온 수고를 갸륵히 여겨서인지 김 씨는 상자에 담아둔 원판을 하나씩 꺼내어 보여주었다. 전주천은 흑백의 굵은 입자들이 손에 묻어날 듯한, 하천 정비 직전의 모습들이다. 여기도 흐린 날이다. 어두운 화면에서 물기가 하얗게 뜬다. 남광주역 연작은 전시회를 마치고 갈무리해 둔 꾸러미 속에 들어있었다. 도시철도 노선이 바뀌면서 남광주역은 2000년 8월 10일 폐선되었다. 그 해 몇 달의 기록이 남광주역 연작이다. 전주천에서 사람의 모습이 멀리 있거나 숨어 있다면, 남광주역의 인물들은 근경에서 움직이고 있다.
동행한 김 씨가 해묵은 질문을 던진다. 왜 흑백사진을 고집하시느냐고. “흑백으로 작업하다 보면 현상, 인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요. 천역색일 경우 현상은 어차피 기계적이고, 인화에서 색깔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도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장악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정미소 사진 가운데 여러 번 뽑은 것이 많거든. 디지털이 등장한 후로는 전문가도 손을 떼는 형편이라, 색깔을 찾기가 힘이 들었어요.” 이런 작가들은 보정을 싫어하고 잘라내기 트리밍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타난 것이 아니라 보았던 것, 다시 말해 필름이 아니라 렌즈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뷰파인더를 통해 확인한 그 순간의 이미지를 재생하려는 것이다. 나도 속절없이 묻고 싶었다. 왜 그 순간이 중요한가? 당신의 사진들은 기록인가, 예술인가?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물어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김지연 씨가 벌린 일에는 아직도 잔손질이 만만치 않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열의가 그만하니 방법이 나타나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건너 마을 할머니가 지나다 들린 것을 핑계 삼아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