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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9 |
[흑백사진]디지털시대 전통사진의 위기
관리자(2006-09-11 13:57:35)
글 | 김정우 유니버셜스튜디오·김정우사진문화연구소 대표 우리는 138년 전통의 세계적인 아날로그 필름업체인 독일의 ‘아그파1) 포토’가 쾰른의 지방법원에 파산 신청을 냈다는 독일 언론의 2006년 5월 27일자 보도를 접하게 된다. 독일 서부 레버쿠젠에 본사를 둔 ‘아그파 포토’는 독일 내 5개 공장의 종업원 1800명을 포함해 전 세계에 2400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는 세계적 회사였다. 이러한 ‘아그파 포토’의 파산은 디지털 사진 시대 도래에 따른 필름과 인화지의 매출급감이 주요한 원인이 될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필름업체 ‘KODAK’도 최근 회사채 신용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소식이나 독일의 ‘LEICA’2) 카메라회사 또한 지난해 사상 최악의 실적으로 파산 위기를 맞고 있다는 뉴스들은 흑백사진으로 대표되던 아날로그 사진의 위기를 실감케 하는 현실들이다. 실재로 1980년대 중반에 이미지 위주의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시각 문화의 구심점이었던 사진의 지위가 커다란 타격을 입었었다. 재현·진실·기록·기억 등에서 언급되던 사진 이미지 시대는 디지털과 테크놀로지 유토피아(?)에 의한 대중적 신화, 뉴 미디어의 형식과 대규모 상업주의의 높은 파고 속에서 사진 자신의 위상에 충분히 위협받았으며 한참동안 자존심을 구겨왔다.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사진 이미지의 전통적 생산, 순환, 소비의 방식을 급변케 했고, 1990년대 이후 그 속도는 더 한층 가속도화 되어 저널리스트와 비평가들은 앞 다투어 ‘사진의 죽음’을 예견했고,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당신의 눈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실재(the real_의 상실’ 이라는 경고들을 쏟아 내기도 한다.   사회적, 물리적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가의 시대적 정의가 카메라로 말해지던 시대의 진실은 디지털 카메라의 기계적 조작과 이미지 수정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렸고, 작가적 예술혼이라 대변되던 핸드메이드 암실작업은 회색의 작은 플라스틱 상자 퍼스널 컴퓨터로 조작(?)되고 클릭 한번으로 사이즈가 선택되어 짧은 시간에 사진이 완성되는 테크놀로지 앞에서 기력을 소진해 버린 것도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진가는 분명 직업위기, 전문성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 기술의 지속성, 사회적 역할들에 대해 불안감을 표명함은 지극히도 당연해 보인다. 디지털시대 사진에 관한 나의 단상 불행하게도 필자는 기계화를 반대하는 사람이나 기술 공포증 환자(?)를 옹호할 생각이 없다. 새로운 대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론적, 비평적 도구들을 관통함이 요구된다면 필자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서 혹은 그 내에서 예전 가치들의 타당성을 비판하며 반성하고 시험하는 동안에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 현실을 챙겨보는 마음이다. 디지털사진이 사진에서 분리되는 또 하나의 영역이라 주장하여 디지-그라피(digi-graphy)라는 이름으로 기존 사진의 포토-그라피(photo-graphy)3)와 구분 지으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전통적 사진을 필름의 은 입자에 잠상을 형성하는 촬영, 가시음화상 형성과정인 현상, 확대인화의 과정인 암실작업의 수공예적 정성(?)에 논의의 중심을 두고 서로 다른 영역으로 해석하는 소극적 태도라는 이유로 필자는 공감하지 않는다. 디지털이미지는 전자화된 데이터를 사진이미지로 출력하는 과정에서 분명 필름카메라의 수공예적 과정과는 확연히 다르다. 분명 촬영에 대한 테크닉의 중요성이나 정교함이 많이 가벼워졌고 촬영되어진 이미지의 후반작업에서 다양한 수정과 편집이 개입되어 새로운 결과물로 재생산되는 과정을 감안한다면 디지털적인 촬영데이터는 원재료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도 필름카메라의 사진과는 분명 다르다 할 것이다. 하지만 필름에 의해 만들어진 사진과 디지털에 의해 출력된 사진만을 비교한다면 결코 다른 무엇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많은 필름회사의 도산과 생산중단 등으로 그 기술발전이 정체되어지는 필름사진의 현실에서 디지털카메라의 기능적 향상과 인화테크놀로지의 발전4)은 필름카메라에 부여되던 중후함을 더 이상 대단한 경쟁력이라 위안 삼을 것도 아니라는 현실인식도 한 몫을 한다. ‘역시 사진은 흑백사진이 예술(?)인데 요즘 사진들은 온통 디지털사진이라 사진에 맛이 안나!’ 혹은 ‘달만 바뀌면 새로이 등장하는 게 디지털 카메라인데 어떤 카메라를 사야하는 건지 혼란스러워요.?’, 어떤 이는 ‘집에 필름 카메라가 있는데 쓸 수 있는 건가요?’등 참 많은 사진관련 질문들을 듣는다. 이쯤 되면 사진에 대한 이런 오해들이 풀릴 만도 한데 흑백사진에 대한 이상한 선입견 그리고 여전히 메커니즘에 열을 올리며 장단점을 파악하는 마니아들의 열정(?)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왜 찍는가…?’, ‘나는 무엇을 사진적으로 담고자 하기는 하는가?’에 더 많은 고민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는 디지털카메라의 이미지의 영역을 인정하려한다. 차라리 존중한다. 전통적 사진이 엄숙 단정한 고발자의 날카로운 시선이었다면 혹은 예술의 무게에 짓눌린 형상이었다면 지금의 디지털사진이 일상의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소통되며 적절한 언어적 소통과 기쁨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그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다. 휴대가 간편한 포켓용 디지털카메라나 핸드폰 카메라의 영역까지도 상업주의에 기초한 현상이라지만 이 또한 현실이며 문화 트렌트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의 보급과 인터넷의 발달은 개인의 발언과 개별적 저널리즘(?)의 생산, 민주주의적 여론의 장을 형성하는 순기능적 역할의 중심에서 사진은 개별화된 이미지의 생산과 소통 그리고 온라인 영상 언어라는 새로운 영역의 창조와 확장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디지털사진의 미래를 필자는 우리나라 ‘패스트 푸드’에서 해답을 찾는다.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다국적 기업의 세계 잠식이라는 불만 속에서 등장했던 페스트 푸드는 자극적인 맛과 빠른 서비스, 일괄된 품질관리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현대인의 바쁜 생활 속에서 한참 동안 독보적인 성공신화를 지속해 왔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건강과 웰빙문화 속에서 성인병의 주범이 비만이고, ‘패스트 푸드’가 칼로리 원재료가 주범(?)으로 주목되고, 일회용품 사용의 환경파괴는 서서히 우리의 삶과 거리두기를 불러왔다. 디지털 사진의 유행도 우려했던 만큼은 아닌 듯싶고 부정적 영역은 축소되고 나름의 자기역할로 진화해가는 시간들이라 믿는다. 디지털카메라도 한 시대적 발명이고 유행이었으며 나름으로 순기능적 역할을 담당해 온 것이 사실이다.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에 대한 권위주의에서 상당부분 자유로워졌고 사진 촬영에 절대적이었던 기술적 테크닉의 신비감(?)도 일정부분 포토샵이라는 후반작업의 간편한 활용으로 대중적 인기를 유지해 오고 있다. 사진의 권위였던 인쇄물과 장식무늬 화려한 벽면의 액자, 거만한 가죽표지 속 두터운 앨범에 유물처럼 보존(?)되던 무거움에서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램의 동영상 편집과 개인 미니 홈페이지 등 활용영역의 확장은 그 만큼 경쾌하게 우리 곁에서 디지털사진이 역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면 흑백사진은… 그렇다면 전통적 사진이라 일컬어지는 흑백사진은 추억의 한 자락을 들춰 보는 정도의 유물정도로 각인되어져 버리는 건가? 디지털이미지가 사진이라는 자리를 점령하면서 사진의 역사가 되어왔던 할로겐화 은, 금속화 은으로 대표되던 은염사진은 그 존립마저도 위태롭기만 한 것인가? 한 동안 흑백필름의 대형 포맷으로 개인작업을 하고 날을 세워가며 암실작업을 해서 몇 번의 전시를 했던 그리고 오랜 세월 학생들에게 흑백암실을 사진학과에서 가르치던 필자로서도 분명 디지털사진의 세상은 반가운 시절은 못되었다. 물론 지금도 암실작업을 선호하고 은염 프린트 된 전통적 사진의 맛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필자이기도 하다. 필름카메라에 더욱 무게감을 느끼며 그 중후함과 작가적 진지함을 무기로 필름카메라와 흑백이미지를 사수해 기득권(?)을 지키고 싶은 절박함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은 디지털카메라 생산회사들의 사활을 건 파상공세와 새로운 상품개발에 따른 기술력의 발전을 막아낼 어떠한 힘도, 명분도 우리(?)에겐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필름과 인화지 생산업체의 발전적 기술력도 기대해 보기엔 역부족이니… 앞에서 디지털사진을 패스트 푸드에 비교했다. 이것이 고급화 되면 TGI라는 값비싼 레스토랑 정도라 필자는 이해한다. 필름카메라의 은염사진이 콩나물국밥이고 순두부 정도가 되어 인간미를 나누고 이에 더욱 정성이 들어가 잘 차려진 한정식의 깊은 맛이 어우러진다면 디지털이건 필름카메라이건 마다할 이유가 없음이다. 혹여 대형 필름카메라로 공들여 촬영하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긴 시간 암실에서 힘겨운 약품냄새와 호흡도 하며 손에 물드는 화학약품의 따끔거림도 기쁘게 감수하고, 몇 시간 동안 흐르는 물에 인화지를 씻고 말려서 만들어 낸 장인(?)의 공이 남아나는 흑백사진의 진맛을 알고 있는 필자와 같은 사람이 아직도 상당수이니 디지털이건 흑백필름의 암실작업이건 우리 모두에게 부여되는 풍요로운 선택이라 확신한다. 암실로 돌아가는 가벼운 마음 필자에게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1학년 입학을 준비하며 부푼 가슴으로 막노동판에서 어렵게 일해서 구입했던 값비싼 흑백암실확대기가 있다. 그 확대기로 10,000장도 넘는 사진을 지금껏 밤을 새워가며 작업했었다. 홀로 깊은 밤 무지하게 행복해 하며 예술(?)이라는 걸 했었다. 그것은 분명 예술이었고 창작의 산고였다. 어떤 밤은 정말 더디고 힘겨운 시간들이기도 했지만… 1년여 암실에 드나들지 않았다. 별로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필자에게도 디지털 카메라는 이러한 수고스러움을 줄여 준 꿈(?)의 구현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촬영의 미흡함에 걱정하지도 않았고 큰 사이즈의 사진이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필름에 남아나는 먼지에 고통스럽지도 메케한 약품냄새를 또 그렇게 오랫동안 맡고 있지 않아도 됐으니까… 하지만 이젠 암실에 들어가련다. 아니 그러고 싶어 죽겠다. 차라리 그 더딤과 고통이 더욱 나를 진지한 고민의 무게로 눌러주는 까닭이기도 하고 그 정적의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립기도 함이다. 그렇다고 디지털카메라를 놓을 생각도 없다. 나름으로 나에겐 여러 가지에서 요긴한 물건이고 그 만큼 돈벌이에 적절한 제 역할을 담당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무엇만큼은 암실작업에서 흑백필름만으로 밖에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음을 이제야 절감한다. 그래서 암실에 돌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겪을 그 고통들도 당연스러운 것이다. 어쩜 토종 입맛으로 한식만을 고집하는 필자이지만 피자가 그리운 날도 있고 햄버거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박한 바쁨이 있는 그런 날도 있는 것처럼 흑백작업만으로 가능한 그 무엇을 느꼈기에 이제야 암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김정우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백제예술대학교 및 여러 대학에 출강한 바 있으며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재 민족예술인총연합 전북지부 사진분과 이사, 전주시예술상 심사위원, 전라북도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 평가위원으로 활동하며 고사동에서 유니버셜스튜디오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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