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 지금이야 도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있어 외부인의 발길이 뜸한 이 마을은 일년에 두 번, 그 어느 곳 부럽지 않는 큰 굿판이 벌어진다. 정월 대보름 굿이 있는 날과 고 양순용 선생의 추모제가 열리는 때이다. 지난 8월 26일은 고 양순용 선생의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추모제가 열리는 필봉굿전시관에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 추모제는 풍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밤새 흥겨운 굿판을 벌이는 신명난 잔치가 되었다. 잔치는 사람이 많아야 흥겨운 법. 마을 초입부터 길게 늘어선 차들의 행렬은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흥겨운 굿판을 예고했다. 온 산을 흔드는 풍물소리를 들으며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평택농악이 한창이었다. 진풀이가 다양하고 화려하여 생동감이 넘치는 농악이었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무동놀이가 눈길을 끌었다. 연희자의 어깨위에 올라탄 무동도 귀여웠지만, 그 조그마한 아이들이 아슬아슬하게 펼치는 묘기들은 객석에 잔디밭에 자리 있는 곳마다 앉아 농악을 구경하는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농악이 한창 펼쳐지고 있는 풍류마당 위 채굿마당에선 고 양순용 선생의 유품전과 사진전 등이 열리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커다란 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과 멀리서 온 손님들은 임시로 마련된 식탁에서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은 김치찌개에 시원한 뚝배기로 허기와 더위를 달리고 있었다. “사람도 많고 푸짐한 김치찌개며 막걸리도 공짜로 주고 진짜 옛날 잔치집 분위기 나네요.” 행사장에는 정성엽 강영탈춤전승회 대표도 와있었다. 그는 “전국 각지의 농악을 한데모아 푸진 굿판을 벌이는 것도 좋지만, 기회가 된다면 호남의 농악이라던가, 전북농악 한마당 같은 것도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이날 굿판은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였다. “고추 좀 따서 말려놨어. 그래서 요즘 쪼까 한가해. 그렁게 여기서 막걸리도 묵고 굿도 보고 하루 놀다가제.” 필봉마을 위 밤재에서 왔다는 한순자 할머니는 소문을 듣고 일찍 놀러 왔다고 했다. 한 할머니는 이웃마을에서 오랫동안 같이 살았던 양순용 할아버지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대보름이믄 동네마다 한집씩 고구마며 감자며 옥수수며 먹을 것들을 쪼까씩 내와가지고 밤새도록 굿하고 놀았제. 그 양반 진짜 대단했어. 내가 저기 순창 복실리에서 시집왔는디, 나 처녀 적부터 우리마을서 굿한다고 하면 여기 양순용 씨 데려다가 했어.” 한 할머니의 아들조차 양순용 선생에게 풍물을 배웠다고 한다. 행사장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자원봉사자’들이다. 잔치집이지만 워낙 규모가 커서인지, ‘푸진 굿, 푸진 삶’이라고 쓰인 반팔티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행사장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전주교대 풍물 동아리인 ‘학골탈패’의 김은희 씨는 막걸리를 나눠주고 있었다. 예상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약간의 통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풍물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한번도 보지 못했어요. 같이 전수하다보면 서로 친해지기도 하고, 즐거워요. 이런 게 사람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김 씨는 방학 때마다 필봉농악전수관에 몇 주씩 머물러왔기 때문에 이곳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했다. 이번 행사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며칠 전 스스로 찾아와 그동안 안내문과 표지판 제작, 사진전과 유품전 준비, 청소 등 행사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이런 굿판은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진주·삼천포 농악과 강릉농악, 평택농악, 고성오광대 농악 등이 무대에 선 ‘중요무형문화재 초청 공연’도 오후 5시까지 예정되어 있었지만, 7시가 되도록 끝이 날 줄 몰랐다. 관객들도 이미 시간을 잊은지 오래였다. 흥겨운 풍물과 들썩거리는 어깨만 있을 뿐이었다. 땅거미는 그렇게 서서히 내리고 있었고, 굿판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최정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