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 |
지방으로 남는 지혜와 지역답게 되는 능력
관리자(2006-09-11 13:53:34)
지역문화(culture of region and community)’는 ‘지방문화(local culture)’와 다른 말이다. 뒤의 말은 다양성 속의 고유성이라든지, 수많은 다른 땅들과의 차이성을 가리킨다. 한편 앞의 말은, 같은 땅 안에서 갖는 결속성, 살림을 위한 네트워킹, 깊이 맺어진 지리적인 커뮤니티 등을 뜻한다.
차이를 쉽게 인지하려면 지방문화의 반대말이 중앙문화라는 점을 되새기면 된다. 반면 지역문화의 반대말은 전국문화, 즉 보편적 문화다. 우리가 논하는 지방문화의 기대치는 ‘중앙으로부터 벗어나는’ 건강한 형태의 무엇이며 종국에는 중앙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더 이상 중앙이 없이 수많은 지방이 둥그렇게 선 상태를 지구화(globalization)라고 부른다. 그리되면 중앙을 거치지 않고 지방간에 만나게 되는데, 그것을 세방화(glocalism. 국가정부를 거치지 않고 민간 연대가 이뤄지는 점에서 이는 inter-civilian의 특징을 갖는다고 보자)하고 한다. 그런데 지역문화는 그 안에서 잘 결속하되 ‘그 안에만 머물지 않는’ 무엇을 기대한다. 주민문화의 통합성도 중요하되, 지역간 혹은 일종의 국제성(international이 아니라 inter-local한 상태)이 새로운 과제로 등장한다.
지방문화의 이상
지방문화에서는 중앙이 있어야 지방이라는 개념이 명료하게 성립하지만, 나중에는 서라벌도 하나의 지방이 될 뿐이다. 지방이 어떻게 중앙과 다른 고유한 가치를 가지며, 정신적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문화적 세계를 개척하는가가 지방문화 발전의 관건이 된다. 한편 지역문화에 있어서는 별도의 서라벌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수많은 지역들의 합이 전국이며, 개념적으로 모든 지역의 공통분모이자 교집합에 해당하는 보편문화가 존재하게 될 뿐이다. 혹은 보편문화의 중요성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아 다양하고 이질적인 지역문화의 합집합이라고 보는 관점도 존재한다. 이러할 정도로 서라벌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지역 하나하나가 고유한 색채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중요하다.
행정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가져야 할 과제는 그러한 지역 내에서의 통합, 지역공동체의 결속과 자치활동이 될 것이다. 지역 내에 초점을 맞추는 지역문화의 개념은, 역내에서 어떻게 민주화가 진행되고 자율성이 존중되는가에 관심이 있다. 한편으로 지방문화는 중앙으로부터의 민주화와 자율성의 성취라는 관점으로 출발한다. 지방문화라는 말 안에는 중앙집권에 대한 순응성을 거부하고 힘의 분산과 하향화를 지향하는 가치가 담겨 있는 것이다.
지방분권화 및 지방자치 시대는 지방문화의 이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전국평준화와 표준화된 지방발전의 사고방식이 우리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지방균형 발전이 무척 중요하지만, 모든 지역이 형평발전이나 같은 대접을 요구한다면 분명 우리사회의 민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상투적인 벤치마킹과 모방사업(me too)이 모든 지방을 똑같이 성형수술 하는 괴물로 설계하는 마당이다. 문화도시를 쉽게 만들려는 것은 자치정부만 아니다. 주민과 지역활동가의 요청도 한 몫 한다. 이들은 좋은 의미의 고유한 지역색 만들기(provincialism)의 적이다. 한편으로 집단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감정들이 이것을 망쳐오기도 했다. 모두가 평균치가 되려는 노력만큼 내가 우위에 서야 한다는 일등지향의 자세는 지역간 다양성이나 지방분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들과 똑같이 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앞서 대접받아야 한다는 이중발상을 우리 모두 반성하자.
지역문화의 이상
중앙이 되거나 남들처럼 대접받으려 하거나 다른 지방보다 우위에 서려는 수준으로는 지방다운 지방이 될 수 없다. 한편으로 지역이 지역답게 되려면 남들과의 관계나 중앙에 대한 요구를 넘어 지역 스스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지역내 결속이나 지역간 소통 등 커뮤니티 활동이 지자체의 그것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일 때, 그 지역은 지역문화 진흥이나 문화관광의 성공지표가 될 수 있다. 열쇠는 무엇인가. 활발한 민간활동과 자치참여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서둘러 지역문화와 주민자치를 동일시하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핵심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위로부터의 문화(top-down)를 뒤짚어 아래로부터 출발하는 사업(bottom-up)이다. 문화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이것이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출발선이 되어야 한다. 주민자치라는 목표치는 중앙으로부터 고른 지원을 받거나 우리가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시각을 훌쩍 뛰어넘어 더 큰 것을 지향하게 만든다. 실질적인 문화적 주민자치를 추구하다 보면 어느새 다른 지방과의 차별성이 생길 것이며 애써 전통문화를 고집하지 않아도 새로운 풍토와 지역색이 형성된다.
새로운 지역문화가 창출되는 원리는 주민들이 알아서 생활 속에서 신문화를 만들도록 돕는 데 있다. 바로 민심이 조절하는 공동체와 일상 속의 자치가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참여하여 내는 다양한 목소리의 역동성이 존재하고 그것이 주민문화의 동력이 되어, 자신들의 변화무쌍하면서도 고유한 문화, 결과적으로 중앙이나 다른 지방과는 다른 역학을 만들어낼 것이다. 폐광이 문화도시가 되고, 죽은 도시가 환경운동의 메카가 되는 국제적인 사례들은 다 열쇠가 여기에 있다. 지방자치 행정 15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주민자치를 해내는가는 전국에 걸친 과제다.
그런 점에서 지역문화진흥법은 수혜의 초점이 될 주민을 지역문화의 주인공으로 다시 세우는 효과를 볼 것인지 먼저 점검해야 한다. 문화활동에 있어서 주민주도권에 가치를 두고 사업을 세워야 하며, 지역주민의 자주와 자조를 돕는 문화매개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 지역자립 및 자급자족을 통해 중앙으로부터의 실질적인 독립성을 이뤄내는 것이 중기목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어떤 주민의식이 필요한가
지방자치가 발달한 선진국과 한국사회의 차이점은 중앙의존성과 정부의존성에 있다. 중앙의존성은 지방을 지원받는 대상으로 놓는 태도, 나누어줄 대상으로 놓는 발상이다. 지금 대부분의 지방자치는 중앙으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갈구하거나 선취하는 반면, 그 지역특색과 자치정신에 걸맞은 물질적 독립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중앙을 시혜기구로 대상화하게 된다.
정부의존성은 사회활동의 주도를 민간이 아닌 정부에 위탁하는 태도에 있다. 경제활동의 위기 역시 시장의 힘이 아니라 정부주도로 해결하는 사상이 한국사회에서는 강하다. 이것은 70년대 개발경제 시대에 주효했다가, 지금은 우리 사회의 주민자치를 저해하는 힘이 되어가고 있다. 90년대 들어 시민운동과 민주화의 사고는 선진화하였지만, 많은 재정적 문제를 정부의 지원이라는 미명하에 풀어보려는 깊이 없는 주장들이 난무한 것 역시 사실이다.
지난 15년간의 이러한 담론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지 못 하다.
예컨대 서구의 지역커뮤니티에서도 우리처럼 문화센터를 운영할 전문가가 부족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돈을 대야 한다는 점을 주로 강조한다. 문화센터 스스로 살아남기는 열악하다는 것은 기정사실로만 생각한다. 지방문화의 선진국들은 휴가를 얻은 직장인이 자신의 경험을 살려 매개자 및 자원활동가로 나서이런 역할을 하며 가치있는 무보수활동을 즐긴다. 한편으로 우리들은 정부가 고용할 돈을 대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문화센터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활동을 할 수혜자로서의 의지는 약하다. 선진국은 문화센터와 복지시설에 충분히 강사료 등을 지불할 용의가 있고, 시민단체 활동의 유료회원 활동도 활발하다. 기부와 모금, 자신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인프라의 적극적 활용이 선진적인 민심인 것이다. 지역의 문화센터에서 자원활동은 기꺼이 하되, 많은 수혜를 받을 때 일부는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태도가 우리사회에서도 더 퍼져야 한다.
한국의 문화예술전문가들은 문화기획과 문화교육을 맡을 프로그래머를 지역센터가 고용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부의 지원 몫으로 돌리는 방식을 취하기 일쑤다. 그 수많은 돈이 우리가 내는 세금인데, 한편으로는 세금을 내고 나라가 하는 일이 없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모든 일을 세금으로 푼다면 지역 뿐 아니라 나라 전체에 있어 민의 자립과 자결권은 나타날 수 없다. 한국인들이 금모으기에 강한 것처럼 시민활동 참여 및 지역주민활동에 강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방자치든 지역문화 진흥이든, 나라의 몫이 아니라 바로 주민들의 책임과 지역문화의 대표활동가들의 건전하고 깊은 의식이 먼저 짚어야 할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안이영노 | 한겨레문화기획학교 교장, 기분좋은 트렌드하우스 QX대표, 2006광주비엔날레 시민프로그램 총괄프로그래머, 땡땡땡 실버문화학교 기획 등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문화기획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