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 |
양푼 국수의 맑고 개운한 맛
관리자(2006-09-11 13:11:19)
하루는 《휴먼 21》의 이규철 대표와 ‘익산 서동마국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말로만 들었지 먹어본 바는 없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익산 여산면 ‘은성식품’(063-836-5838)에서 제조하고 있으나, 아직 전문식당은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까지의 수소문으로 끝났다.
마침 점심때도 되고 하여 이날 점심은 국수로 때우기로 하였다.
“칼국수, 해물국수, 콩국수, 바지락 손칼국수, 어느 것이 좋을까”
“봉동의 「할머니 국수」가 어때요”
“멀지 않을까”
“뭘 30분 거리인데…”
쉽사리 마음은 모아졌다. 「할머니 국수집」(완주군 봉동읍 장기리 330, 전화 063-261-2312)은 전에도 한 차례 찾아간 일이 있었다. 추스려보면 3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국수틀에서 뺀 가는국수로 뜨끈뜨끈한 국물 맛이 썩 좋았었다는 기억이다.
지금도 길갓집으로 길은 말끔히 포장이 되어 있으나, 집은 옛모습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낮은 문지방에 머리부터 내밀어 들어앉은 방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 때문인가, 방밖의 고열도 선뜻 다가들지 못하였다.
상차림은 단출하다. 단무지 한 접시, 풋고추에 조선된장, 묵은김치 한 종발일 뿐이다. 국수 그릇은 대접이 아닌 양푼이다. 요즘 음식점에선 흔히 볼 수 없는 그릇이다. 넓죽하면서도 운두가 낮은 놋그릇의 일종이다.
국수 장국은 맑았다. 참기름 기가 좀 있다. 먼저 장국 맛을 보자, 맑고 개운하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이 온도감각(溫度感覺)과 맛을, 느낌을 어떻게 말하여 좋을까. 적실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는다.
몇 가지 한자어를 궁굴려 본다. 청담(淸淡)·청량(淸凉)·청온(淸溫)·양미(凉味) 등등. 그러나 이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저 국수 가닥을 저붐질하고 장국물을 훌훌 마시는데 손놓기가 어렵다. 국수 가닥에 묵은김치를 아울러 먹으면 새금한 맛이 또 일미다. 풋고추에 조선된장을 앙구어 베어 물자 톡 쏘는 매운 맛이 청양고추다. 이 맛 또한 떨칠 수가 없다. 영 입안에 불꽃이 일면 장국물로 이울게 한다.
이 집의 국수 한 양푼 값은 균일하지 않다. 양푼은 같은 크기의 양푼이어도 거기 넣는 국수사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값이 다르다. 대(大)는 3,500원, 중(中)은 3,000원, 소(小)는 2,500원이다. 나는 소를 택했다. 그래도 자리에서 일어서자니 배가 불룩했다.
차에 올라 돌아오는 길, 채 10분도 안 되어 포만감은 가셔졌다. 그래, ‘국수 먹은 배’라는 말도 있어 왔던가. 흔히 ‘술꾼은 가루 것을 싫어한다’는 말도 전한다. 나는 술꾼이란 말을 싫어하지 않으면서도 떡도 국수도 좋아한다. 국수를 좋아하긴 중국이나 일본을 따를 것 같지 않은 우리인데, 나는 국수음식이 있는 나라들에 가면 국수를 즐겨 챙긴다. 어쩌면 ‘2미1면’(二米一麵)을 챙기는 중국사람이나 ‘우동’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과 식성 면에서는 터놓고 지내도 내가 딸릴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2미1면’의 미(米)는 꼭 쌀밥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곡물의 낟알로 지은 밥을 말하고, 면(麵)은 면( )과도 같은 글자다. 국수를 말한 것이다. 세끼 식사에 한끼는 면식(麵食) 취한다는 말이다.
「할머니국수집」의 양푼 국수 맛은 간간 챙기고 싶은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