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8 |
한미 FTA, 우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리자(2006-08-08 11:56:55)
글 | 오은미 전북도의원 민주노동당
미국의 일방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한미FTA가 제2의 한일합방이라 할 만큼 전 분야에 걸쳐 미국의 이익을 위해 진행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 쇠고기 수입 재개, 약값 인하 조치 중단, 자동차배기 가스 규제 완화 등 4대 선결조건을 내걸고 한미FTA를 올해 안에 뚝딱 해치우려고 하는 것은 졸속, 굴욕적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정부는 칠레,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등과 FTA를 체결했다. 또한 미국, 일본, 캐나다, ASEAN등 20여 개국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미국과의 FTA가 대세라고 주장하지만 2005년 7월 현재 WTO에 통보된 96년 이후 협정 중 미국이 체결한 FTA가 9건에 불과하다. 같은 FTA라도 ‘유럽식’이나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맺어지는 FTA가 상호주의적 협정이라면 미국식 FTA는 자본과 투자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상대국의 보호 장벽을 깨는 동시에 미국의 보호주의는 철저하게 유지하는 일방적인 협정이다.
한-칠레 FTA체결 당시만 하더라도 국민들이 보기엔 농민들이나 피해를 보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무역적자를 계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자유무역은 국익이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과 통계수치를 내놓고 있고 한미FTA광고에 수 십 억원의 혈세를 쏟아 붇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협상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넋만 놓고 있다.
공공서비스란 전기 가스 수도등 돈이 있든 없든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고 제공받아야 할 분야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97년 IMF 외환위기를 통해 공기업 민영화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상수도 사업본부 등은 그야말로 알짜배기 공기업이다.
남미와 아시아의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은 개발원조와 외환 위기 시기에 공공서비스 국가산업을 미국에게 내주었으며, 이로 인해 엄청난 요금인상과 정전사태에 직면했다. 한 예로 볼리비아에서는 수도요금이 30배나 상승했으며 호주 빅토리아주에서는 이윤을 남기기에 급급했던 사기업에 의해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단전과 높은 에너지 요금에 겁을 내고, 엄청난 사교육비에 시달리며, 오염된 물에 노출되어 마실 물조차 걱정하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공공서비스의 개방이 아니라 오히려 공공성 확보가 대세다. 우리 정부가 목메어 외치던 신자유주의가 가장 먼저 관철된 영국은 모든 병원은 국유화되어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무상 교육은 현재의 한국경제력보다 훨씬 못한 시기에 시행되었다. 또한 우리보다 열악한 경제력으로 알려져 있는 남부유럽과 제3세계 국가에서도 무상교육은 이미 일반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교육은 서비스 산업이라며, 과감하게 개방하고 서로 경쟁하게 할 필요를 역설했다. 근거는 교육과 의료의 서비스산업화와 개방화로 고학력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며, 기득권의 해외소비를 국내에 이전시켜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교육개방은 교육자체를 국가의 공적 영역이 아니라 상품이 유통하고 가격경쟁을 하는 시장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교육의 영리산업화를 요구하게 된다. 교육은 이제 국민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할 기본권이 아니라 수요자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의 문제가 된다. 경제력이 높은 사람들은 모든 교육여건을 갖춘 교육기관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게 될 것이며, 저소득층은 아예 학교를 보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가시화ㆍ전면화 되고 있으며 한미FTA는 더욱 가속화 시킬 것이다.
금융시장 개방 및 자유화는 금융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방을 통해 국내 산업전반에, 나아가 한국경제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국이 행사하는 것이다. 금융시장 활성화는 국민경제나 개별 기업차원에서 장기적 성장 동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면 다행이겠지만, 문제는 이들 초국적 자본이 단기적 관점에서의 수익극대화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론스타 게이트 같은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후퇴금지의무’ ‘이행의무부과금지’ ‘투자분쟁해결정차’ 조항 등으로 인해 국민경제 전반에 대한 정부통제력은 급격히 상실될 수밖에 없다. 무분별한 금융시장 개방의 폐해를 보완하거나 양극화 해소라는 국민적 요구를 충족시키기는커녕, 한국정부는 자본의 이익만을 쫓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횡포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고용불안으로삶의 질이 악화된다. 대미 무역수지는 최소 45억불, 최대 78억불(KIEP-정부연구소 추정)이 될 거라고 한다. 무역수지 적자는 곧 미국 상품이 국내시장을 잠식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기업은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정리해고의 위협에 노출되고 실업자는 늘어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전락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기 가장 쉬운 나라이며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장 높은 나라다. 미국의 요구는 자국보다 훨씬 높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확대하기 위해 비정규 악법을 국회에 제출했고, 노동3권을 제한하기 위해 노사관계선진화입법을 올 정기국회에 제출하려 하고 있다. 10년 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멕시코는 좋은 사례다. 무역규모가 2배 이상 커졌지만 멕시코에는 미국의 공해산업이 많이 진출했고 고용환경은 악화되었다.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비정규 일자리로 채워졌다.
따라서 한미FTA는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다수의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전면적인 개방은 교사, 교수,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종의 노동자들도 상시적으로 고용불안에 떨게 할 것이다.
농업총생산 20조 중 17조 감소, 농축수산분야에서 엄청난 피해를 한국 정부조차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한가하게 노력에 따라 쌀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으며, 다른 품목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는 공허한 말만 남발하고 있다. 미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의 농업강국이며, 경지면적이나 생산량, 가격 면에서 우리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미국은 결코 농축산 시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농축산업의 피해는 단지 농업품목에만 그치지 않는다. 농협이 망하고, 조금이나마 진행되는 농민이익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유명무실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미국 농산물 수출회사들이 국내 농산물 유통도매시장을 설립하면 도매시장은 수입농산물을 유통시키는 전초기지가 되는 동시에 초국적 자본의 유통독점으로 이어져 그 피해는 농민은 물론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농업의 붕괴는 농촌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며, 생존하기 위해 도시로 유입한 농민들은 도시 하층민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농민의 빈민화, 도시 빈민의 증대, 사회양극화의 확대와 고착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질주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한미FTA를 통해 미국의 고급 의료기술이 한국에 들어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의료비는 일부의 부유층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도 정부는 병원을 영리법인화하고 건강보험 제도를 없애고 민간의료보험이 그 자리를 메우는 의료제도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FTA에서 요구하는 미국식 의료제도다.
그러나 미국의 의료제도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낙후된 의료제도다. 미국에는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돈 있는 사람만 민간 의료 보험에 가입해서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다. 또한 개인파산 원인의 절반이 높은 의료비 때문이다. GDP의 15%를 의료분야에 쓰면서도 국민들의 의료만족도는 낮고 사망률이 높은 나라이며 국민 중 5000만 명이 아무런 의료보험혜택도 받지 못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한국사회역시 미국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다.
한미FTA는 위에서 얘기한 분야 말고도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 내에 신자유주의정책이 완성되면서 그 영향은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현실 앞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한미FTA 협상을 전 국민적 저항을 통해 당장 중단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정부가 민족적 자존심과 국익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국민적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미FTA 체결 이후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오은미 | 한일장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다. 순창군농민회 구림면지회 총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북연합 조국통일국장을 지냈으며 현재 순창군여성농민회 무회장, 민주노동당 중앙대의원,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