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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 |
[풍낙현(豊樂軒)]옛 전주시청사, 재물이 넉넉하여 즐거운 건물 풍락헌(豊樂軒)
관리자(2006-08-08 11:47:56)
옛 전주시청사, 재물이 넉넉하여 즐거운 건물 풍락헌(豊樂軒) 글 |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전라감영의 복원 문제가 이야기될 때나, 전라감영에 대한 숱한 이야기들을 쏟아 낼 때 빠짐 없이 거론되었던 것이, 현존하는 건물이 있느냐의 여부였다. 복원의 초점이 전라감사의 집무처였던 선화당에 집중되고 있고, 현존하는 사진자료 역시 선화당과 포정루에 국한되어 있지만, 전주판관의 집무소였던 풍락헌은 현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들이 흔히 전라감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라도를 다스리기 위하여 설치된 행정기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옛 전라북도청 일원과 객사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반면 전주부는 전주부윤이 임명되어 다스렸지만,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대부분은 전라감사가 전주부윤을 겸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칫 전주부를 다스리는 행정기관이 전라감영 내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주부 통활 행정기관은 이아(貳衙)라 해서 별도의 공간으로 구획되어 있었고 실제 전주부의 통치업무는 전주판관(全州判官)이 담당하곤 했다. 관찰사가 전라도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전라도 행정을 맡아보아야 했기 때문에 판관은 감영에서 관찰사의 공백을 메우면서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찰사의 전횡을 견제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전라도와 같이 전라감사가 전주부윤을 겸할 경우 판관이 실질적으로 전주를 통할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공간은 현 전주우체국 사거리의 남동쪽 블록으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있는 방형구역과 구 전북은행 본점이 있는 블록을 포함한 약 7천여 평이었다. 전주판관이 근무하던 건물은 풍락헌(豊樂軒)이라 하였으며 현 중소기업은행 자리에 위치하였다. <사진 1>은 바로 풍락헌 건물의 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음순당(飮醇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풍락헌은 전면 7칸의 팔작지붕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좌우 1칸의 크기는 중앙 5칸에 비해 기둥 사이가 약간 좁은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에는 양복을 입은 사람 1명과 하얀 두루마기 차림을 한 5명과 바지저고리 차림의 2명 등 총 8명의 모습이 보이며 192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음순당이란 편액은 1901년 당시 전주군수였던 취송(醉松) 이삼응(李參應)이 제작한 것으로 조주승이 썼다. 전주판관의 설치 때부터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풍락헌은 1758년 판관 서노수가 개건하였고, 1890년 화재로 소실된 뒤 1891년 판관 민치준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 이후 이 건물은 전주군청으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모습이 <사진 2>이다. 1895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전주부가 폐지되고 전주군이 설치되면서 전주군청으로 사용될 당시의 모습이다. <사진 1>과는 달리 서남쪽 모퉁이에서 촬영된 풍락헌은 전면 7칸의 건물이며 왼쪽 처마 끝에 덧 댄 가건물이 있으며, 도로 정비에 의해 전면부의 마당이 잘려나가고 나무 전신주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다. 전주군청이 존속한 것은 1895년 행정구역 개편이후 1935년 전주군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할 때까지이다. 즉 <사진 2>의 전주군청은 1981년 민치준이 중창한 뒤 1934년 새로운 청사가 준공될 때까지 존속했던 풍락헌의 모습인 것이다. 1934년 봄 풍락헌은 매각되어 구이면 덕천리(옛 태실리) 전주유씨 제각으로 옮겨졌다. 옮겨질 당시 음순당 현판은 떼어 내어 옛 객사 내에 두었다고 하나 현존 유무를 할 수는 없다. 구이 태실부락으로 옮겨진 풍락헌은 1992년 1월 7일자 전북일보의 보도로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전주유씨 제각으로 현존하고 있는 풍락헌의 모습이 <사진 3>이다. 그런데 비교적 단정하게 관리되고 있는 전주유씨 제각(풍락헌)의 모습은 앞의 <사진 1>과 <사진 2>의 모습과는 약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전면이 7칸이 아닌 6칸이라는 점이다. 좌우 끝 1칸의 크기가 중앙의 4칸 크기보다 기둥 사이가 좁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특징을 가지지만 중앙의 칸수가 1칸 줄어든 점이 틀리다. 기둥 초석과 초석 사이의 모양 등은 <사진 1>과 동일하다. 이러한 변화가 왜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적어도 사진으로만 본다면 풍락헌을 이건하였다는 전주유씨 제각이 풍락헌의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건하면서 칸 수를 줄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건물인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1934년 새로이 지어진 전주부청사는 2층 건물로 735평의 대지에 연건평 150평의 규모였으며, 해방이 될 때까지 존속하였고, 후에 전주시청((사진 4>)으로 이전되었다. 재물이 넉넉하여 즐겁다는 뜻의 풍락헌(豊樂軒)이 진한 술 한잔하는 음순당(飮醇堂)으로 당호가 바뀌는 것도 한번 쯤은 맘에 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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