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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 |
아침을 섬닷허게 먹었더니 얼요구라도 히야헐 것 같어
관리자(2006-08-08 11:42:51)
표준어형와 방언형는 대체로 대표적인 형태 하나와 그로부터 지역에 따라 상이한 방언 규칙을 겪어서 상이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의 제목에 제시된 방언 어휘 ‘섬닷허다’와 ‘얼요구’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분화된 방언형이다. 필자가 이 두 어휘와 조우하게 된 것은 모두 식사와 관련된 문맥에서였다. 이제 이 두 어휘가 전라도 방언 어휘로 존재하게 된 과정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제목에서 사용된 ‘섬닷허게’는 아침에 먹은 식사의 양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방언 어휘 ‘섬닷허게’와 유사한 표준어형으로는 ‘선듯하게’일 것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설명된 ‘선듯하다’는 북한어로 규정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선듯하다 [형용사][북한어] 1) 기분이나 느낌이 조금 깨끗하고 시원하다.     벌써 선듯한 가을이건만 콩알 같은 땀이 뚝뚝 흘러 떨어진다.≪선대≫ 2) 보기에 조금 시원스럽고 멀쑥하다. 3) 동작이 조금 빠르고 시원스럽다. 이 설명에는 전라도 식 쓰임새 ‘충분하지 않은’이라는 뜻이 빠져 있다. 아니 오히려 ‘충분하지 않은’이라는 의미와는 전혀 별개의 뜻만이 나열되어 있어서 ‘섬닷하다’는 북한어 ‘선듯하다’와는 서로 상관이 없는 어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표준어의 접두사 ‘선’만을 가지고 본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선 [접사]{몇몇 명사 앞에 붙어} ‘서툰’ 또는 ‘충분치 않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선무당, 선웃음, 선잠. 위에 제시된 것처럼 ‘선무당’, ‘선잠’ 등에서 ‘선’은 ‘서툰’ 혹은 ‘충분하지 않은’의 의미를 지닌다. ‘우습지도 않은데 꾸며서 웃는 웃음.’이라는 뜻을 가진 ‘선웃음’에서 ‘선’은 ‘꾸며서 하는’의 의미를 지니지만 결국은 본심이 아닌 상태에서 지은 웃음이기 때문에 ‘충분하지 않은’의 의미로 통합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방언 어휘 ‘섬닷허게’의 ‘섬’은 결국 표준어 접두사 ‘선’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접사 ‘선’은 위의 경우 모두 그 자체로 어휘 의미가 분명한 명사 앞에 붙는 접두사의 역할을 하지만 전라도 방언에서는 후행하는 구성요소가 의존명사 ‘듯’이라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북한어 ‘선듯하다’를 떠올려야 한다. 북한어의 조어 방식도 전라도 방언과 동일하게 의존명사 ‘듯’이 후행한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전라도 방언 어휘 ‘섬닷허게’의 본래의 구성 요소들은 ‘선듯하게’라고 할 수 있고 ‘선무당, 선웃음, 선잠’에서의 ‘선’ 즉 ‘충분하지 않은’과 ‘듯하다’가 결합하여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아침 식사라는 상황적 요소에 통합되면서 문맥적 의미는 ‘식사의 양이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로 결정된 것이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전라도 방언 어휘 ‘섬닷하다’는 ‘선듯하다’에서 출발한 것이고 그 뜻은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이다. 그러므로 북한어와 그 출발점에서는 유사하지만 북한어에서는 이 단어의 구성요소들이 가진 본래의 뜻과 다소 멀어진 셈이고 전라도 방언에서는 그 본래의 뜻이 충실하게 살아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방언 어휘 ‘얼요구’는 표준어 ‘얼요기’와 완전히 같다. 요기(療飢)는 잘 아는 것처럼 한자 그 자체로의 의미는 ‘굶주림을 치유하다’ 즉 ‘배고픔을 벗어나게 하다’의 뜻이다. 거기에 접두사 ‘얼’이 통합한 것이며 ‘얼’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얼 [접사] 1{몇몇 명사 앞에 붙어} ‘덜된’ 또는 ‘모자라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얼개화 [-開化] [명사] 완전하게 되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된 개화. 얼요기 [-療飢] [명사] 대강하는 혹은 충분하지 않은 요기. 2{몇몇 동사 앞에 붙어}‘분명하지 못하게’ 또는 ‘대충’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얼넘어가다, 얼버무리다, 얼보이다, 얼비치다. ‘얼요구’와 ‘얼요기’는 ‘기’와 ‘구’만 다를 뿐 그 의미는 완전히 같다. 표준어형에서의 ‘기’와 방언형에서의 ‘구’는 여타의 다른 단어에서도 일반적이다. ‘모기-모구-모고, 조기-조구-조고, 나비-나부, 선비-선부’ 등의 일부 단어에서 출현하는 현상이 그것인데 중세국어시기에 ‘모   ’ 형 즉 ‘ㆍ’를 가진 이중모음 ‘·ㅣ’가 ‘ㅢ’로 변한 후에 근대국어시기에 중부 지역에서는 ‘ㅣ’로 전라도 지역에서는 ‘ㅡ’로 변화한 결과이다. 다소 어려운 설명으로 일관되었지만 ‘아침을 섬닷허게 먹었더니 얼요구라도 히야겄어’는 국어의 구성요소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의미들이 충실하게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전라도 지역 자체의 자연스러운 변화 과정을 겪어서 이루어진 방언 어휘이며, 현재 상태에서도 충분히 상용되어야 마땅한 어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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