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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 |
상식이라는 혁명
관리자(2006-08-08 11:40:33)
상식이라는 혁명 Thomas Paine. 『Common Sense: The Call to Independence (1776)』 New York: Barron’s Educational Series, Inc., 1975.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의 『상식: 독립에의 호소』(1776)는 조선의 22대 왕이자 개혁의 군사(君師)였던 정조가 즉위하던 해에 반포된 혁명적 팜프렛이다. 국제적 혁명가로서 전무후무한 활동을 보인 그의 『인간의 권리』(1791)는 프랑스 혁명에 동참한 문건이었고, 『상식』은 미국 혁명의 대의를 그야말로 ‘상식적으로’ 정초한 글이다. 물론 당시는 아직 근현대적 상식(자유, 평등, 화이부동)이 확립되지도 못했고, ‘기성의 질서와 가치체계를 옹호, 유지하기 위해 대중에게 내면화된 이데올로기’라는 좌파적 상식론은 먼 장래의 것이었다. 볼테르의 『관용론』(1763)이 잘 보여주듯, 초기의 계몽주의는 상식을 위한 싸움이었고, 페인의 『상식』은 상식만으로도 충분히 혁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절절히 증거한다.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상식』은 그리 대단치 않은 논설과 격문으로 읽힌다. (실은 대체로 고전의 운명이 그러한데, 그것은 우리의 사유와 제도 속에 내재화됨으로써 역설적으로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식민주체인 영국 왕정에 대한 신랄하고 체계적인 비판과 미국 독립의 대의를 옹호, 천명하는 그리 길지 않는 글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일별하고 나면, 그의 글은 캄파넬라의 삶/글이 보이는 그 유기적 역동성을 앞지르는 감흥으로 넉넉하다. (영국) 왕정에 대한 페인의 비판은 비타협적, 전방위적이다. 그는 세습제의 맥락 속에 그 비판을 이어가면서, 무엇보다 왕정은 국민과 무관한 제도이며 궁극적으로 국가의 자유에 이바지하는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흥미로운 논점은, 왕정을 ‘자가당착의 우스개’로 몰아가는 그의 예리한 논변(56)이다: 그에 따르면, 왕정은 국민들을 중요한 정보로부터 배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결정에서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우스개이며, 한편 왕은 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으면서도 직임상 세상의 일들을 철저히 알아야만 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페인은 역사적 사례에 의지해서 자신의 논변을 적절하게 설득하기도 하는데, 가령, 왕정이 아닌 화란의 사례를 들어 평화의 문제를 재해석하거나 영국사 전체를 거론하면서 ‘왕정이 내전을 막는다’는 반론을 일축(71)한다. 미국의 식민화에 대한 영국의 동기는 애정이 아니라 단지 영국의 이익일 뿐이라는 페인의 주장(77)은,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에서 작금의 세계화론에 이르는 갖은 문제들의 원칙을 꿰뚫는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식민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보호정치란 미국의 적들이 아니라 그 자신의 적들로부터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는 것이다. 다만 격세지감을 지울 수 없는 대목 하나: 작금의 세계화, 지구화가 ‘새로운 형태의 교역으로 지구주민들을 지구화한 부자와 지역화한 빈자로 양극화, 위계화하는 과정’(울리히 벡)이라면, 페인이 이해한 당대의 교역은 왕정에 의해 강요된 애국심과 과도한 군사력의 정신을 감소시키며(111), 궁극적으로 영국의 제국주의적 명분을 실추시키고 미국 독립의 대의에 이바지하는 활동이다. 말하자면, 미국이 자유항으로 독립하는 것은 모든 유럽 국가들의 이익과 합치(81)한다는 것이다. 페인은 영국과의 어떠한 화해도 파멸(92)이자 거짓된 꿈(86)이라고 반박한다. 대륙이 섬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가 아니(88)라고 외칠 때의 그는 영락없는 혁명가의 피를 물씬 풍긴다. “인류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독재를 감히 반대하는 이들이여 나서라! 낡은 세계의 모든 곳은 억압으로 가득 찼다”(101)는 그의 격문은 『공산당 선언』(1848)과 당당히 마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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