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8 |
[캐리비안의 해적 2]가벼운 것들의 즐거움
관리자(2006-08-08 11:39:29)
소년 중앙의 말씀
버뮤다 삼각지대에는 배를 빨아들이는 괴물이 산다. 뉴질랜드를 발견(?)한 쿠크 선장이 처음 본 캥거루의 어원은 ‘나는 모른다’는 원주민 언어. 모두 「소년중앙」의 말씀. 「보물섬」 후크 선장 이야기를 섭렵한 다음 약골의 팔뚝에 뼈와 칼 그리고 해골 깃발을 그리며 해도도 없는 미지의 항로를 꿈꾸던 날이 언제던가. 볼 것이 책밖에 없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영국의 해적 드레이크 경 이야기를 안주 삼으며 마신 술, 캡틴 큐! 우리는 언제 닻을 올리나, 돛을 펴나? 한숨과 함께 마신 그 살구빛 액체는 정말 골패는 술이었다. 허허, 당시에는 제법 그럴 듯한 디자인과 이름에 속았을 것. 바다! 한 때 모래바닥에 누워 별을 보고 노래를 부르던 그 곳은 이제 그저 회 먹는 곳이 되고 말았다. 격포 앞 고패질 우럭 낚시가 바다 경험의 전부고 이순신 제독이 다니신 연근해만 보아온 나에게 가지 못한 동네 카리브해라니. 부감 숏으로 잡은 해변 신과 식인섬 탈출 장면은 경쾌하다 못해 탄성이 절로 났다. 영화 속 잭의 꼬임에 속아 선원이 되려는 노인이 뱉은 ‘젊을 때 세상구경 한 번 하려는 거’라는 승선동기는 경쾌함이 주는 극치였다. 적어도 내게는.
속치마를 펼친 듯, 하얀 돛의 범선을 타고 대양을 오가는 해적선. 낭만적일 것 같지만 이 면면은 권력에서 떨어져나간 해군 장교, 도망친 노예, 바늘도둑과 소도둑이 모인 배. 착한 사람들을 터는 약탈이 취미이자 직업인 이 반문명적 종자들의 집합은 매력적일 것 같지만 그들은 언제나 누추하고 위태롭다. 겨우 럼주나 마시는 판에 해군은 쫓아대고, 허리케인은 뱃전을 휘감으니 순풍에 돛을 다는 적은 한 번도 없다. ‘해적의 시대는 갔다. 이제는 무역의 시대다’라고 외치는 동인도 주식회사의 경영자 베킷은 잭 스패로우(조니 뎁)의 해적선 블랙 펄을 쫓는데 윌 터너(올랜도 블룸, 조재진 닮았다)가 미끼다. 3년 전 1편에 비해 꼭 다문 입술, 깊은 눈, 좁은 미간이 남자 냄새를 물씬 풍기게 된 올랜도 블룸이 잭의 나침반을 가져와야만 사형을 면해주겠단다. 이 작자만이 농담을 모르는 진지한 도둑놈.
가벼운 잭, 무거운 데비 존스
진홍빛 두건, 눈 밑 진한 마스카라, 문신과 낙인, 요란한 장신구를 단 블랙 펄의 선장 잭은 도망치기에 바쁘다. 두 팔을 들고 건들거리며 걷는 이 너저분한 인간은 선장이 되기 위한 욕심으로 죽음을 잊어버린 데비 존스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상태. 해적선 ‘플라잉 터치맨’의 선장 존스가 한 번 노하면 바닷물이 뒤집혀 배는 난파되고 조난된 선원들은 죽지 못하고 100년 동안 바다 밑을 떠도는 해적 귀신이 되어야 한다. 이제 잭이 문어 얼굴(무안 뻘낙지를 좋아하는 내게는 전혀 무섭지 않지만) 존스에게 노예로 평생을 복무하지 않으려면 그가 숨겨놓은 박스를 찾아야 한다. 그 박스에 든 것은? 바로 존스의 심장. 젊은 날 인생의 짧은 쾌락과 배신이 덧없게 느껴진 존스는 심장을 도려서 상자에 넣는다. 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그 잔인한 심장, 복수의 심장을 떼어내는 해적이라, 매력적이지 않은가.
10년에 한 번 밖에 흙을 밟지 못하는 존스를 이기기 위한 주술사의 방책은 토극수(土克水, 얘네들 이것도 아나?), 하여 존스를 피해 닻을 내려 잭이 상륙한 곳이 하필 식인섬. 식인종 카니발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 화상들은 한때는 주린 고양이로 때론 배부른 쥐로 죽어라 싸워댄다. 이 망자의 함을 얻는 자는 바다를 지배하고 자신의 소망을 이룰 수 있기에 선남선녀와 해적님들은 견물생심을 밥먹듯하며 싸워대는데 이들은 벤젠 고리처럼 물고 물린다. 윌이 간신히 존스에게서 열쇠를 훔쳐오고 그 열쇠로 잭은 존스의 심장을 손에 넣지만 행운은 반드시 수상한 법. 결국은 해적으로 위장취업한 엘리자베스의 옛 약혼자 전직 해군장교에게 넘어간 심장은 동인도 주식회사의 베킷에게로 건네지는데. 해적을 키운 것은 8할이 배신이기에 이들은 광풍과 싸우지 않고 배신과 운명에 맞서 싸운다. 서로를 배반하지만 배반자를 증오하지 않는 인간군상. 누구도 칭송받으며 기억될 사람이 없다. 결국 심장을 도둑맞은 잭은 미인과의 잠깐의 키스 끝에 빨판 괴물 클라켄의 뱃속에 갇히게 된다. 3편을 보라는 디즈니의 상술.
메이드 인 디즈니
이 스릴 만점 로맨틱한 해적 영화는 놀이공원의 해적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나도 물론 좋은 아비 되려고 롯데월드에서 물 튀기면서 캐러비안 보트와 등골 빠지는 해적선을 타보았다. 애들 장난이려니 하는데, 허, 누구는 영화를 만든다. 디즈니 얘네들은 어떻게 이렇게 가벼우면서 천박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라면, 돈 꾸러 다니기 바쁜 콜럼버스의 한숨이나 마젤란 선단이 야채를 먹지 못해 생긴 괴혈병과 각기병을, 희망봉을 돌아온 발틱 함대를 기다리며 대한 해협에 숨어있던 도고 함대의 조바심을 그렸을 텐데. 아, 우리가 만든 <태풍>에서 남중국해 해적 장동건은 AK-47을 쥔 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는데, 디즈니의 주인공들은 간사스럽고 악인은 오히려 잔 수를 쓰지 않는 방식이라니. 이 친절한 우리의 적들이 만든 배트맨은 우울하고 스파이더맨은 소심하니, 거참. 디즈니가 만든 데비 존스의 의상을 보라. 한 백년 가라앉았기에 굴딱지와 갯지렁이를 덕지덕지 붙인 선원, 게 손을 가진 바다 괴물 데비 존스는 지린내와 해금내가 진동하는 듯하기에 훨씬 존재론적이잖은가. 용기보다는 우연이나 행운 같은 가벼움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대는 디즈니 요놈들 한 대 패주고 싶다. 그들이 만들면 노략질을 일삼는 비열하고 잔인한 알콜중독자 해적도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코믹하게 헤쳐 가는 여유와 유머는 <슈렉>을 만들었던 바로 그놈들이란다. 소년중앙이 전해주던 버뮤다 삼각지대에 사는 그 거대한 심해괴물 클라켄이 네비 존스가 조종하는 괴물이라고 디즈니는 이야기 한다. 이야기는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생명력을 얻는가, 고 묻는 국문과 신입생들아. 답을 디즈니가 가르쳐 줄 것이다.
광풍은 좋은 뱃사람을 만든다
진한 초콜릿 빛 유니폼을 입은 포르투칼 선원의 후예 피구와 잘 헤어지고서 마테라츠를 받아버린 캡틴 지단. 좋은 남자 콤플렉스를 가진 남자들에게 그의 박치기는 존중받지는 못해도 이해받는다. 사노라면 효율과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데비 존스들을 때론 받아야 하고 때론 건들거려야 이 풍진 세상을 건널 있지 않을까?
죄 없는 친구를 바치고 저만 살려던 잭은 지단의 마르세유 턴보다 능청스럽게 비겁자에서 배를 지키는 선장으로 돌아온다. 모비 딕에게 한쪽 발을 먹힌 후 지구를 도는 복수의 화신 에이하브 선장의 광기보다는 부침개 뒤집듯 대충 위기를 모면하는 잭 스패로우의 변신에 엘로 카드를 내밀 순 없다. 천연덕스럽게 배은과 오만을 넘나드는 저 배우가 연민을 불러일으키던 <가위손>에서의 그 때 그란 말인가. 교만과 고민, 변덕스러운 열정, 어떠한 클래스도 소화하는 그는 역대 배우 중에서 전체 2등이다. 1위 당연히 채플린, 3위 주성치, 4위 짐 캐리. 모두 어깨에서 힘 뺄 줄 아는 배우들.
FTA로 모두들 우울한 얼굴들인데 디즈니 가지고 방정을 떠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지만, 광풍의 바다는 좋은 뱃사공을 만든다는 말씀을 영화 만드는 분들에게 전한다. 畵蛇添足: 지나 데이비스가 여성 해적으로 분한 <컷스로트 아이슬랜드>도 강추.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