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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 |
나도 수문 양반과 울 아부지 거튼, ‘왕자지’이고 싶다
관리자(2006-08-08 11:36:44)
나도 수문 양반과 울 아부지 거튼, ‘왕자지’이고 싶다 글 | 박성우 시인 나는 어머니와 마주앉아 밥을 먹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윗도리 밑단에 손을 쓱 밀어 넣고는 어머니 젖을 만지곤 한다. 어쩔 땐 나보다도 더 태연하게 울 어머니 젖을 만지는 시 쓰는 형도 있고 시 쓰는 아우도 있다. 우리 어머니 젖은 목련꽃 같던 첫사랑 가슴과는 달리 쪼글쪼글하다. 육남매를 키우느라 아니 정확히 말해서 건너 세상으로 일찌감치 엄마 품을 떠난 큰형까지 칠남매를 먹여 살린 엄마의 젖은 쪼글쪼글한 것은 고사하고 안쪽으로 쏙 들어간 느낌까지 든다. 그래도 상관없다. 서른여섯에 닿은 나는 시시때때로 철딱서니 없게도 어머니 젖을 만진다. “엄니, 젖이 요새 부쩍 불어부른 것 같은디?” “긍게, 요새 뭔 일인지 자꾸 젖이 분당께!” 어머니는 목주름을 접으며 흐뭇하게 젖을 내려다보고 나는 진지하게 젖을 손바닥으로 쓸어 올리며 갸우뚱 올려다본다. 실은, 젖이 불은 것은 아니고 나이를 드시니 나잇살이 들어 젖이 불은 것처럼 보일뿐이다. 어머니도 나도 이를 모를 이유가 없지만 어머니도 나도 굳이 아는 체 하지 않고 그냥 “젖이 겁나게 불어버링께 좋네, 새칠로 시집가도 쓰겄네” 하면서 씨익 웃다가는 어머니는 보던 텔레비전을 보거나 마늘을 까고 나는 먹던 밥을 마저 먹는다. 인용한 시는 애매모호하게 써진 관념시와는 달리 따로 해설이 필요 없는 우습고도 참 쉬운 시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기만 하고 우스꽝스러운 시이기만 할까. 적어도 내가 읽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수문양반 왕자지>라는 제목만 봐서는 연상되는 남자의 특정한 부위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낯부터 붉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실실 웃으면서 시를 읽고 나면 가슴 한쪽이 헛헛하기도 하고 ‘수문댁’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애잔한 마음이 엉키기도 한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 흉을 본다거나 욕하는 것을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아버지 살아생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나는 존경하는 인물 조사할 때마다 빈칸에 아버지 이름 석자를 당당하게 써놓고는 했다. 아버지는 부자도 잘난 사람도 배운 사람도 아니었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도 얼굴이 못난 사람도 세상 이치를 못 배운 사람도 아니어서 인용한 시의 ‘수문 양반’처럼 ‘왕자거튼 사람’이었을 게 틀림없다. 세상에 나와서 결혼을 하고 새끼를 놓고 그냥저냥 살만해지면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뭇 아버지들 가운데, 아내와 자식들에게 온전히 ‘왕자거튼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딱히 확인 할 바는 없으나 그리 많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수만 있다면 시에 나오는 ‘수문 양반’이나 울 아버지처럼 ‘왕자거튼’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 아내와 내 새끼의 엄지손가락이 자신 있게 치켜 올려지는 왕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왕자 같은 사람으로 기억해주는 수문댁과 같은 아내를 만날 수만 있다면. 박성우 | 1971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저서로 시집 『거미』, 여행산문집 『남자, 여행길에 바람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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