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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 |
[영화감독 한승룡]Made in Jeonbuk
관리자(2006-08-08 11:28:59)
글 | 최정학 기자 각 방마다 각종 영화관련 장비들로 가득한 전주정보영상진흥원 2층. 그곳에서  한승룡 씨를 만날 수 있었다. 한승룡 씨의 직함은 다양하다. 영화감독 이외에도 전주대학교 영화과 교수로 우리지역의 영화감독 지망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전주대창업보육센터 내에 ‘활동사진’이라는 영화사를 만들어 그곳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처음 만난 그는 헐렁한 티에 청바지,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었다. 대학 교수나 영화사 대표보다는 ‘영화감독’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는 영화 <오프로드>의 편집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편집기 앞 모니터에는 <오프로드>의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니터를 통해서인지 처음엔 눈치 채지 못했지만, 한 감독의 설명과 함께 모니터 속 화면들이 익숙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서곡지구의 빈 건물에 간판을 붙여서 찍은 거구요. 여기는 도청지하주차장, 여기는 터미널 옆 여관, 여긴 금구 저수지에요. 여기는 깊은 숲 속 같죠? 근데 사실 전주대 안에 있는 작은 숲에서 찍은 겁니다. 이 분은 전주대 식당 할머니구요.” 한 감독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김제평야와 새만금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김완주 전북도지사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자처해서 택시회사 사장으로 출연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해 전라북도가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저예산영화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N·C·N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그의 첫 장편영화 <오프로드>를 제작하고 있다. 전북의 영화사가 기획하고 촬영과 편집 모든 과정이 전북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그는 <오프로드>를 당당하게 전라북도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에서 영화산업이 꽃을 활짝 피었던 1960년 대 이후로는 처음 만들어진 명실상부한 ‘메이드 인 전북’ 영화라는 것이다. “전북도에서 저예산 영화를 지원해주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여러 면에서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그동안 전라북도는 영상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로케이션 지원에 그쳤습니다. 전문인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한 감독은 <오프로드>를 제작하면서 각 파트마다, 현재 그의 제자들인 전주대학교 영화과 학생들을 대거 합류시켰다. 현장 경험을 살려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영화 스텝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일류급’ 전문 인력들이었다. 전주대 학생들은 이들을 보좌하며 실질적인 영화 제작의 경험을 충분히 익혔다. 그를 만난 편집실에도, 서울에서 내려온 편집기사와 함께 전주대 학생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전북은 영상산업의 기반이 굉장히 좋습니다. 서울 말고는 다른 지역에 이만한 영상산업의 기반을 가진 도시는 거의 없어요. 이곳 전주영상진흥원만해도 얼마나 좋은 장비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이용할 수 있는 인력이 우리지역에 없기 때문에 그동안은 거의 외지인들이 쓰고 가는 식이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편집을 배우고 있는 학생에게 3년 후에는 진짜 편집을 맡길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지역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제작한다는 쉽지 않는 결정을 내렸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직접 찍어보니까, 전북이 영화 찍기에도 굉장히 좋더라구요. 전주시내에서 촬영하다가도 한 시간이면 무주나 장수의 산골이든, 군산이나 부안의 바다든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관에서의 협조도 좋아서 시내촬영하기도 편하구요. 이런 점 때문에 영화제작기간도 굉장히 짧아졌어요.” 보통 일반 상업영화를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은 30여억 원. 하지만, <오프로드>의 제작비는 3억5천만 원이 전부였다. 빠듯한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득이 촬영기간을 최대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전북은 촬영기간을 압축시키는데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오프로드> 제작이 끝나면, 서울의 큰 영화제작사들과 접촉해 전주대와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중앙대나 동국대 같은 경우 매년 사이더스 같은 큰 영화사들로부터 지원을 받아요. 그걸로 영화도 만들어보고 하는 거죠.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우리지역의 영상산업을 이끌 ‘씨앗’을 퍼트리는 일이다. “지금은 영상산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과도기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어요. 어디든 선점을 하는 곳이 앞으로도 계속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영상게릴라 집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많이도 필요 없어요. 일단 열 명 정도의 전문인력만 만들고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 준다면, 이들이 계속 씨를 퍼트려 영상 전문인력들의 틀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인터뷰는 그의 회의 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진행되었다. 하지만, 영화와 전북의 영상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쉽게 자리를 털며 일어서지 못했다. 그러면서까지 그가 몇 번이고 힘을 주어 되풀이 한 말은, 전북 영상산업의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 회의 시간을 30분이나 넘겨서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전북의 영상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끝맺지 못하는 그를 통해, ‘영상산업의 메카 전북’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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