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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 |
[오감도 '출항, 그 열정의 시작']전통은 현재와 미래에 있는 것
관리자(2006-08-08 11:27:30)
글 | 이태호 전주문화재단 정책연구실장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소리(Sound)와 음악(Music)은 전통적인 예술 방식과 이론들이 가졌었던 정형화되고 無시간적·無공간적이었던 세계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산업의 발달과 이에 따른 기술의 발전―에디슨의 축음기, 자동차의 발명, 원자 분열,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은 모든 분야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게 되었다. 미술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산업 혁명과 기계의 탄생, 그리고 이를 계기로 탄생한 소음, 잡음 등의 소리와 음악적인 요소들을 미술작품에서 하나의 매체와 소재로서 차용했던 것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르네상스시기에 실재(實在)의 환영(illusion)을 만들기 위하여 사용했었던 자연적인 소재와 재료들을 새로운 소재와 재료들로 확장시키고 대치시켜 나간 것이고, 이것은 예술가들에게 지금까지 상상하지도 못했던 예술적 표현 방식의 성장을 가져왔다. 즉 미술작품에서 이러한 차용은 객관적인 실재를 정확하게 묘사하고자 했던 르네상스의 환상(Illusion) 세계를 물질의 외적인 세계와 정신의 내면적 세계를 매개해 주는 새로운 영역으로 전환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제 관람자로 하여금 새로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창조자가 되었고 예술가들은 더 이상 단순히 가시적인 세계를 기술적으로 묘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소리와 음악을 자신의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가시적인 세계, 더 나아가 비가시적인 세계까지도 창조하고 안내해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새로운 영역을 완벽하게 창조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은 결과로 말미암아 이전의 합리적인 유물론이 지녔었던 자연의 고요하고 無시간 ·無공간적인 것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르네상스의 이상(理想)이 타파되었고 소위 장르를 분리하려고 하는 실재(實在)로서의 예술 역시 해체되었다. 현대예술은 다양한 매체의 발달만큼이나 다양하고 복합적인 예술 양식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소리와 음악은 퍼포먼스나 비디오 아트 등에서 하나의 매체로서 빈번히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소리와 음악을 차용한 작업은 20세기에 있어 여러 장르가 결합된 종합 예술(total art)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소리와 음악을 자신의 작업에 도입했던 여러 작가들은 이러한 토양 위에서 작업의 영역을 설정하였다. 하지만 소위 사운드 아트(Sound Art)라고 불리는 소리 예술은 그 기원도 분명하지 않고 정확한 정의(定議)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런 소리 예술에 있어서 시간적이고 추상적인 ‘음악’은 소리 예술가들에게 하나의 중요한 추상적 범례를 제공하였는데, 이것은 현상계와 정신계를 매개시키려는 그들의 갈망이 음악으로 이끌렸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회화와 조각 작품을 위한 테크닉과 기술적인 세공술이 중요시된 반면, 코스모스(cosmos)의 숨겨진 질서를 밝히고 인류의 행동과 정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음악은 신성한 영감의 예술이었다. 이런 음악적인 논리의 이론적 배경에는 B.C. 6세기경 음악적인 간격(Interval)과 산술적 비율 사이에 일치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Pythagoras)가 있다. 그의 7음계는 7개로 알려진 우주의 행성에 기초를 두었는데, 우주 궤도에서 파생된 이들 행성의 진동을 피타고라스는 천체의 음악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천체의 조화에 대한 신비스런 개념은 르네상스 시대에 실험적인 음악 악기를 발명했던 천재 작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로 이어졌는데, 그는 회화를 음악의 숭고한 위치로 끌어 올리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또한 회화에서 비례의 하모니를 음악적 하모니에 비유하곤 했다. 이처럼 소리 예술은 산업혁명의 발달로 야기된 기계의 소음을 차용하는 작품에서부터 음(音)을 기본 소재로 하는 음악을 차용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소재로서의 음을 어느 한 곳에 한정시키지 않고 일상적인 자연음으로부터 기계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소리를 차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소리 예술은 전통적인 조형예술은 물론이고 키네틱 아트, 설치 작업 등 복합적인 표현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실제로 예술가가 ‘소리’를 제시하지 않는 대신 감상자의 청취 행위를 적극적으로 유발시키는 과정을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지난 2006년 7월 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오감도의 ‘출항, 그 열정의 시작’이 공연을 가졌다. 코리안 월드 뮤직을 꿈꾸고 있는 그룹 ‘오감도’는 전주의 젊은 국악인들과 소위 ‘딴따라’라고 불리는 전자음악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하여 2003년 4월 창단되었는데, 이번 공연인 ‘출항, 그 열정의 시작’은 여러 번의 공연을 거치면서 축적된 열정과 열망을 처음으로 극(劇)형식의 창작공연물로 제작하여 무대에 올린 것이었다. 그동안 오감도의 음악은 ‘우리의 전통적인 선율과 장단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동시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신선하고 실험적인 다양한 형식들을 시도하여 서정적이면서도 열정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런 평가가 이번 공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어리석은 한 젊은이가 삶의 의미를 깨우쳐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번 공연은 우리의 전통국악기와 서구의 전자악기, 판소리와 연기, 전통 무용, 영상 등이 함께 어우러진 극형식의 종합예술 공연으로서 총 7장으로 펼쳐졌다. 그룹 ‘오감도’란 이름처럼, 우리들의 오감(五感)을 적극적으로 자극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온몸으로 작품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자칫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호소력 있는 무대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언젠가 나 장주는 나비가 되어 즐거웠던 꿈을 꾸었다. 나 자신이 매우 즐거웠음을 알았지만, 내가 장주였던 것을 몰랐다. 갑자기 깨고 나니 나는 분명히 장주였다. 그가 나비였던 꿈을 꾼 장주였는지 그것이 장주였던 꿈을 꾼 나비였는지 나는 모른다’라고 했던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나비의 꿈’(胡蝶之夢)을 연상시키는 이번 작품은 전체적으로 전주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의 공연이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음악성에 심혈을 기울인 것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적 완성도와 연주 실력은 발군이었다. 하지만 무대조명이나 영상의 수준은 조악한 면이 없지 않았고 작품의 이해와 공연 전반을 이끌었던 객원 연기는 전반적으로는 작품의 활력소가 되었지만 몇 몇 장면(연주를 하는 도중의 음악과 어울리지 않았던 연기 내용, 작품에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역할 등)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근에 전주에서 추진되고 있는 전통문화중심도시 표방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전통의 진정한 의미 역시 ‘현재와 미래에 있다’는 것이다. 전통이 현재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가 호접지몽(胡蝶之夢)에서 ‘물화’, 즉 ‘사물과의 경계가 없어져서 만물과 융화되어 하나가 되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전통 음악과 서구의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그룹 오감도의 이번 공연은 우리의 전통예술을 현대화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전통예술이 지향해야 될 한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그룹 오감도의 이번 공연은 작품의 수준을 인정받아 서울 아트마켓의 공모사업에도 선정되는 영광과 기쁨을 안았다. 이처럼 전주의 전통예술이 바로 설 때, 비로소 예향의 도시 전주의 전통예술은 창조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곳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태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예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세계박물관문화박람회>, <광복60주년기념 평화와 통일염원展 : 베를린에서 DMZ까지> 전시총감독을 역임했으며 사단법인 구상전(具象展) 주최 제 10회 평론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갤러리 ‘이즘’, ‘예화랑’, ‘세줄’에서 큐레이터로, 분당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전주문화재단 정책연구실장, 미술평론가, 사단법인 ‘문화우리’의 운영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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