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8 |
[이야기가 있는 그림전]문화예술의 당당한 한 페이지로서 만화사(史)를 성찰하다
관리자(2006-08-08 11:25:57)
글 | 김미선 전북대 미술대 강사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이야기가 있는 그림 展>이라는 주제로서 만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특별전시가 열렸다. 즉 이번 전시는 크게 만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시로서, 각각의 정의를 알아보자면, 만화는 우리가 흔히 만화책이라 부르는 지면만화, 출판만화이고,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로서 입체적인 움직임과 음향을 통해 전달하는 영상예술이며, 일러스트레이션은 흔히 일러스트라고 불리는 것으로 목적성과 상업성을 갖고 광고와 게임, 교육용 등 쓰임새가 다양한 디자인의 한 표현방식이다. 정확하게 다시 말하자면, 이 전시작품들은 순전히 예술적 감상을 위해 제작된 순수미술이 아니다.
이러한 비(非) 순수미술이 하나의 전시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는 70년대 말과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형편없었다. 미술대학 졸업생이 만화가의 길을 선택하고 나서면 마치 예술의 정도(正道)를 빗겨가는 양 곡해되었으며, 주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이러한 사회풍토와 예술계의 천시 속에 미술학도가 선뜻 만화가를 지망하고 나선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여기에 수시로 불량만화 추방캠페인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던 만화였지만, 현재는 정규대학에 만화(현 애니메이션) 과가 당당히 신설되는 쾌거를 이룩한 것도 우리 특유의 역사이다.
처음 우리나라 사회에서 만화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당시에는, 대중성에 대한 기득권을 바탕으로 기존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고 예술성을 획득하는 것이 가장 큰 현실적 과제였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만화사(史)는 그 태동기부터 노동운동, 학생운동, 사회운동과 연계되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필연적으로 우리의 만화사의 첫 페이지는 70년대 후반에 생성된 민주노조 운동가들의 요청이 컸다. 그들은 노동자 대중교육을 시청각 매체를 응용하여 보다 흥미있고 현실감있게 진전시킬 수 있기를 바랐고, 이에 대중들이 즐겨보며 가까이하는 만화의 힘에 주목하게 되면서 만화의 선전력을 이용하게 된다. 여기에는 만화운동의 첫 세대인 김봉준, 장진영, 김준호 등이 활약하였다. 이들은 한편 황폐하고 초토화된 노동현장의 고발 뿐 만 아니라 천주교와 기독교의 도움을 입어 농촌 경제부흥과 의식개혁운동을 함께 진행하게 된다. 즉 농민회의 학습교재로 이야기 그림책을 발간하였는데, 이때 발간된 서적들에 <농사꾼타령(1981)>,과 <학마을 사람들(1982)> 등이 있다.
이와 함께 또 한편에서는 만화의 선전력 못지않게 중요한 만화의 예술적 자리매김과 만화에 대한 인식전환을 새롭게 꾀하고자 전시회를 통해 예술적 만화에 힘을 기울이는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김우선, 최민화, 이은홍, 최정현 등이 활약하게 되는데, 이들은 전시회를 통해 발표된 만화를 예술작품으로 끌어올렸으며 만화에 대한 폄하나 천시를 불식시키는데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화에 대한 대중적 지지와 사랑을 전시장에서도 재확인 시켜 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이현세, 김수정, 고우영, 황미나 등 인기 대중만화작가들을 탄생시켰고, 그들의 활발한 활동과 함께 이후 대중만화가 모임, 만화조직 창작단, 다양한 만화동호회 등을 창설하기에 이르게 된다.
또한 이즈음에는 제 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시사만화의 꽃을 피운 시기가 도래한다. 당시 노태우대통령은 자신이 코미디와 만화의 풍자대상이 되어도 좋다고 공식선언을 하였으며, 이에 정치만평의 성역이 해체되는 시기를 맞이한다. 특히 당시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어(1988) 한겨레 그림판의 박재동은 감칠 맛 나는 정치풍자만평의 묘미를 매일 대중들에게 선사하여 정치 풍자만화가 가지고 있는 골계미(滑稽美)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후 만화는 국민적 친밀감이 극대화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데,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만화영화의 제2르네상스를 가져온 월트 디즈니사(The Walt Disney Company)의 1989년 인어공주의 흥행이다. 연이어 디즈니사는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킹, 포카혼타스 등의 성공작으로 전 세계를 강타했다. 만화에 있어서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의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을 보통 아니메라고 한다)는 견고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수요층과 철저한 산업적 구조의 바탕 위에서 전세계 만화영화 시장의 65%를 장악하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의 대성공은 전 세계만화영화 하청 3위가 말해주듯(90년대 당시) 든든한 제작 노하우를 가진 우리나라에 황금시장처럼 들렸다.(이제는 하청 라인이 점점 중국과 대만, 동남아시아로 옮아간 실정이다) 그리고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대, 정보화 시대라고 외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은 한국문화산업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 장담했다. 그리고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기획과 의욕에 가득 찬 새로운 회사들과 많은 인재들이 실로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많은 결실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과연 현재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 사업은 성공했는가! 하청에서 축적된 제작기술과 민간의 열기, 정부의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인재들의 열정이 긍정적 요소들이라면, 부정적인 면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구슬이 서 말 이라도 꿰어야 보배 듯, 기술을 관리하는 기획력의 부족(단순히 만화 영화의 기획 뿐 만 아니라 연출 등을 포함한 총체적 기술면에서)과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는 현실과 이상, 업계의 전반적인 영세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업…그것도 게임에 국한된 기술…은 있으나 예술은 없는 기이한 논리의 천박함은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 땅에서 만화 및 애니메이션의 생(生)은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는 권력과 왜곡·굴절되기 쉬운 인간의 내면세계를 견제 또는 자정하며 자생하였고, 이제 변화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그 동안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디딤돌로 하여 새롭게 만화운동을 열어젖혀야 할 시점에 있다. 광범위한 대중과 만나지는 만화는 앞으로 새로운 문명의 지평을 여는 촉매로 더욱더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이에 전시대의 성과와 시행착오를 밑거름을 하여 아직도 완강한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분투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 못지않게 건강한 정서의 창출 및 교감 또한 긴요하게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전통과 권위의 상징인 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이번 전시는 상업적 대중매체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문화예술의 당당한 한 페이지로서 자리매김함을 확고히 알리는 자리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문화의 한 컨텐츠로서 만화와 애니메이션 작가들은 앞으로 예술가로서의 직분, 예술의 특수성, 예술의 심미성, 예술의 본원적 생명력을 살리면서 예술과 상업미술이 결합하려면 어떻게 해할 할 것인가를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만화, 애니메이션이여 전진하라!!
김미선 | 전북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서울에서 갤러리 ‘창’과 갤러리 ‘서화’의 큐레이터로 일했었다. 현재, 순천대와 전북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