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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 |
[남부시장전] “남부시장전”을 보고 공공미술을 생각하다
관리자(2006-08-08 11:20:11)
글 | 이영욱 전주대 도시환경미술학과 교수 요사이 미술계에서는 “공공미술(Public Art)”이 새롭게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도시의 빈건물을 점거하여 미술가들의 작업공간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공공미술의 이름으로 시도되어 화제가 되었는가 하면, 작가들이 전시장을 떠나 작은 시골마을의 환경개선을 위해 주민들과 협동 작업을 하거나 도시의 상점들 간판을 바꾸거나 상점 안에 전시를 하는 등 다양한 작업들이 공공미술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소식들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흔히 문예진흥법 상의 건축물 미술장식 조항 의무화(1995년: 1%법)에 따라 대형 건축물 앞에 세워지는 환경조각물 정도를 공공미술의 전부로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변화가 좀 어리둥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긴 이들 환경조각들 역시 공공미술의 중요한 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공공미술의 ‘공공’이라는 이념에 적합한 것이었나 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미 적지 않은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물론 취지에 따른다면 공공 공간을 점유하는 대형건물의 건물주들이 재원을 부담하고, 작가들은 이 공간에서 자신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펼칠 기회를 갖게 되며, 시민들은 좀더 개선된 도시의 환경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파행적인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적지 않은 프로젝트가 제도의 취지에는 관심이 없는 건물주들, 그리고 브로커들, 이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감액된 예산으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작가들에 의해 왜곡되어, 시민들은 해당 조형물이 세워진 장소의 공공성 내지 특성과는 무관한 뻥튀기된 전시장용 작업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지난 수 십 년간 진행된 이 1% 제도는 시민들이 도시의 가로와 공간에서 미술을 통해 새롭게 장소를 경험하고 나누며 그 공간을 향유하는 공공미술의 근본이념과는 무관한 것으로 끝났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간 우리에게 경험된 공공미술이 이 정도라면 요사이 공공미술이 또 다시 부각되는 문맥은 무엇일까? 일단 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공공미술을 간단히 정의하면 근대적인 미술개념인 사적 미술(Private Art)에 대응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사적 미술이라는 것은 서구에서 근대 세계가 확립되고 미술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일상 삶과는 분리된 미적 감상물로서 등장하면서 생겨난 미술, 흔히 우리들이 떠올리는 천재적인 예술가의 미술을 말한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이미 60년대부터 앞서의 사적 성격이 강한 근대미술의 체계의 한계 즉 모더니즘의 한계가 지적되면서, 미술과 삶의 연관 그리고 미술에 잠재된 공공적 가치를 중시하는 공공미술이 본격적으로 부각되어 나름의 변화를 겪어왔다. 그 변화 과정은 크게 4단계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단계는 “건축 속의 미술(Art in Architecture)” 단계이다. 여기서는 대체로 기존의 순수 미술작품들 특히 조각 작품들을 통해 정부 건물들의 미적 가치를 제고하는 것이 중심 목표였으며, 프랑스의 1%법(1951년), 미국 연방정부 공공시설청의 ‘건축속의 미술 프로그램’(1963년) 등이 구체적 사례이다. 두 번째 단계는 “공공장소 속의 미술(Art in Pubic Places)”로 공원, 광장 같은 지역의 공공장소에 그 장소의 컨텍스트에 적합한 작업들이 설치되어 공공미술의 독특한 정체성이 형성되는 단계이다. 구체적 사례로는 미국의 NEA(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의 ‘공공장소 속의 미술 프로그램’(1967년)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도시계획 속의 미술(Art in Urban Design)” 단계인데, 여기서는 공공미술이 도시계획의 중요 요소로 활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파리의 라데팡스, 바르셀로나, 필라델피아, 달라스, 로스엔젤레스 등에서 시행하여 문화적인 도시환경 조성에 큰 성과를 거둔다. 네 번째 단계는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 단계로 여기서는 미술을 통한 시민간의 커뮤니케이션 확대와 시민 문화공동체 형성이 목표가 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가운데 작업들 또한 비디오 제작, 퍼포먼스, 미술공방 운영, 주민참여미술과 교육, 정원꾸미기 등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변화되며, 장르도 시각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영화, 비디오, 공연 등으로 확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간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대체로 앞서의 첫 단계 즉 “건축 속의 미술” 단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새로이 공공미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 대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의 젊은 작가들의 작업 경향이나 정부의 정책 방향은 공공미술에 대해 좀더 심화된 인식과 필요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정부에서는 문예진흥법 상의 ‘건축물장식’ 조항을 ‘공공미술’ 조항으로 바꾸려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고, 이미 ‘공공미술추진위원회’라는 것을 구성하여 정부 차원에서 공공미술 작업들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작업들 중 많은 수가 앞서 말한 “뉴장르 공공미술” 유형의 작업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전주 남부시장의 비어있는 한 점포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부시장전도 이런 문맥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6월 24일부터 7월 24일까지 한 달간 벌어지는 이 전시는 실상은 문광부가 남부시장과 관련하여 지원한 3년 동안의 사업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시기에는 시장 옥상에서 학생들의 캠프도 열린다. 캠프에서는 “남부시장 곳곳의 이야기지도, 설계도, 남부시장 답사하면서 찍었던 사진 등으로 전시도 하고, 시장의 미술 간판도 만들고, 숨어있는 공간을 찾아내어 예쁘게 단장”도 한다고 한다. 아마도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시장을 체험하고, 그 장소와 그 곳을 사는 인물들이 내장하고 있는 역사와 기억 그리고 현재의 문화와 실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캠프가 끝나면 각자의 마음속에 나름의 인식적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인식적 지도가 얼마나 의미 있고 풍부한 것이 될 것이냐는 교육 과정이 얼마나 유의미하게 기획되고 또 능숙하게 실행될 것인가에 달려있다. 전시장에는 두 작가의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그 작업들은 앞서 말한 사적 미술에 속한 것들이었다. 전시 자체는 전체적인 이 프로젝트의 목표와는 유리되어 있었다. 그간 미술의 지역성에 관련한 논의들이 적지 않았다. 하나하나의 작품 속에서 지역의 정서와 삶 그리고 지역의 문화가 배어나오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새로이 생각해 보아야 할 논점의 하나는 “지역이 필요로 하는 미술”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술과 지역의 삶과 미래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질문이 요구되고 활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영욱 |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한국미학회 예술과 사회분과 분과장, 한국현대미술사학회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전주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현대미술사학회 학술간사, 문예미학회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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