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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 |
[골목길] 골목길 탐방 -순창 적성면 귀미리
관리자(2006-08-08 11:18:13)
귀미마을 골목길의 표지없는 ‘표지’ - 순창 적성면 귀미리 순창군 적성면에 있는 귀미리 마을은 푸근한 섬진강변 옆에 호젓하게 앉아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앞, 거북바위의 꼬리가 마을을 향하고 있다고 해서 귀미(龜尾)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고려 말, 개성에서 정변으로 시부와 남편을 잃고 남원 양씨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낙향한 숙인 이씨가 터를 잡았다고 전해지는 이 마을은 그 역사만하더라도 600여 년을 헤아린다. 오래된 마을이니 만큼, 요즘의 길과는 확연히 다른 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이 마을을 찾게 된 이유였다. 귀미리를 찾아간 것은 장마비가 한창 7월 20일 이었다. 이흥재 사진작가와 함께였다. 귀미리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주에서 출발해, 쭉쭉 뻗은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운암까지 가서, 그곳에서 다시 일반도로를 타고 약 30여분을 달리면 도착할 수 있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던 몇 십 년 전만하더라도 ‘아주 먼 곳’이었을 귀미리는, 이제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오직 속도를 위해 ‘진화된 길’을 타고, ‘옛길’을 찾아갔다.   귀미리를 가장 먼저 확인케 해준 것은 마을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버스정류장이었다. 버스 정류장 뒤로는 4백년 된 당산나무와 열녀비, 그리고 마을 어른들에게 ‘사랑방’ 역할을 하는 정자가 보였다. 열녀비에는 ‘고려 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이씨지려’라고 쓰여 있었다. 17774년 영조 때 세워진 것이라는 안내문도 보였다. “이 열녀비는 ‘성리학’이라는 당시의 사회이념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이 마을에 있어서는 대단히 상징적이고 자부심을 주는 것이죠. 이 열녀비를 토대로 이곳이 남원 양씨의 집성촌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집성촌이라는 것이 이 마을길의 모양새와도 어떤 연관이 있을 겁니다.” 이흥재 작가의 설명이었다. 마을버스정류장 뒤로 길은 계속 이어졌다. 바로 보건진료소와 교회가 마을 맨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그 앞 공터엔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은 이곳부터 시작되었다.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따르자면, 이곳부터 ‘골목길’이라 부를 수 있을 터였다. 토담과 돌담으로 만들어진 귀미마을의 골목길은 아름다웠다. 오래된 돌담 곳곳에 끼어있는 파란 이끼들과 간간히 담 위에 얹혀진 기와들이 마을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길엔 쓰레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아침이면 싸리비를 들고 나와 집 앞 골목을 쓸며, 이웃과 인사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정갈한 돌담 옆 어느 집 담벼락에 빨간 스프레이 페인트로 써진 낙서도 정겨웠다. ‘즐꺼지삼’이라는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이었다. 어느 집 아이가 장난을 친듯했다. 골목길은 아무런 규칙성 없이 이리저리 구불구불 뻗어 있는 듯했다. 단순히 그냥 집과 집을 연결하는 역할에 충실한 것처럼 보였다. 비가 와서인지 지나가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마을에 우물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느 길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예쁜 담들을 구경하며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길이 다시나온다거나 하진 않았다. 마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말해주는 그 어떤 표지도 없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자연스러운 동선이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어주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목적지 없이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우리 눈앞에 커다란 대문이 나타났다. 갈색 바탕에 삼태극문양이 선명했다. 이흥재 작가는 이곳에 종가집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이 집성촌이라 모든 길이 종가집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 같아요. 종가집을 중심으로 집들이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골목이 형성된 것이죠. 그래서 마을 어디서 출발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종가집으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종가집은 마을 위쪽에 위치해 있어,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종가집에서 나와 조금 더 올라가자 마을의 공동우물이 보였다. 공동우물에서는 마을의 길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당시 종가집과 함께 생활의 중심지였을 공동우물도 마을 어디서 오건 이곳으로 유도하는 자연스러운 동선을 형성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귀미리의 골목길은 근대의 도시처럼 목적지를 직선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곡선으로 이어진 길들은 ‘보일 듯 말듯’ 마을을 품고 있었다.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집들과 함께 그냥 그렇게 놓여진 ‘마을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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