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8 |
[골목길] 우리마을 골목길 -고창군 신림면 가평마을
관리자(2006-08-08 11:12:46)
고풍스런 전통한옥과 아담한 돌담길 -고창군 신림면 가평마을
글 | 이명훈 고창농악전수관 관장
열아홉가구가 살았던 경주이씨 집성촌 자그마한 우리 동네 아짐(아줌마) 중에 혼자 사는 개팽댁이 있었다. 단아한 쪽진 머리에 항상 온화한 웃음을 가진 할머니. 아들이 없어서 작은 아버지가 그 집 양자가 되어서 아주 가깝게 지냈던 아짐이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개팽아짐이라 불렀던 것 같다. 눈에 보기에는 할머니였는데 그 할머니를 아짐이라 불러야 하는게 자연스럽지 않았지만 가까운 집안이었는가 보다. 일찍 돌아가셔서 많은 기억은 없지만 그 개팽댁의 개팽이 어디인지는 모르고 지냈으며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고향 마을을 떠나 산지 어언 20년. 자그마한 우리 동네는 이제 할머니들만이 집을 지키고 있는 7가구만 남았으며 어릴 때의 기억도 가물가물 하고 동네의 옛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만큼 변했다. 나의 탯자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공허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고창에 대한 애정이 생긴 것은 고창농악을 배우면서이다.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고창농악을 배운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었는데 고향을 떠나서 굿을 배우게 되었고 그때 고창굿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또 세월이 흘러 고창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다.
고창의 마을굿을 정리하고자 고창군의 각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해서 고창의 농악에 대해서 제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고창이 풍물굿의 보고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는 각 마을굿들을 보면서 굿의 원형을 직접 보고 정리 할 수 있었던 것이 고창굿의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대체적으로 큰 마을들이 굿이 성했으며 지금까지도 당산제나 줄감기 등이 끊이지 않은 마을 자체가 성하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 굿을 본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 우리 마을은 굿을 안치는 동네였나 보다.
고창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탐이 나는 동네가 있다. 마을앞에 당산나무가 있고 마을 공동 우물도 있고 100여 호 가까이 되는 큰 마을. 나도 이런 동네에서 살았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마을. 그런 마을에서 옛날 어른들이 굿을 치는 것을 보고 자랐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마을.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마을이 신림면 가평마을이다. 고풍스런 전통한옥과 아담한 돌담길이 굽이굽이 이어진 마을. 700여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가평마을은 이웃과의 경계가 온통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길이가 3000여 미터에 이른다.
장흥고씨, 고흥유씨, 행주기씨 집성촌인 가평마을은 현재 80여 호의 큰 마을이며 뒤로는 방장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어 방장산의 기운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마을이다.
가평마을 최고령인 유종남(84세) 어르신과 마을 이장님께 마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들었던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마을 당산제에 대한 것과 옛날 굿치던 얘기다. 그리고 가평을 개팽이라고 부른다는 것. 사투리이겠지만 가평보다 개팽이 훨씬 정감이 가는 동네 이름이다. 그 옛날 우리 동네에 사셨던 개팽아짐의 친정 동네가 바로 가평이었던 것이다. 유종남 어르신께서도 우리 동네로 시집온 개팽아짐을 알고 계셔서 어찌나 반가웠던지…
가평마을의 돌담은 마을 주민들 스스로 세대를 이어가며 쌓은 것으로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보호해야할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주말이면 사진가들이 카메라를 들고 자주 찾아오고 있다.
고창굿을 치고 있는 나로서는 가평마을의 골목길이 새롭게 다가왔다. 해방전후 고창의 최고 상쇠 박성근과 최고 장구잽이 김만식을 사다가 굿을 쳤던 것을 가장 자랑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명인들의 가락과 몸짓이 골목골목 울려 퍼졌을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어느 집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굿판이 걸판지게 벌어졌을 때 돌담장 너머로 굿을 구경하던 마을 아낙네들과 처녀들의 가슴은 얼마나 설레였을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여자들이 굿을 배우고 치고 다니고 있지만 그 옛날에는 여자들이 굿을 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한다.
한가한 가평 마을의 골목길을 걸으면서 상상한다.
골목골목에서 까르르 웃음 지며 놀던 어린아이들과 물동이를 이고 마을 공동샘에서 물을 길러 다니던 아낙네들 그리고 나뭇짐을 지고 걸어가던 젊은 남정네들… 그리고 매굿을 치며 골목길을 다녔을 굿패들. 정월 대보름날 당산나무에 줄을 감기 위해 마흔여덟 가락을 꼬아 줄을 드려 큰 줄을 만들어 온 동네사람들이 줄을 메고 오방을 돌고 남녀로 편을 갈라 풍년을 기원하는 줄다리기를 하던 크고 작은 골목길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그 복작 복작대던 골목길에 서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마을이 바로 가평이다. 지금의 골목길은 빈집대문에 엉클어져 있는 담쟁이와 담벼락밑에 오밀조밀 피어있는 봉숭아가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열아홉 가구가 살았던 작은 동네에서 자란 작은 소녀가 어느 날 훌쩍 커서 굿을 치게 되고 80여 호가 넘는 큰 마을의 어느 골목길에 서서 언젠가는 고풍스럽고 아담한 골목길을 돌며 굿을 치게 되는 날을 상상하며 골목길을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