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8 |
[골목길] 골목길, 가요와 만나다
관리자(2006-08-08 11:08:58)
골목길 블루스
글 | 이수영 노래모임 우리동네 공동대표///가로등도 졸고 있는
비오는 골목길에 두 손을 마주잡고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애태우던 그 날이
지금도 생각난다 자꾸만 생각난다
그 시절 그리워진다
아~ ~ 지금은 남이지만
아직도 나는 못 잊어 (김수희, 못잊겠어요, 1983)
음악은 사람과 사회, 그리고 문화의 한 현상들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여러 가지 음악적 장르가 있지만, 음악적인 가치로 평가하든, 음악적 수준으로 평가하든, 그 장르중 하나인 대중가요는 대중이라는 뜻에 ‘많은 사람들(mass)이 좋아하는(popular), 인기 있는’ 이라는 단어의 뜻과 또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기 때문에 수준 높을 순 없다는 아이러니한 키치적인 이중느낌을 제공하곤 했다.
대중가요는 그렇게 평가절하 하시는 비평가들의 말씀들을 뒤로하고 어쨌든 더운 날 라디오를 틀고 부채질하며 따라 부르던 친한 우리네 노래였다.
대중가요든 대중가요의 바보 같은 모습에서 나온 똑똑한(?) 민중가요든 모두 먹고 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때 음악이 사람과 사회의 문화현상을 표현하는 것을 그 가치로 본다면 가요만큼 우리네 삶을 편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것은 없을 것이다.
서두에 있는 노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애창가요, 김수희의 ‘못잊겠어요’이다. 가로등도 졸고있는 지리한 공간이지만 김수희는 그 골목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애타게 그립다. 감정공유가 된다. 골목길에 옛사랑과의 추억 하나 남겨놓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하~ 골목길에 쌓여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우리의 머릿속을 맴돌다가 모두 다 노래 속에 자리를 잡았다.
언젠가 너의 집앞을 비추던 골목길 외등 바라보며
길었던 나의 외로움의 끝을 비로소 느꼈던거야
(김민우, 사랑일뿐이야, 1990)
나의 하루를 가만히 닫아주는 너 / 은은한 달빛따라 너의 모습 사라지고 / 홀로남은 골목길에 수줍은 내 마음만
(윤도현, 사랑2, 1994)
하루 종일 비내리는 좁은 골목길에 /우리 아끼던 음악이 흐르면
잠시라도 행복하죠 그럴때면 너무 행복한 눈물이 흐르죠
(어떤가요, 이정봉 1997, 박화요비 2002리메이크 )
노래 속에서 골목길은 종종 사랑과 추억의 공간이다. 그녀와 그, 설레는 첫 키스와 포옹, 그 좁고도 넓은 그 공간이 서로의 손을 잡고 헤어지기 아쉬운 사랑의 공간이기에 이미 그 골목길은 둘만의 달콤함과 헤어짐의 아쉬움을 간직한 소중한 보물창고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골목길은 사랑 때문에 눈물짓던 그리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골 옆집 순이누나는 중학교만 간신히 마치고 누가 볼 새라 골목길을 빠져나와 황토 마루 눈물 고개 울며불며 돈 벌러 아리랑 고개를 에야 디야 떠나갔다(순이소식, 근대민요). 어렵게 살던 시절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골목길을 빠져나와 서울로 돈 벌러 가던 이가 어디 순이누나 뿐이더냐.
나훈아는 두 손을 마주잡고 아쉬워하며 골목길을 돌아설 때, 손을 흔들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이 천리타행 멀리 가더니, 가을이 다가도록 소식은 없고 하염없이 돌아가는 고향의 물레방아만 애꿎게 바라보는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노래했다. (물레방아 도는데, 1972).
잘 살아 보자는 조국의 근대화에 부응하여(?)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뒤로 하고 골목길을 빠져나왔던 사람들이 청춘을 바치고 집을 돌아 왔을 때는 이미 초가집도 고쳐지고 마을길도 넓어져 옛 추억을 회상할 골목길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호박넝쿨이 담장을 넘어서 골목길까지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하던 시골집을 떠난 순이누나와 사랑하는 이는 이제 그리운 사람을 뒤로하고 공장불빛이 바랠 때쯤이면 도시의 어느 골목길에서 지친 가슴을 달랜다.
공장불빛은 빛을 바래고 술 몇잔에 털리는 빈가슴
골목길 지붕 어두운 모퉁이 담장에 기댄 그림자 하나
어떻게 하나 슬픈 사랑들아 뭐라고 하나 떨리는 가슴도
하나 없어라 슬픈 사랑노래여 심장에서 굳센 노래 솟을 때까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랑노래, 1991)
골목길이 이렇게 애타는 공간 이였던가!
사랑과 기다림에 목마른 골목길은 그래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리메이크 된다. 80년대에 로봇춤을 처음 유행시키며 감정을 누르듯이 기계음처럼 반복하며 종알거렸던 이재민의 골목길(골목길 1987)은 2002년 You're the international bam에도 그 아들들이 힙합바지를 입고 의미없는 말들을 지껄이며 쓸쓸히 기다리고 있다. (양동근 골목길 2002 리메이크)
하지만, 아뿔싸! 여기에 두 사람의 경고자는 한술 더떠 인간의 본성을 질러댄다. 싸이와 조피디는 신촌블루스가 골목길을 접어들어 그녀의 창문만 바라보며 행여나 만나면 아무 말 못하고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태우던 그 골목길(신촌블루스 골목길 1989)을 지금은 세상불만 가득한 귀신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음(陰)의 세상이 또 존재함을 경고하고 있다. 80년대도 혹은 그전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노리는 나쁜 인간들은 있었겠지만, 이제야 그런 사실을 실랄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니, 세상 많이 좋아 진건가. 가요가 이제야 하고 싶은 말들을 내뱉는것인가, 어쨌든 그러니 뒤통수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들은 솔직하게 골목길을 정화하고 싶은 진정한 골목길 수호자는 아닐까.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깨고 방문차고 방문해 교육해주고 패주고 싶다 똑바로 살라고 남 짓밟으면서 살지 말라고 낮엔 내가 약해 막해도 삿대질해도 웃을 수밖에 착해 보이지 사악해 실은 이성을 잃은지 오늘 밤에 너 조심해
(조PD-싸이, 골목길 2005 리메이크)
골목길이 소중한건 그것이 큰 길에서 나와 사람과 사람을 엮는 동네 안을 통하는 공간이기에 그렇다. 골목길은,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과의 스치는 듯한 만남이 흘러가는 큰 길에서 나를 알고 반갑게 인사하는 한사람이 있어 비로소 누군가에서 나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작은 소류지들이 모여 호수가 되고 강이 되듯이 그 소류지들이 깨끗이 보존될 때 강과 바다가 그 푸르름을 잃지 않듯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작은 통로로 따뜻한 골목길이 있을 때만이 더 큰 우리를 만들 수 있다.
큰 아파트, 큰 차, 모든걸 쉽고 빠르게 해결하는 현대인들이 차에서 내려 투덜거리며 반드시 걸어서 들어가야하는 공간, 그것은 인간과 인간에게서 가장 소중한건 바로 서로간의 따뜻한 호흡이란 걸 알려주는 것이다.
오늘도 골목길은 잊어버렸던 옛 추억 하나를 토해내고, 어느새 입가엔 노래하나가 흥얼거린다.
골목길 접어 들때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한없이 바라보았지
수줍은 너의 얼굴이 창문을 열고 볼 것만 같아
마음을 조이면서 너의 창문을 한없이 바라보았지
만나면 아무말 못하면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태우네
바보처럼 한마디 못하구서 뒤돌아가면서 후회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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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 전북대학교 노래패 연합 분과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노래모임 ‘우리동네’ 회장으로 활동하며, ‘이수영 음치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