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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 |
[골목길] 그 길고도 우아한 곡선
관리자(2006-08-08 11:05:53)
우리시대의 골목길 글 | 백석종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길...골목길. 걸어 다니고, 지게로 지어 나르고, 손수레가 다니던 골목길이 사라지고 있다. 농촌의 자연부락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달동네, 산업화 이전에 개발된 교동 한옥지구와 같은 주거단지에서는 큰길에서 대지에 이르는 보행위주의 접근로가 존재한다. 이러한 도로의 유형을 골목길이라 부른다. 실제 신시가지나 재개발지에서는 그 개념조차 없다. 심지어 농어촌 지역에 새롭게 개발된 전원마을에서 조차도 가구(block) 개념의 단지 및 도로망체계가 도입 시행되어 도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소위 전원주택단지로 개발된 주거단지를 방문해보면 단지 도시를 벗어나 농촌지역에 위치해있고, 대지 규모가 다소 여유가 있을 뿐 단지의 형태가 도시주거단지와 흡사하여 왠지 전원의 자연스런 분위기가 느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획일적인 배치와 동선의 체계와 접근로에 기인한다. 건축법상 모든 대지는 도로에 접하게 되어있다. 도로에 접하지 않아 건축 행위를 할 수 없고, 따라서 대지로서의 가치가 없는 땅을 흔히 맹지라 한다. 개별대지에 이르는 최종 단계의 도로를 국지도로라 하며, 모든 대지는 이 도로에 면하여, 개별대지마다 차량이 접근할 수 있어야한다. 따라서 주거단지 개발과정에서 택지 계획이나 획지 분할에서는 골목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차량통행이 가능한 국지도로는 개별대지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의 접근로이다. 폭이 더 좁은 하위의 접근 동선의 단계가 불필요하게 된 것이다. 길은 좁을수록 좋다. 골목길은 폭이 좁다. 좁은 길옆 양쪽에 대문과 집들이 인접해있고 처마가 맞닿아있거나, 골목에 면한 상가나 식당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기도 한다. 다소 복잡하기도하고 때론 지저분하기도 하다. 거닐다가 서로 부딪히기기도 하고, 이런 저런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해 걸어야한다. 하지만 이런 좁은 골목길은 담장너머 뻗어 나온 백일홍나무가지가 그늘이 되고 그 아래 돗자리를 펼쳐지면 한가로운 동네 아낙과 노인들의 작은 사랑방이 되기도 하며, 어린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골목에 면한 담장에는 동네 아이들의 낙서가 있고 작은 가로등불 아래서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가 이루어진다. 어느 도시든 골목길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그들과 다른 생경한 삶과 자연발생적으로 생성하여 오랜 세월 그 곳에 스며든 문화를 엿보고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골목길은 물론이고 유럽의 고도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경차가 아슬아슬 지나다니고, 그 위로 빨래가 걸려있는 골목길의 매력은 바로 그 휴먼 스케일에 있다. 길이 수행하는 주된 기능은 통행(traffic)과 접근(access)과 공간(space)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방재, 피난통로, 공급 및 처리시설의 매설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함에 있어 통행을 주된 기능으로 하는 길과 접근과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주된 기능으로 하는 길은 도로의 폭과 그 도로에서의 이동속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를 도로의 위계성(hierarchy)이라하며 가로체계상의 위치, 접근성과 이동성, 담당하는 교통류의 특성에 따라 도로의 폭과 단면, 교통량의 수용정도, 도로변의 토지이용 등이 달라진다. 예컨대 인체에서 동맥과 정맥에서 실핏줄에 이르는 혈관의 체계와 같이 길도 그 종류와 역할에 따라 고속도로에서 골목길에 이르기 까지 그 모양과 크기가 달라진다. 대동맥에 해당되는 고속도로가 신속한 이동(movement)을 위한 자동차 전용임에 비하여 모세 혈관에 해당되는 골목길은 접근(access)과 공간(space)적, 장소(place)적 기능을 위주로 하는 사람 중심의 보행 공간이다. 실핏줄에 해당되는 골목길은 인간이 최종의 보금자리로 접근하는 말단의 통로이다. 따라서 차량이 아니라 사람이 주가 되고, 그리하여 가장 인간적인 척도로 이루어지는 접근로이며 일상의 삶이 녹아있는 생활공간이기도하다. 골목길은 좁고, 그래서 더욱 인간적이다. 길은 좁을 수 록 인간적인 속도를 유지한다. 골목길에 접어들면 보행의 행태가 달라진다, 골목길에서는 비로소 속도의 여유를 회복하며, 지나는 사람들이 서로 눈길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래서 부딪히고 때론 부대끼며 사람 냄새를 품고 삶의 흔적을 담는 공간이 된다. 길이 좁으면 부딪힘이 있어 좋다. 좁은 골목길을 헤쳐오가며 자연스레 접촉이 이루어지고 얼굴을 익히고, 서로 인사가 이루어지는 교류의 장이 된다. 돌아가는 길이 더 좋다.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길은 짧은 동선과 속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접근과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더 중요한 보행위주 접근도로는 이동의 기능보다는 공간적 경험과 과정이 더 중요하다. 직선으로 뻗은 탁 트인 길보다는 구부러지고 시야가 가리고 트이며, 다양한 경관을 제공해주는 길이 지루하지 않아 거닐기에 좋다. 획일적으로 길 주변과 바닥이 정리된 길보다는 다양한 모습으로 다른 표정과 분위기를 보여주는 그런 길이면 동선이 길어도 무방하다. 좋은 길은 과정이 있다. 과정적 공간은 공간적 경험을 제공한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밋밋함 보다는 거치적거려 볼 거리, 들을 거리 그리고 즐길 거리가 많으면 더 좋다. 우리의 골목길에는 이런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항상 펼쳐있었다. 그래서 골목길에 작은 평상을 내놓고 앉아 있으면 온종일 심심하지 않았다. 막다른 길이 더 좋다. 새로 이사 온 집은 골목 안 이웃에게 떡을 돌렸다. 막다른 골목은 나가고 들어오는 입구가 하나이다. 우리의 골목은 대개 통과해 거쳐 가는 길이 아니라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하는 막다른 길이다. 입구를 공유하는 골목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공동체 의식이 생기게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이 서성이면 한번 되돌아본다. 서구의 주거단지에서 쿨드색(cul-de-sac)이 가장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단지의 동선체계인 점과 일치된다. 거쳐지나가는 길보다는 막다른 골목에선 이웃의 한계를 더 명확하게 정해진다. 길을 통해 교류와 접촉이 이루어지고 이는 이웃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굳이 반상회를 하지 않아도 골목길에 뒹구는 낙엽을 청소하면서 자연스레 이웃이 된다.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애착이 생기고, 더욱 더 정감 넘치는 살만한 우리 골목이 된다. 복잡하지만 정갈한 길   골목길에는 영역성(territoriality)이 있다. 인간사회에서 영역은 개인 혹은 일정의 사람들이 사용하며 심리적이거나 실질적인 소유권을 행사하는 일정 한도내의 지역을 지칭한다. 동물들이 배설물로 자신의 영역의 범위를 표시를 하듯이 인간도 법적인 소유의 여부를 떠나 자기  골목길에선 눈이 오면 으레 대문 앞의 눈을 치운다. 아니 평소에도 대문 앞 골목길을 깔끔히 가꾼다. 때론 대문 앞 골목길에 조그만 나무 궤짝을 놓고 채송화와 나팔꽃으로 꾸미고 자신만의 표현을 한다. 때론 작은 의자가 나와 있고 거기 앉아 신문을 보거나 장기를 두거나 지나가는 동네 사람과 두부 장수를 보며 삶의 모습들을 즐긴다. 대문 앞 골목길을 자기의 영역으로 여기며 준사적 공간으로 가꾸고 낯선 자가 침범하면 경계한다. 대문 안의 사적 공간(private zone)과 대로의 공적 공간(public zone)사이를 이어주는 반 사적(semi-private)이고 반 공적(semi-public)인 공간이다. 즉 영역의 위계적 구성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거주민의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져 주거환경의 악화를 유발한다. 고밀도 아파트단지에서 현관문만 닫고 들어가면 복도나 통로 공간에 대한 영역성이 없음으로 해서 그 공간에 대한 무관심이 범죄발생에 용이한 환경이 된다.  오스카 뉴먼이라는 환경심리학자는 이러한 골목길에서의 영역적 특성을 뉴욕의 아파트내 통로에 적용하여 범죄 발생을 저하시킨 사례를 발표하고, 이를 방어적 공간(defensible space)이라 하였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사회 심리적 기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곳이 바로 우리의 골목길이다. 골목을 내 영역으로 여길 때 관심을 갖게 되고 가꾸고 나만의 표시를 한다. 골목 사람들이 나와 거닐고, 뭔가 장식을 하고, 멍석이나 간이의자가 나와 있어 복잡하지만 내 집 마당 마냥 가꾸어 정갈한 골목길이 된다. 공간으로서의 길, 장소로서의 길. 건축은 공간과 형태라는 양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흔히 서양의 건축은 형태가 동양의 건축은 공간이 잘 발달되어있다고 한다. 서구에선 건축이 조각과 같은 형태로서 부각되는 객체적 존재로서 발달된 반면, 동양 특히 우리의 건축은 오브제로서의 건축보다는 그 내부의 공간, 건축과 건축의 사이의 외부 공간, 건축과 자연사이의 공간, 나아가 자연 자체의 공간속에 일체가 되는 공간적 특색을 보여준다. 안방과 대청, 대청마루와 마당, 안마당과 사랑마당 그리고 행랑마당, 담장 내부와 골목길, 골목길과 마을 주진입로, 정자나무가 있는 마을 어귀와 신작로, 부락과 이를 감싸는 뒷산과 앞산, 그리고 대자연이 구분되며 연결되어있다. 즉 내외부공간이 중첩되면서 사랑채 누마루가 개울건너 저 멀리 자리한 산봉우리와 연결되어 하나의 공간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전통가옥에는 일본식 주택처럼 인위적인 정원이 없다. 주택을 둘러싼 대자연이 내 정원이다. 골목길은 주택과는 낮은 담장으로 구분되는  외부공간이며, 마을 전체로 보면 내부공간이다. 자연과 주변 환경에 순응하며 이루어진 이런 시골 마을의 골목길이 포근하고 정겨운 건 단순히 통로로서의 기능적 공간을 넘어 내부공간으로서의 장소적, 공간적 의미가 스며있어서 이다. 골목길은 통로로서의 물리적 기능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이 골목길은 이동의 장이며, 휴식의 장이기도 하고, 어린이들의 놀이의 장이며, 만남의 공간이고 또한 생활의 장이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의 골목길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레 우리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삶의 지혜가 묻어 녹아있는 골목길은 이제 가난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연속극의 배경으로 등장하거나, 아직 개발의 혜택이 못 미치는 달동네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런 골목길의 모습과 문화를 낙안읍성이나 하회마을처럼 박제화 된 모습으로 보존할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의 생활양식이 변화되고 개발과 더불어 짧고 빠른 동선체계에 길들여져 있다. 의미보다는 빠르고 편리한 동선이면 족하다. 그러나 이젠 길의 이러한 물리적 기능 못지않게 심리적, 행태적, 사회적 기능도 중요한 환경적 요소임을 깨달아야한다. 그러한 중요한 가치와 방법이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골목길에 녹아있다. 이제 우리 시대의 골목길은 아파트 복도일 수도 있고, 계단실일 수도 있으며 단지 내 보행자도로일 수 있고, 천변 고수부지의 산책로일 수도 있다. 오늘날의 이런 길은 물리적인 형상과 재료와 그 모양은 옛 모습과 다를지라도, 우리의 정서와 문화가 배어있는 골목길의 공간적 장소적 의미와 가치를 진지하게 음미하고 이를 지혜롭게 적용하여야한다. 이젠 빠르고 편리한 길보다는 여유와 가치와 문화가 스며있는 새로운 모습의 골목길을 소박하지만 세련된 공간으로 가꾸는 것은 건축가와 환경디자이너는 물론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백석종 | 1958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워싱턴대 교환교수와 연변과기대 겸직교수를 지냈고, 대한민국 건축대전 초대작가를 역임했다. 현재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로 재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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