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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7 |
[장수소식] "돌아 올 장"
관리자(2006-07-07 14:44:22)
축구가 온통 세상의 소식들을 뒤덮었다. 농민의 본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FTA문제도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들이 부족한 채 단순한 소식들만 들려오고, 인도의 지진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을 터인데 더 이상의 소식은 잘 모르겠다. 우리가 2:1로 이겼던 토고라는 나라도 우리의 6-70년대의 삶의 모습과도 닮았다. 오늘은 장계 장날이다. 장수에는 장이 두 곳에 선다. 장수장은 매 5일이고 장계장은 매 3일에 5일마다 열린다. 장수 장터는 허름한 건물 다 밀고 콘크리트로 새집지어 이사한지 꽤 되었다. 장계가 고향인 나는 장계장터 만큼은 그대로 남거나 옛 모습으로 복원되기를 주장하고 바래왔지만 요즘 장계장터도 콘크리트 집으로 확 바뀌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다리 결에 펼쳐진 이동식 좌판이 새 건물과는 왠지 낯설어 보이고, 마음 한구석에 나의 추억이 사라져 가고 있는 서글픔은 더욱 낯설다. 장계장터는 뜻있는 작가들이 살리려고 노력도 많았던 곳인데, “왜 우리는 우리의 것을, 살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이 복지의 현대이고 그것이 미래의 희망일까?” “돈도 많이 들어갔을 터인데…” 끊임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다. 오늘은 기자실에 인사차 들렸다가 어릴 때의 이야기 한 토막을 듣고서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을 가졌다. 우리나라의 6-70년은 학비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 육성회비나 수업료가 밀리면 선생님은 꼭 학생들을 불러 다짐을 준다. “언제 수업료 낼꺼이냐?”라고 물으면,“아버지가요오… 돌아오는 장날에는 꼭 주신데요.” 대답은 늘 일정했고 어린 마음에 제일 적당한 대답이었다. 불과 30 여 년 전이다. 비포장도로에 부연 먼지 일으키며 달리던 시골버스나 연상이 되었던 시골 장터에는 이제 건물도 좋아졌고, 자가용도 많고 양복 입은 신사도 많아졌다. 그런데 정감 있던 목조건물은 없어졌고 한복 입은 신사는 하나도 없으며 손님은 반에 반으로 줄었고 지금도 줄고 있다. 요즘은 문화를 거론하고, 예술을 이야기하면 얻어맞기 딱 알맞은 때다. 환청이 들린다.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왠 빌어먹을 소리여” 현장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올려 봐도 훼방이나 놓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저 앞가림이나 하는 정도이다. 시골은 우리나라역사의 산실과 관습이 그나마 남아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 정부나 사회의 시각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 온 연후에 산업과 물질을 바라보아야 할 시기다. 철학이 필요할 시기다. 아버지는 두툼한 허리춤에 돈다발 꿰어 차고 막걸리 한잔에 명태국 끓이는 날이 있었는데, 내 마음에 돌아올 장날이 있을 것인가? 고태봉/ 장안문화예술촌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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