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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7 |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
관리자(2006-07-07 14:26:27)
살다보니 세상에는 신기한 것도 특이한 사람도 참 많았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만날 때 생의 무료한 장막이 한 꺼풀씩 벗겨지곤했는데 오랜만에 장막 하나가 그 옷을 벗었다. 요상한 분위기의 술집에서 장사에 목숨 걸지 않는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 온 벽이 2만여 장의 벽돌로 치장된 가게 내벽과 물결치는 모양의 거대한 나무탁자, 이동하기 편하게 롤러를 댄 나무의자, 투박한 시멘트가 그대로 보여 공사가 덜 된 느낌을 주는 천정, 어둡고 약간은 음침하지만 오랜 연륜의 향이 맡아지는 비포장의 인테리어는 이 곳 주인인 박주식 씨가 오랜 생각과 공을 들여 만든 것이다. 이 곳을 처음 구상할 때 그는 오래된 성을 테마로 삼았다는데 그래서인지 고성에 가본 적도 없는데 성의 맨 꼭대기에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비포장에는 손님이 있든 없든 음악이 있다. 장르? 없다. 그냥 그 때 그 때 좋아하는 음악을 사서 모았다. 손님?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술 먹는 사람이 없어도 박주식 씨는 근심이 없다. “여기는 손님이 없는 날이 더 많아요. 그래도 내 개인 작업공간이란 생각이 강하니까 조바심이 없지~ 내 할일이 너무 많아서 외로울 새도 없고….” 작업 공간? 박주식 씨의 본 직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러나 어떤 날은 노래 부르는 가수가 되고, 또 어떤 날은 무거운 수동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작가가 된다. 또 어느 즐거운 날에는 오토바이로 산을 오르고, 기분이 좋으면 장구를 치고 노래도 부른다. 벽의 둘레에 테이블을 배치해놓았기 때문에 가게의 중심부는 깔끔히 비워져있다. 그렇기에 작업공간으로도 무대로도 사용할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곳은 비포장을 찾는 단골손님들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무대다. 흥에 겨운 사람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바로 춤을 추기도 하고 주변에 있는 악기로 연주도 하고 시끄럽게 노래도 부른다. 다른 술집들 같았으면 옆 사람에게 방해될까 싶어 주춤할 테지만 서로가 다 아는 사람들이고, 그러려고 찾아왔으니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어떤 날에는 정식으로 공연도 이루어진다. 기타, 피아노, 단소, 대금, 북, 꽹과리, 장구 등의 악기는 이미 구비되어 있다. 그래서 비포장은 술집이기도 하지만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저자거리와도 같다. 비포장에서 파는 것은 병맥주 단 하나뿐. 메뉴판이 없으니 안주 역시 없다. 깔끔하게 맥주랑 새우깡만 있다. 이래서 장사가 될까 싶은데 돈 벌 목적으로 만든 곳이 아니란다. 이래저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는 것…. 주인과 기자만 앉아있는 넓은 테이블 위에 맥주가 한 병 두병 쌓인다. 이야기도 자연히 대중없이 웃고 떠들어진다. “이름을 술 주(酒), 밥 식(食)으로 바꿀까?” 우스갯소리를 던지는 박주식 씨가 “술이 들어가면 내가 노래를 안 할 수가 없다”며 이내 기타를 가져와 한곡 뽑으신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이렇게 자유로운 곳, 손님과 주인이 따로 없이 함께 술을 마시고 노니는 곳이 비포장이었다. 저녁 일곱시 전에 시작된 인터뷰가 자정을 넘기자 본래의 의미를 잃고 놀음판이 되어버렸다. 냉장고의 맥주는 이미 바닥이 났고, 아끼던 와인의 목까지 비틀었을 때 텅 빈 비포장 안에 두 사람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자하지 말고 가수나 하지 그랬어~” 칭찬에 어깨가 으쓱. 여길 취재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모르게 서로의 사소한 개인사가 오고간다. 어느새 어두운 가게 내부와 주인아저씨의 다소 무서운 첫인상은 친근하기만 하다.   안 오는 사람 기다리지 않는다는 박주식 씨지만 가는 사람 막지 않듯이 오는 사람도 막지 않는다. 단골이 단골을 만들어 아무런 연유 없이 찾는 사람은 없지만 전혀 모르는 채로와도 반기기는 마찬가지다. 생각이 많아지는 날, 혼자 있고 싶은 날, 주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고 싶은 날에 권한다.(권했다고 핀잔하실지 모르겠다. 유치하게 쓰지 말고 기술적으로, 추상적으로 쓰라고 주문하셨는데) 묵묵히 객사를 지나 전북은행까지 걸어와 건너편을 바라보면 그곳에 비포장이 있다. 간판의 불이 꺼져있다고 낙심하지 말 것. “간판 불 켠다고 안 올 사람이 오나?” 라고 말하는 괴짜 같은 아저씨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반겨줄 것이다. 일찍이 8년 전 고하 선생은 『풍미산책』이란 책을 내어, 이 고장 음식문화의 장점과 가치와 가능성들을 일깨우고, 이른바 ‘음식수필’의 새롭고 멋스러운 경지를 개척해 보여주신 바 있다. 이번에도 그런 방향을 계속해서 추구하시어, 손수 경험하고 탐구하고 생각한 결과들을 모아, 이 한 권의 책을 이루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먼저 “먹보가 아니래도 먹고 마시는 일은 즐겁다. 그것이 한갓 육신뿐 아니라 정신까지를 길러준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즐겁다. 먹을 것을 찾는 일도 즐겁고 먹는 동안도 즐겁고, 먹고 난 후도 즐겁다.”는 말을 서문에 얹어 놓고 있다.   이번 이 저서에는 총 73종의 음식 항목들이 정리되어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각 항목들마다 관련된 다른 음식들에 관한 얘기들이 많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흥미로운 음식 얘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몇 가지만 들어보자면, 갈치조림·고추장볶이·김부각·다슬기국·도토리묵탕·돌솟찰밥·두부장·매산이국·멍게젓·멸치복음·모주·미역튀각·백하젓탕·밴댕이회·뱅어무침·복껍질누름편·복어알젓·생무·생치떡국·섭죽·쑥국·양하장아찌·웅어회·콩나물국밥·준치회·진간장·집장·쫄복탕·파래무침·하란젓 등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 내용 항목들을 보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의 음식들에서부터 그 독특함을 극한 음식들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물론 그 깊이 또한 가히 가끔은 실소를 금치 할 정도로 심장하다. 일상에서 새로움을 찾는 소박하고도 예리한 눈 또한 놀랍다. 이젠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생무’를 얘기하는가하면, 그저 그러려니 먹고 지내는 간장·멸치·두부·미역·파래무침·갈치조림 등등에서 새로운 맛과 의미를 찾아내고, 먹거리로는 감히 생각지도 못할 ‘복어알’을 음식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가 하면, 작은 민물새우의 알들을 모아 만든 ‘하란젓’의 극한 경지를 추켜들어, 우리의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글들의 이면에는 ‘식재전주(食在全州)’라는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문화의식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데에서, 이 저서의 중요한 지역학적 의의와 가치가 돋보인다. 누구나 자기와 자기 가족과 조상들이 오랜 동안 먹고 살아온 음식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자기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손수 새로이 음미하면서, 거기에서 그것들의 가치와 의미와 ‘미학’까지를 찾아내려는 작업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찾아보기 어렵도록 귀하다. 그런 면에서, 전주가 ‘전통과 음식의 고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새삼 부끄럽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음미하도록 해준다.     저자가 오랜 동안 살아온 전주의 음식들 특히 서민 음식들을 중심으로 해서, 전라도의 맛과 멋, 나아가 우리 민족의 맛과 멋을 탐구해 들어가는 이 책은, 그 내용 또한 매우 풍부하고 다양해서, 한·중·일의 음식문화는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문학과 예술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겉으로 보면 한 시인이 일상에서 발견한 특정 지역의 음식 이야기인 것 같지만, 자세히 음미하면서 읽어가다 보면,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 전반을 꿰뚫어보는 놀라운 혜안과 비전과 지혜가 그 안에 도사리고 있다. 우리 먹거리의 기본인 간장·고추장·된장에서부터, 주식으로 먹어온 밥·국·찌게·김치, 그리고 생채·나물·구이·조림·젓갈·장아찌·마른반찬·전·회 등등, 우리 민족음식 전반이 골고루 다루어지고 있음은, 이 책이 그저 되는 대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설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이 책은 민족음식의 지역학적 재발견의 방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확보하고 있는 저술서이다. 이 책은 또한 깔끔하고 맛깔스럽고 호흡이 빠른 단순한 문장들과 적재적소에 나타나곤 하는 음식과 관련된 아름다운 ‘감각어들’로 이루어져 있어, 글의 내용들을 아주 손쉽고 재미있게 읽혀진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부담 없이 몇 시간 혹은 한나절이면 책의 내용들을 다 읽을 수 있다. 오랜 동안에 걸친 저자의 ‘서권기와 문자향’의 높은 경지를 느끼게 하는 면모이다. 특히, 주어나 서술어나 목적어 등 문장의 성분들 중에 어떤 것들을 과감하게 생략하면서 문장을 이루거나, 평서문뿐만 아니라, 의문문·감탄문·명령문·기원문 등 갖가지 문장들이 경우들에 알맞게 묘하게 변화되면서 쉽고 막힘이 없이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더욱 순순해진 순수 우리말의 어법과 말씨들이 활용되고 있어, 문장의 ‘활기’와 ‘생명력’과 ‘자연스러움’을 얻고 있다. 가히 ‘득필천연(得筆天然)’의 경지라 하겠다. 여기에, 동서고금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적절하게 동원되는 관련 지식들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주제들과 아주 조화롭게 잘 아울리고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러나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음식’으로부터 차츰 그것을 경험하는 나 자신의 ‘미각’ 자체에로 문제의 중심이 점차 옮겨가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이 책은 겉으로는 ‘음식’ 이야기이지만, 속내로는 전라도의 ‘미각’ 나아가 전라도 미각의 ‘미학’을 다루고 있는 책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미각 미학’을 겨냥하고 있는 책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동서고금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적절하게 동원되는 온고지신의 지식들, 그리고 음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 여인들의 마음결까지 깊이 요량해내는 저자의 깊고 높은 ‘민족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가끔 간간히 섞여 나오는 ‘교훈’도 결코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감동적으로 다가들며 저자의 성격과 개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각 장들의 말미에 주로 나오는, 오늘날의 세태·인심·문물과 우리 먹거리 문화 현실에 대한 비판과 아쉬움의 피력도 오히려 자연스럽고 감동적인 반성으로 다가온다. 지금 사람들의 ‘빈곳’을 파고드는 엉뚱한 생각, 예컨대 ‘생무’를 추켜들어 얘기하는 대목과 같은 것들은, 가히 번뜩이는 엉뚱한 생각의 ‘일품’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 지역의 음식과 관련된 기존의 잘못된 지식들과 그 전거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이 책의 매우 지적인 면모를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옛날분’이 쓴 글이 ‘지금사람들’의 언어와 정보의 구미와 재미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다가 높은 ‘격조’까지 더한 이 책은, 또한 각 장마다 기록되어 있는 음식문화 ‘정보들’로 하여, 오래 잊고 살아온 우리 ‘입맛’을 되살려주는 나의 ‘음식문화 기행’ 길잡이로도 손색이 없을 터이다. 김익두 | 전북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한국민속예능의 민족연극학적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판소리, 그 지고의 신체 전략』(평민사, 2003), 『제의에서 연극으로』(현대미학사, 199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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