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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7 |
길거리응원과 저작권
관리자(2006-07-06 17:35:29)
70년대 초반, 필자가 살았던 인구 2만 남짓 되는 읍내에서 텔레비전 수상기가 있는 집은 두서너 집 정도가 있었을 뿐이었다. 제사 때가 아닌데도 사람들로 집이 터져 나갈 정도로 꽉 찰 때가 1년 중 몇 번은 있었는데, 다름 아닌 박치기왕 김일이 나오는 프로레슬링이 열리는 날이었다. 꼭 이번 독일 월드컵의 한국축구와 마찬가지로 다 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김일 선수는 방안과 부엌까지 꽉 메운 관중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일어나 상대선수의 머리를 연방 박아, 결국 반칙을 쓴 상대선수는 이내 나동그라지고, 정의의 편인 우리의 김일은 자기 몸통 절반 크기의 거대한 챔피언벨트를 찬다.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한 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70년대 프로레슬링 때와 규모는 다를지언정, 온 국민을 하나로 묶는 이벤트로 월드컵축구 응원은 이제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새벽 4시에 열리는 경기를 위해 전날 저녁부터 길거리, 광장, 각종 경기장에 모여서 질서 정연하게 응원하는 우리의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뉴스가 될 정도이다. 유럽에는 스포츠바 문화가 있다. 주로 클럽대항 프로축구 또는 유럽내 국가간 축구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레스토랑이나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대형 TV 화면을 통해 축구를 즐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우리의 경우 가족 또는 직장 동료끼리 모여서 가는데, 그들은 주로 혼자 와서 먹다가 서로 하나가 된다. 우리의 경우 지상파 TV 방송을 통해 대부분의 경우 집에서도 축구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데 반해, 저들의 경우 돈을 내지 않는 지상파 TV에서는 축구를 볼 수 없고, 돈을 제법 내야 하는 케이블방송을 통해서만 시청할 수 있다. 따라서 매달 비싼 돈을 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 물론 스포츠바의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 주로 모여서 보는데 반해, 우리의 경우 집에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서 본다는 것이 크게 다르다. 광장의 전광판 등에서 축구경기 방송을 공개하는 것을 퍼블릭 뷰잉(public viewing)이라고 한다. 최근 FIFA는 한국내 대리인을 통하여 퍼블릭 뷰잉에 대하여 별도의 사용료를 받겠다고 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FIFA의 주장이 국민 정서에 반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저작권법상 틀린 것은 아니다. 광장과 같은 공중장소에서 축구경기방송을 공개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의하면, “공연”에 해당한다. 저작권자에게는 공연권이 있어 자신의 저작물을 스스로 공연하거나 타인에게 이를 하도록 허락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배타적인 권리를 갖는다(저작권법 제17조). 축구경기가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할 때, 월드컵 축구경기방송을 일반 공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동 경기의 저작권을 갖는 FIFA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법경제학적 측면에서 보면, 퍼블릭 뷰잉에 대하여 저작권료를 징수할 경우, 축구경기방송의 최종 소비자인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미 집에서 볼 것을 전제로 하여 방송사를 통해 사용료를 지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소를 바꿔 시청한다는 이유로 다시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중지급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허기사 광장에 쏟아져 나온 관람객의 숫자를 일일이 세어 그에 따라 저작권료를 책정하는 것이 어렵기도 할 것이지만… (남형두, 연세대 법대교수 hd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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