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7 |
허사(虛事)에서 실지(實地)로 : 홍대용의 『의산문답』
관리자(2006-07-06 17:28:38)
박지원과 더불어 18세기 북학파의 두 축으로 꼽히는 담헌(湛軒) 홍대용(1731~1783)의 삶과 사상은 그의 말처럼 ‘오직 실심(實心)과 실사(實事)로써 나날이 실지(實地)를 밟아’ 나가려는 것이었다. 섣부른 낙관의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옹골찬 비판 속에서 역설적인 희망을 본다던 아도르노를 연상시키기라도 하듯, 당대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자학에 붙박은 유학자 관료들이 장구지학(章句之學)을 일삼으며 이른바 무심(務心)·승심(勝心)·권심(權心)·이심(利心)에 치우친 사실을 비판하는 그의 시각은 예리하다. 동시대 인물인 볼테르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업의 근본도 계몽주의(‘북학론’)의 일종이다. 다만 볼테르가 중세 종교의 그 전체주의(catholicism)와 화려하면서도 거칠게 싸웠다면, 당대의 제도와 관행과 싸우는 담헌 조차 그 스스로는 옹근 유학자에 다름 아니다.
탈중화주의(“모두 하나의 습속이니 하늘에서 보면 어찌 안과 밖의 구별이 있겠는가? 각각 제 나라 사람을 친애(親愛)하고 제 임금을 높이고, 제 풍속에 안주하니, 이는 중국이나 오랑캐나 마찬가지”)(124)1) 나 탈인간(지구)주의적 태도와 같은 탈중심주의는 실로 계몽주의적 태도에 본질적인 것이다. 무릇, 그 모든 계몽은 ‘하나만 알면 바로 그 하나도 알 수 없다’는 성찰적-비교적 인식에 터 잡는 까닭이다.
공리공론의 허사(虛事)를 비판하고 제도문물과 생활의 실제를 합리적으로 개혁하려는 실용주의 사상으로 북학파의 효시를 이룬 담헌은 북학(北學) 중에서도 특히 과학기술 부분을 대표한다. 고대 그리스 세계나 공맹 유교 사상에서 한결같이 폄하된 과학기술학은 오히려 최고의 정신적 성취로 재해석된다. 아울러, <의산문답>의 곳곳에서 나타나듯이, 낡은 학문 / 직업 위계주의를 형이상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성리학적 세계관, 양반중심의 인간주의, 그리고 중화주의 등은 적절하고 때로는 단호하게 비판된다. 마치 마르크스의 혁명적 구체가 그의 역사철학과 연동할 수밖에 없듯이, 그의 실학적 학문기술론과 개혁사상은 성리학적 자연철학과 제도론을 내파(內破)하려는 기획과 맞물려 있다.
가령 “옛 사람의 기록을 믿는 것이 어찌 직접 목도하여 실증함만 같겠는가?”(60)라는 그의 실증적 계몽주의는 마치 ‘성서(聖書)가 아니라 해부(解剖)로부터!’라던 베살리우스(1514~64)와 하비(1578~1657)의 경험주의적 지론을 연상시키기에 족하다. ‘빈말이 아니라 실용에 맞는 것이 귀한 것’(임하40)2)이며, 마찬가지로 놀면서 먹는 자는 마을에서 쫓아야 한다(國民皆勞)는 것이다.
<의산문답>에서 눈길을 끄는 논의는 일견 코페르니쿠스를 연상시키는 ‘탈인간(지구)중심주의’이다. 물론 이것은 그의 실학적 실용주의를 배후에서 지지하는 탈중세적 형이상학이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을 몇몇 꼽자면, “사람으로 만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지만, 만물로써 사람을 보면 만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보면 사람이나 만물이 다 마찬가지”(56)라거나, “사람과 짐승은 땅의 벼룩에 불과”(113)하다거나, 혹은 “한량없는 세계가 하늘에 흩어져 있는데, 오직 지구의 세계만이 공교롭게도 하늘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71)와 같은 문장들이다. 지전설(地轉說)을 위시한 이 같은 통찰이 그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중국을 통해 수용된 서양의 학설에 기대고 있긴 하지만, 계몽과 실용주의에 무슨 대단한 독창이 있을까? 요체는 오히려 끈질긴 실천일 뿐이다.
1) 홍대용, 의산문답/林下經綸, 조일문 옮김 (건국대출판부, 1999).
2) 본문 속의 '임하'는 같은 책에 번역 수록된 임하경륜(林下經綸)의 약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