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7 |
눈물을 속으로 창자를 향하여
관리자(2006-07-06 17:24:59)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빠져 살았던 열 일곱, 여덟, 아홉 시절, 아마 평생 울 울음의 반은 운 것 같다. 측량할 수 없는 그의 ‘님’에 대한 깊이와 울림을 측량 못하는 대로, 나에게도 이미 오래 전부터 ‘님’이 있었던 것처럼, 나도 마치 님의 ‘침묵’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알 수 있을 것도 같아 울고,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저’ 한다기에 나도 그리 하여야 할 것만 같아 울고,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서 나도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갈 수 있을까, 하여 울고,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여 울고, ‘죽음이 한 방울의 찬 이슬이라면, 이별은 일천 줄기의 꽃비’라기에 울고, ‘당신 가신 뒤에, 이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쾌락이 있’다기에,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따금 실컷 우는 것’이라기에 또 실컷 울고…….
울다 보면 언제나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되었다. 그러나, 울음 끝엔 늘 ‘눈물을 속으로 창자를 향하여’ 흘린다는 ‘말씀’이 죽비처럼 내 등짝을 후려치곤 했다. 눈물은 이미 창자 밖으로 다 흘러나온 뒤라 소용은 없었지만.
그 후로도 취미이자 특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꾸준히 울었다. 물론 혼자 있는 고요한 때에. 아주 가끔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말하고 노는 때에도.
근래에 가장 많이 운 것은 지난 해 매화 꽃눈이 빨개질 무렵, 갈 수 없는 어떤 장례식장 밖에서였다. 2박3일을 나는 그 근처에서 술 마시다 울고, 울다 자고, 깨면 또 술 마시고, 울고 하였다. ‘당신이 계실 때에 알뜰한 사랑을 못하였’으므로, ‘그러므로 당신이 가신 뒤에, 떠난 근심보다 뉘우치는 눈물이 더 많’았으므로. 사흘째 되던 날, 때 아닌 눈이 함박눈으로 내렸고 얼마 후 매화꽃이 피었다.
다시 시집을 펼쳐 본다.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다는데,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이고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이라는데,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이라는데.
그렇게 길 가는 일은 그에게나, 그의 시대에나 해당하는 일이던가. 나는, 길가에 핀 꽃이나 구경하며 가다가, 주저앉아 바람을 쐬거나 햇볕을 쬐거나, 무엇이건 핑계 삼아 대충 웃고, 울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하는가.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 전쟁을 하고 있’는, ‘우주만상의 모든 생명의 쇳대를 가지고, 척도를 초월한 삼엄한 궤율로 진행하는 위대한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그 나라’에서 헤매이고 있는가.
아직도 나는 측량 못한다. 그의 ‘님’만한 님을 품은 적이 없으니, 그의 사랑만한 사랑으로 즐거운 적도 괴로운 적도 아픈 적도 없다. 그런데도 울고 있다. 질질 흘리고만 있다. 운다고 돌아오던가? 있었던 적도 없었던 사랑이? 그러나 울어야 하리라. 지금껏 내가 울어온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으므로, 견디면 견딜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값싼 눈물이 다 흘러나오고 난 후에야 비로소 울음 같은 울음을 품을 수 있다면, 그때까지는 어서 다 흘려버려야 하리라. 진정 울어야 할 것에 대하여 ‘울음을 삼켜서, 눈물을 속으로 창자를 향하여’ 흘릴 수 있을 때까지.
* 인용된 부분은 모두 한용운 시의 구절이다.
한정화 | 196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2002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