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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7 |
판소리의 뿌리를 찾아서
관리자(2006-07-06 17:19:53)
인간은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나의 조상은 누구이며 어떠한 인물이었을까’라는 물음을 갖는다. 미국에 사는 한 흑인청년은 ‘나의 뿌리는 과연 누구인가’를 알기위해 멀고 먼 아프리카까지 건너가 결국 자기조상의 뿌리를 찾았고, 이 일로 해서 미국 대통령은 뿌리를 찾으려고 먼 아프리카까지 갔다는 그의 정신과 정성에 찬사를 보냈다. 전주에서 판소리의 뿌리를 찾으려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의 이름은 <집중기획 판소리!! 5명창을 찾아서>였다. 간단히 소개하면 5월 31일에서 6월 3일까지 4일간에 걸쳐, 대명창들이었던 김창룡·이동백·김창환·정정렬 및 송만갑 어른들의 고음반을 감상하고 복원연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 분들의 판소리를 들은 다음 현대 명창들이 복원연주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어서 토론도 벌여졌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판소리 음악어법의 역사적 전개과정이 전통음악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악보가 없는 판소리 자체의 약점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판소리의 역사를 비롯한 판소리 전체의 모습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주지한 바와 같이 판소리는 원래 사설의 줄거리나 내용에 관한 기록이 있었을 뿐 소리를 표현하는 기록을 갖추지 못하고 명창들의 기억에 의지하여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왔었다. 이런 이유로 19세기 8명창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료는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20세기에 이르러 유성기 음반으로 녹음된 고음반을 완전한 내용은 아닐지라도 일부라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렵사리 음반을 구하여 판소리의 뿌리를 찾아 판소리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 들려 준 사람은 판소리 연구가인 이규호 선생이다. 판소리의 뿌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경비를 투자하여 극히 일부일 지라도 판소리 뿌리의 일부인 5명창들의 창법과 성음을 들을 수 있게 해준 이규호 선생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필자는 판소리에 무관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학자로서 나의 전공분야에 몰두하여 연구하고 강의하고 그리고 연구자료들이 후예들에게 참고가 되도록 저서를 남기는 일에 시간을 보내느라 더더욱 판소리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강의실을 떠나다 보니 자연히 시간이 많았다. 이때 주변의 권유로 2005년 1월 3일 전북도립국악원의 판소리반(김미정 선생)과 판소리 고법반(권혁대 선생)에 등록하게 되었다. 처음 사철가들 배울 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낄 정도로 이상야릇한 감정이 흐르기도 했다. 동시에 북을 치는 법을 배우면서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북을 칠 때마다 무엇인가 생기가 도는 듯했다. 이때부터 판소리에 관한 책들을 구입하기 시작했으며 김연수 명창의 제자인 오정숙 명창이 취입한 판소리 오가전집을 위시하여 서편제 동편제 강산제 동초제에 해당하는 판소리 음반뿐만 아니라 박초월 감소희 박동진 한농선 강도근 안항련 등 이미 세상을 떠난 명창들의 음반은 물론 생존해 있는 안숙선, 조상현, 성우향, 이일주 외에 보다 젊은 명창들의 음반까지 구입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몇 번씩 들었고 전통문화센터에서 실시하는 ‘해설이 있는 판소리’를 듣기 위해 쫓아다니다보니 그곳 관계자로부터 개근상을 주어야겠다고 들을 정도로 판소리 매니아가 되었다. 이 덕분에 올해 제2회 완도장보고기념 고수대회 노인부 대상을 타기도 해서 주위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렇게 북과 판소리에 큰 관심을 갖고 있을 즈음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 집중기획으로 ‘고음반 감상과 복원연주’라는 이벤트에 참석하여 20세기 5명창들의 소리를 4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현대음악 모창의 경우와는 달리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의 대명창들의 소리를 복원연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인 판소리를 복원하다는 것부터가 큰 의의가 있으며 기쁜 일이기도 했다. 대명창들의 소리에 접하여 복원연주를 듣는다는 것은 판소리 문화의 세계에서는 큰 의의가 있고 또한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다. 4일 동안, 전반부에서는 고음반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고, 후반부에는 복원연주를 했다. 창자의 창과 정충의 흥취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막간에 제공된 막걸리는 명창들이 창을 할 때 감동과 흥분의 극에 달하게 했다. 마지막 날에는 판소리에 취한 나머지 대명고수인 권혁대 선생이 창을 하고 이규호 선생이 북을 쳐서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한옥생활체험관 김병수 관장의 창이 서로 어우러져 멋지고 아름다운 판소리 잔치집이 되었다. 행사를 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아쉽고 서운한 경우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었는가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음반감상과 복원연주였다. 무대의 규모가 작아서였는지 모르나 판소리 판에는 귀명창들이 많았다. 전주는 타지역의 경우와 달리 귀명창들이 많아서 명창들이 전주에서 소리를 할 때에는 많이 긴장한다고 한다. 정응민 명창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너희는 절대로 청중의 박수나 추임새를 의식해서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극히 일부 판소리 하는 분 중에는 귀명창들의 입장에서 볼 때 행사명칭에 걸맞지 않는 판소리를 하기 때문에 걸맞는 명창을 초대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귀명창이란 말 그대로 판소리를 듣고 감상하는 수준이 판소리를 잘 부르는 명창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인데 이번 행사의 청중 속에는 많은 귀명창들이 참석하였다.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름있는 명창들이 참여했으면 금상첨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들게했다. 청중 속에는 이야기 줄거리나 따라다니며 음담패설과 같은 골계 장면을 좋아하는 청중들의 수준도 있고 판소리의 음악적 삼요소인 성음·길·장단을 파악하고 구별할 수 있는 수준도 있고 소리에 담겨진 기교적인 음악어법과 그 의미를 터득해서 추임새를 구사할 수 있는 수준도 있고 사설의 철학적 해석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이면’까지 파악해서 비평할 수 있는 수준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수준의 귀명창들이 이번 행사를 보고 느낀 점은 필자의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과적으로 이번 행사는 해마다 명창을 발굴해 내는 대사습놀이 못지않게 의미가 있는 행사라고 생각한다. 이럴진대 판소리 문화중심도시인 전주에서 진행한 고음반감상과 북원연주 행사에 각지에서 많은 귀명창들과 판소리명창들이 참여하여 옛것과 현재의 것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었더라면 전주한옥생활체험관이 더욱 빛났으리라. 신용진 | 전북대 사범대 영어교수법 교수로 사범대 학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전북대 명예교수로 일하면서, 판소리와 고수법을 배우고 있다. 올해, 제2회 완도장보고기념 고수대회에서 노인부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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