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7 |
자아찾기의 여정을 보다
관리자(2006-07-06 17:17:57)
지난 6월 10일부터 6월 25일 까지 “사람에게 길을 묻다” 전이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메인 홀에서 펼쳐졌다. 입체와 평면이 고르게 배치된 12명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치러진 이번 전시는 2004년의 ‘차이’ 전과 2005년의 ‘돌아보다’ 전의 후속으로 기획된 전북 현대미술 다시읽기 시리즈의 세 번째 전시에 해당한다.
기실 미술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영역에서, ‘인간’은 시각적 탐미의 대상으로서는 물론이거니와 실존적 주체의 문제를 둘러싸고 제기될 법한 부조리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삶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에의 의지를 피력하기 위한 창작의 주된 소재로 다루어져 왔다. 예컨대 인간과 삶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과 그에 관한 지난한 의식의 천착이 예술의 주된 특권으로 자리 잡아 왔다는 말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람에게 길을 묻다” 역시 자아 찾기의 여정이라는 다소 상투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이슈를 작업의 공통분모로 설정하고 있다. 작품으로 잉태된 삶의 드라마들, 그에 관한 발설의 지향점은 작가 자신의 안과 밖의 역학적 함수관계 속에서 서로 충돌하고 도전하고 화해하는 다양한 포름으로 정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물을 수단으로 하여 디지털 시대가 빚어낸 몰 인간성의 상흔과 그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 혹은 비틀기를 통한 역설적인 희망의 메시지, 세계와의 무덤덤한 순응과 포용의 제스춰 등이 그러하다.
얼굴 표정과 머리카락, 배경이 없는 이주리의 나신은 블루우 퍼레이드로 일관한다. 그의 우울한 육체는 질료적 개념의 수위를 넘어 존재의 심연을 응시하면서 방황하는 현대인을 은유한다. 화면 한 켠에 삽입된 손의 일부는 최소한의 안식을 꿈꾸는 희망의 보루이자 위안의 대리물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김성민의 누드연작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고민하는 현대인의 정체성 부재의 문제를 발언하고 있다. 강렬한 붉은 색 붓 터치로 죽죽 내려 그은 듯한 단호한 선묘, 선이 형태를 압도하면서 화면전체를 리드해 간다. 거친 호흡을 발산하는 나신들은 보기에 따라 무력하다 못해 처연하기 그지없다.
극사실적인 표현기법을 통해 버스 안에 있는 군상들, 그들의 일상과 네거티브한 표정에 포커스를 맞추는 김중수. 그에게 있어서 버스는 벽과 같은 폐쇄성의 상징물이자 세계와의 소통과 마음의 여유를 예료하는 각별한 공간이다. 현실에의 도피와 이탈욕구가 잠재된 등장인물들의 빈한한 표정이 시선을 늦춘다. 진창윤은 통일과 분단의 아픔을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현현한다. 그림이란 것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시대와 역사, 현실을 다루어야 한다고 인식하는 그는 이라크 전쟁, 평택, 이산가족의 문제와 같은 선 굵은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생생한 역사의 현장 그 장면 하나하나를 사실적이되 비교적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림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최부호. 기묘하면서도 과장된 웃음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육감을 자극하는 작업의 메시지는 욕망이다. 목젖이 보일 만큼 천박하게 파안대소하고 있는 기막힌 표정, 인간의 탐욕을 암시하는 그것은 보기에 따라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비정상적이다. 정도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탐욕, 겉과 속이 다른 양면성을 통렬하게 질타한다.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는 웃음을 동물적 본능에 빗대어 희극과 비극, 정상과 비정상의 파라독스를 투사하고 있다. 호모 루덴스, 그린다는 행위와 삶 자체를 연극에 비유하는 곽승호는 그저 놀이하듯 세계와 우리 자신을 비튼다. 마치 볼록거울에 비춰진 듯한 화면 속의 인물들은 아무런 의미도 목표도 없이 그냥 그렇게 질주하듯 살아가는 작금의 자화상이다.
이길명은 평범한 삶의 진실 안에 묻어 있는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되묻는다. 아우라가 이입된 돌멩이 하나하나에서 조형의 집중력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벽면에 가변 설치한 원형의 이미지는 인간과 우주, 인간과 인간의 인연의 고리를 상징한 것으로서 거기에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소담하게 배어 있다. 이효문의 기운 듯 바로 선 인체 형상의 조각은 군더더기를 제거한 둔탁한 단순미와 나무의 질감이 살아 숨쉬는 듯한 자연미가 돋보인다. 실체가 고스란히 빠져 나간 사각모형의 인체골격, 바닥에 널브러진 와상들은 존재와 부재, 낯섦과 익숙함이 뒤섞인 채 단절된 시간의 연속성을 담고 있다.
색이나 형상을 수단으로 하여 반전 작업을 시도하는 박정용의 구상작업. 일상에서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소재로 하여, 그리다 만듯한 화면은 미완의 붓질에서 파생되는 이미지와 이미지 간의 섬세한 그라데이션을 특장으로 한다. 수묵인물화 시리즈에 전념해온 유기준은 먹과 채색을 활용하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다. 지필묵에 담채를 도입하거나 발묵이나 파묵, 갈필과 같은 거친 리듬의 먹의 운용이 신선하다. 파격적인 공간조율, 전신(傳神)의 실현강도의 약화 등도 변화라면 변화이다.
추억과 회한, 희망까지 보듬은 사색의 표상들이 어우러진 이경태의 작품은 자유롭게 부유하는 의식의 침전물로 비유될 수 있다.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에 대한 기억과 설레임이 정교하게 교직되어 있는 그의 방에는 힘 있는 고독, 아픈 평화가 상존한다. 입체와 평면작업에서 인간의 형상을 반복적으로 드로잉한 서용인은 일견 눈속임 장치, 시지각적 착시현상에 몰두한다. 그의 이미지는 보는 각도에 따라 그자체로 정지된 모습이 아닌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자기변신을 거듭한다. 시감각의 운동을 바로미터로 하여 그 특징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처럼 비교적 밀도 있는 시각으로 자기 정체성의 확인 작업을 우위로 한 참여 작가들의 작업양상의 면면들을 일별해 볼 때 ‘길’에 대한 성찰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지점에서 주제의 해석역량이나 구체적인 방향설정과 해결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명쾌하면서도 촘촘하게 형상화 되었는가 라는 의문은 어쩌면 우문현답이나 현문우답에 버금가는 일일 것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인간과 삶을 둘러싸고 제기될 만한 다양한 빛깔의 물음에 대한 응수라는 것이 단순히 단답형의 패턴으로 시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 모색의 갈래가 너무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이래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일종의 업보처럼 주체의 역할보다는 타자의 입장에서 세계와 견주어왔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서 거기에 순응하든 역행하든 그 안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진솔한 각성일 것이다.
손청문 |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원광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전주미술협회와 전북미술협회평론분과 이사, 전북문예진흥기금평가위원 및 벽골미술제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학교 강의전담교수, 미술평론가로 활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