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7 |
[채식] 진정 아름답게 먹을 줄 아는 사람들
관리자(2006-07-06 17:10:56)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옹기그릇들이었다. 그 다음에는 베란다를 가득 채운 난초들, 나무로 된 탁자, 가지런히 정리된 다기, 직접 만든 콩물과 요구르트, 곡물을 재료로 한 만두와 햄…. 눈에 보이고 입에 닿는 모든 것이 단아하고 정갈했다. 잔잔한 호숫가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선풍기마저 자연바람을 내뿜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의 안정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전주 모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박순식 선생님 가족이 채식을 시작한것은 13년 전이다. 박 선생님을 시작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딸도 식생활을 바꾸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대학시절, 국으로 끓여 고기국물을 내고 고기는 다시 건져 햇볕에 말려 먹었을 정도로 육류를 좋아했던 박 선생님이 채식으로 전환을 한 계기는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가 원했던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함이 더 컸다. 어떻게 하면 일상사 희로애락에 흔들리는 감정을 부동심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마음의 평안을 오래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에 대해 고심하던 박 선생님은 명상을 접하게 되었고, 명상을 하다보니 채식을 해야 하는 이유가 머릿속에서 뚜렷해졌다고 한다.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적인 의문은 ‘인간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로 인해 죽어가는 인간’이라는 역설적인 진실로까지 이어져 곧 육식은 죽음에 죽음을 이어가는 위험한 레이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느 통계를 보니 3분에 한 명이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일주일에 두 번만 채식을 해도 천오백 명이 살 수 있다고도 해요. 소 한 마리가 먹을 곡물은 수십 명의 사람이 먹을 식량이라는 거죠. 인간생명문제 말고도 동물 사육으로 인한 환경오염문제도 심각합니다. 수질 오염, 대기 오염, 토양 침식, 에너지 사용 등등. 이 엄청난 문제들이 단지 인간의 욕심 때문에 발생하고 있어요. 우리는 익숙해진 입맛 때문에 고기를 먹는 거지, 사실 고기가 몸에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설사 몸에 좋다 해도 채식만으로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생명을 죽이고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고기를 먹으려고 하는지 채식주의자라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박 선생님 가족이 채식을 하는 이유와 그에 응당한 근거를 모두 나열하기에는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선생님은 채식에 대해 ‘생활속에서 가장 작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배려, 생명에 대한 배려’라고 요약한다. 그러나 작은 실천이라는 말은 겸손에 가깝다. 동물성 재료가 첨가되지 않은 음식을 고르고, 만들어먹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노력과 관심을 요하기 때문이다.
1993년, 94년 박 선생님 가족이 채식을 시작했을 때는 지금처럼 채식문화가 보편화되어있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다.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러느냐, 그것도 결벽증이고 편식이다, 어디가 크게 아픈 것 아니냐 등등의 오해와 편견으로 바라보던 사람들 때문에 가슴앓이도 했지만 이들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소리 없는 환경운동가,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평화주의자, 채식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은 온갖 상념을 뛰어넘을 수 있게 했다.
모든 이해관계는 상호적인 것이므로 채식주의자들이 유별나게 보인다면 그냥 채식을 즐기는 사람으로 보면 된다.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 맛없는 음식을 오기로 먹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인데 수행가가 아니므로 이들도 당연히 맛을 따진다. 박 선생님은 채식을 하게 되면 오히려 미각이 예민해져서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고 말한다. 새로 개발된 메뉴를 맛보았을 때 느끼는 기쁨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해진미를 먹었을 때와 같다고…. 오해 둘, 고기가 먹고 싶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 하지만 곧 그것이 우문(愚問)이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맛이었는지 이제는 생각도 안 나요. 고기 요리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픕니다.”
우리는 고기를 먹다가 배가 부르면 “과식은 몸에 좋지 않아”하면서 남기곤 한다. 그렇게 남겨진 고기는 음식물 쓰레기로 폐기된다. “동물은 사람을 위해 생명을 바쳐 음식이 됩니다.” 선생님의 입에서 가볍게 떨어진 이 한마디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고를 요구했다. 그동안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을 너무 경시(輕視)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기를 먹는 것을 문제 삼고자 함이 아니다. 하지만 고기를 먹는 마음가짐의 재정비는 필요할 것 같았다.
박 선생님은 교육의 문제도 지적했다. 모든 생명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동물들은 대화도 하고 함께 놀 수 있는 가까운 친구입니다. 그러다가 학교에 들어가고 몸집이 커지면 친구였던 동물이 먹거리가 되죠. 동물에 대한 인식이 친구에서 음식으로 변화될 때 아이의 동심은 파괴되고 말아요.”
채소냐 고기냐를 따지기 전에 생명에 대한 마음을 먼저 길러야 한다는 박순식 선생님 가족에게 있어 채식은 입으로 먹고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환경보호의 방법이자 참다운 삶의 이상향을 찾아준 인생의 스승이었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 미안해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채식을 실천하면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