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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7 |
[채식] '먹는 것 함부로 하지 말라'
관리자(2006-07-06 17:08:47)
발우공양을 하는 스님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정성과 섬세함이 그윽하게 묻어났다. 그것은 단지 ‘밥을 먹는 일’이라기보다는 ‘수행의 한과정’처럼 보였다. 발우를 꺼내고, 펴는 동작 하나도 그냥 소홀히 하는 법이 없었다. 말끔하게 옻칠이 된 나무 발우에 담긴 음식은 발우의 생김새만큼이나 단정했다. 네 개의 발우에는 각각 밥과 국, 나물 종류와 물이 적당량씩 정갈하게 담겨져 나왔다. 여러 복잡한 의식을 거친 다음에도 배고픈 귀신들에게 공양하는 ‘헌식’과 합장 반배를 하고 난 다음에야 스님은 수저를 들었다. 지리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는 황매암에서의 ‘발우공양’은 단출했지만, 그 맛은 특별했다. 마늘이나 고추, 후추 등 자극적인 맛을 내는 재료들과 조미료를 쓰지 않아서 인지 밋밋한 듯 하면서도, 입안에 그윽하게 퍼지는 담백함과 정갈함은 일품이었다. 물론, 어떤 음식에도 고기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불교에서 음식이란 내 몸이 마르는 것을 막아주는 ‘약’과 같습니다. 수행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하나의 요소로 보는 것이죠. 그런데, 맛에 탐하다보면 당연히 탐욕심이 생기고, 수행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극이 강한 음식이나 육식은 당연히 멀어지고,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풀’들을 먹게 된 것이죠.” 일장스님의 설명이다. 하지만, 불교에서 ‘육식’을 멀리하게 된 이유는 이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마음 바탕에는 ‘지혜’와 ‘자비’가 있어요. ‘지혜’는 단순히 뭘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고 ‘밝다’는 뜻입니다. 이 ‘밝음’을 가지고 수많은 생명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죠.” 일장스님은 불교에서 ‘살생’을 금하는 계율이 단순히 ‘죽이지 말라’는 소극적인 뜻이 아니라, ‘살리라’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매암은 가파른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암자 주위 곳곳에 작은 텃밭들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텃밭들에는 상추며 쑥갓, 깨, 무, 배추, 호박, 콩, 옥수수, 가지, 오이 등 갖가지 채소들이 깨끗하게 정돈된 이랑이랑마다 알뜰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웬만한 것들은 다 이곳 텃밭에서 철마다 가꾸어 먹는다고 했다. “주위가 온통 산이라 산나물도 많이 캐다 먹어요. 고사리나 미나리 같은 것들은 이 근방에 지천으로 널려 있거든요. 곤달비나 당귀 같은 것들도 눈에 보이면 캐서 절 주위에 심어 놨다가 아무 때나 먹습니다. 조금만 눈 돌리면 우리주위에 다 먹을 것 천지들이에요. 몰라서 그렇지 우리가 잡초라고 생각하는 망초나 명주 같은 것들도 훌륭한 찬거리들입니다.” 일장스님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확실치 않은 채소를 사먹는 것 보다는 기왕에 작은 텃밭이라도 가꿔서 자주 먹는 채소는 직접 길러 먹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채식이라면 굳이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는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어렸을 때 출가를 했는데, 절에 들어간 지 석 달 만에 집에 잡혀갔었어요. 집에 가니까 제일 곤욕이 밥을 먹는 일이었어요. 숟가락이며 젓가락, 밥그릇에 온갖 비린내며 누린내가 배어 있더라구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맛있게 먹지 않겠습니까.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자기 몸에서 담배 냄새를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텃밭에서 직접 가꾸거나 주위 산에서 채취한 재료들로 만든 절 음식은 그렇지 않아요. 먹을 때도 맛있지만, 먹고 나서도 개운하고 몸도 가볍습니다.”   끝으로 일장 스님은 우리가 먹거리에 좀더 신중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것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맛이나 영양섭취를 이유로 육식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밥심’으로 산다며 밥을 많이 먹었지만, 지금은 ‘고기를 안 먹으면 힘을 못 쓴다’며 혹은 고기가 없으면 먹는 재미가 없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생활의 패턴이 ‘편리’만을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다보니까, ‘삶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는 기회도 적어지는 것 같구요. 음식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고, 맛이나 편리만을 추구하는 것이죠. 이런 식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몸이 황폐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또 몸이 황폐해지는데,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꿈이며 희망 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생명과 생명은 그물처럼 얽혀 있다는 삶의 질서를 이해하고 이것을 배려할 줄 아는 삶, 일장스님이 당부는 쉽지 않았지만, 깊은 울림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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