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 |
지방자치 시대의 지역문화
관리자(2006-06-10 11:15:15)
글 | 정 훈 무주닷컴 전문위원
사회가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낀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것인지를 생각하는 시대다. 사람들이 ‘미래’ 보다는 ‘현재’라는 시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즐기는 것을 추구하는 시대다. 지난 산업화 기간에는 경제성장 위주의 정책 아래서 절약하며 검소한 생활을 중시하며 문화는 그저 부유층 등 일부만이 누리는 사치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화적인 향수를 갈망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인간다운 삶을 바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가 발현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방자치제가 복원, 실시되면서 문화의 발현 또한 중앙체제에서 벗어나 지방 중심으로 활동하기 위해 꿈틀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의 문화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역 고유의 정체성과 특색을 찾아내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고 있으나 많은 경우 그 수명을 오래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 문화에 대한 마인드 부족, 전문성의 결여, 공간의 부족 등이 그 원인으로 얘기된다. 아울러 사회경제적 가치가 확대되면서 문화는 지역을 활성화하는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화의 가치는 문화자원을 둘러싼 환경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일 때 보다 고도화 될 수 있다. 따라서 지역이 문화를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역문화 주체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활동은 문화자치의 터를 닦아 지방자치를 위한 정신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지역의 독특한 문화가 다양하고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장려하는 일은 각각의 지역주체들의 자치능력을 배양하는 근본이 될 것이다. 흔히들 지역적 특색을 갖춘 문화를 가꿔 나가자고 쉽게 외치고 있으나, 이를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민들의 문화인화와 문화시설과 공간 운영의 활성화는 주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끈끈한 애착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의 문화를 자치적 수준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문화단체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아직은 아쉬움이 많아 보인다.
현재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문화 사업에 있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다.
첫째, 지방자치단체가 관행에 따라 문화 정책의 범주를 설정하는 진부함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역문화정책의 목적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주민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고 문화전통을 계승하며 개성 있는 지역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문화정책의 범주 설정 문제는 지역 주민들의 문화 수요의 특성, 문화 부분의 시장성, 문화 요소들 간의 연관성, 지역사회 발전 방향 등을 고려하여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겠다. 마침 지역의 지도자를 새롭게 선출하는 시기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구체화되길 바란다. 둘째,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화정책 시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화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문화욕구 조사를 기본으로 지역 내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한 각종 조사와 연구를 통해 중장기 문화발전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위한 추진체계를 정비하고 실행에 대한 평가와 환류 체계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기초적인 과정마저 마련되어 있지 않는 것이 대다수 지역의 실정이다. 이로 인해 정책의 일관성이 없고 기존의 문화자원과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이전에 비해 문화 행정조직체계가 합리적으로 개편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많은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 일반 공무원들의 순환보직제로 인해 행정의 전문성과 지속성이 담보되고 있지 못하며 공공문화 시설 사이의 네트워크는 물론 심지어 부서들 사이에서도 업무 협조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되며, 민간부문의 전문성 활용과 주민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넷째, 지역문화 예산은 증감의 변화가 심한데, 이는 문화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예산의 집행은 하드웨어 부분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는 반면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는 매우 인색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지역내 문화인식 제고와 주민의 문화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에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문화예술 공연과 교육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근 몇 년간 규모나 횟수 모두 대폭 늘어난 것을 느낄 수 있다. 지역별로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열리고 있고 공공 문화시설에서는 문화예술 교양강좌, 취미교실 부업교실을 비롯한 공연, 전시 등 상당수의 문화 예술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민 참여도가 낮고, 자체단체장의 과도한 개입과 영향력 행사로 본질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어 시혜적인 차원의 행사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밖에도 지역문화의 실상은 읍면단위 지역의 문화시설의 절대적 부족, 지역주민에 대한 문화정보 제공 서비스 체계의 허술함, 문화환경 기반의 취약성, 문화예술 교육의 후진성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역문화는 오랜 동안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주민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경제성장을 위한다는 명목아래 행해진 중앙 중심적 문화에 길들여진 주민들로선 지금도 지역 내의 자발적인 문화를 창조해 나간다는 점이 어색할지 모른다.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지역문화, 즉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문화가 그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해야 한다. 자연스럽고 개성 있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각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지역문화의 문제를 문화시설, 문화향수, 예술가 지원, 전통문화의 유지와 복원 등으로 좁혀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문화를 일상적인 삶과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보는 시선을 익혀야 한다. 동시에 문화의 사회경제적 파급력을 고려하여 우리 지역에 걸맞는 문화산업 자원의 발굴과 육성을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문화의 성숙화를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생활양식과 지역사회의 정치, 경제적 구조와 연계해 문화적 가치와 역량을 키우고 문화적 물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그 범주와 정책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문화행정의 지방자치화는 지역문화의 실현을 위한 첫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보여주기식 문화정책에 의해 문화공간 확충에 그치고 있고, 이로 인해 지역 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고민과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듯하여 아쉽다. 지역의 독특한 문화창출과 지역현안에 맞는 문화정책 수립, 더 나아가 가치있는 문화산업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문화행정의 역량 강화와 전문화가 시급하다.
지역문화의 자치를 위해서는 지역에 문화전문가의 발굴과 육성이 필요하고, 주민들의 문화시민으로서의 다양한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기존의 보수적 문화정책의 고리를 끊고 이들의 독점 압력에서 벗어나 지방자치의 참여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문화정책을 수립하고자 한다면 다양한 문화예술인들과 지역사회에 문화정책영역을 개방해야한다. 이는 문화행정의 주체가 지역주민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지방자치의 문화활동에서 주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다양한 참여를 보장하는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주민자치적 문화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 근래에 지역의 문화시설과 관심자들이 문화예술 공연과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문화향수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주민들이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있고, 행사가 끝난 후 개별적이고 파편화되어 관리가 되지 못해 체계적인 지역의 문화인자로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문화향수 기회와 더불어 주민 스스로 문화적 활동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문화 주민자치의 지원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문화 주민자치의 활성화는 그 자체로 지역의 문화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 외에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어 그 지역의 주민자치를 위한 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문화를 산업으로 인식하고, 지역발전의 한 축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우리 지역은 문화예술과 전통문화로서의 민속에 주목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생활양식의 기반을 개선하여 소득증대를 이룩하고 지역의 산업을 활성화시켜 결과적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목표로 지향하는 더 넓은 범위의 문화운동, 문화산업화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역사회 주민들의 삶 그 자체인 지역문화를 전시효과를 중시하는 이벤트 중심으로, 그리고 지역 문화예술 관련 활동가들의 영역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지역문화 활성화 노력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역문화에 기초한 각종 문화정책과 사업들이 좁은 의미에서의 문화예술 종사자와 관계자들의 관심 대상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문화산업이라는 더 넓은 지평 위에서 다뤄진다면 지역사회를 활성화시키는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 지역 내에서 살아가면서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지의 여부는 각 개인들의 삶의 질적 차이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다. 문화생활을 통해서 고양된 따뜻한 정서는 우리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커다란 힘의 기반이 되어줄 수 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각박한 사회생활 속에서 가족과 이웃 구성원 간에 소원해지고 서로가 소외감을 느끼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함께 공유할 무엇인가가 없기 때문이다. 가족과 이웃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실생활과 밀접하게 자리 잡아 나간다면, 이를 통해 구성원들은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랑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지역사회로 확산되어 결과적으로 지역 시민들의 유대를 돈독하게 다져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지역 문화발전을 위한 따가운 비판도 중요하겠지만, 문화적 기반이 자리 잡아 가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지역 현실을 감안하여 우리 지역사회가 향상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마음 자세도 필요하겠다. 지역주민들의 보다 자유롭고 보다 풍요로운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문화, 경제적인 가치 창출도 꾀할 수 있는 문화산업화를 표방하고 이를 위해 지역적으로 구체적인 실천이 행해지는 문화 주민자치의 앞날을 기대해본다.
정훈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화예술지원사업 국민모니터링 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무주닷컴 전문위원으로 있으며, 문화예술전문지 <문화저널> 지역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