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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 |
[아이들은 자연이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크는 아름다운 이야기
관리자(2006-06-10 11:14:47)
『아이들은 자연이다』 (글 장영란, 김광화·사진 박대성, 돌베게 펴냄, 2006)/// 글 | 김자연 전주대학교 교수///계속 쌓여가는 일감에 짓눌리니 서평을 써달라는 부탁이 처음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청탁에 응했던 것은 순전히 ‘아이들은 자연이다’라는 책 제목을 듣고서이다. 난 ‘아이들’과 ‘자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서 견디지 못한다. 마치 내가 꼭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생긴다고나 할까. 대답을 해놓고 보니 이번에는 걱정이 슬그머니 또아리를 튼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연이다’라는 책을 손에 쥐는 순간 그러한 걱정은 저만큼 사라졌다. 맨발로 땅을 밟고 있는 표지 그림이 잔뜩 짓눌려 있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인 것 같은. 그러고 보니 사람처럼 책도 첫인상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크는 이야기”라는 부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큰다는 것이 뭘까. 앞 장과 뒷장을 살펴 본 후 목차를 보았다. 이것은 책을 읽기 전 으레 내가 행하는 버릇이다. 목차와 서문을 본 후 본격적인 책과의 만남을 시작하였다. 좋은 책일수록 나는 스킨쉽을 많이 하는 편이다. 밑줄을 긋고 댓글을 달고 대문을 달고(크게 사각으로 방을 만드는 것) 좋은 대목이 나오면 한 동안 가슴에 품기도 한다. 이 책이 그랬다. “연이어 봄비가 흠뻑 내렸다. 처마에 둥지를 튼 참새는 알을 낳고, 이 산 저 산의 꿩과 비둘기 들은 짝을 부른다. 논두렁에 자운영꽃, 밭두렁에는 배추꽃이 피어난다. 울타리 골담초꽃에는 호박벌이 들락날락 꿀을 빤다. 온갖 생명들이 자기 자리에서 모두 열심이다.”, “모든 생명은 자기 삶을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고추는 고추대로, 벼는 벼대로, 그 본성을 알아채지 못하고 사람 욕심대로 했다가 농사를 망치기 쉽다. 고추 기르는 법은 고추한테 배우고, 오리 기르는 법은 오리한테 배우는 게 가장 좋다. 그렇다면 부모 노릇하는 것도 아이들한테 배우는 게 좋지 않겠나.” 불과 몇 장을 넘기지 않았는데 민들레꽃 같은 잔잔한 이야기들이 졸졸졸 흘러 일상의 잡다한 찌꺼기를 쓸어내렸다. 별다른 표현이 없는데도 이내 주위가 환해지고 강한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일상에 눌린 나에겐 오히려 이 책과 만난 것이 천만다행이요,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은 귀농한 한 가족, 네 사람이 자연과 생활하면서 겪은 일들을 잔잔하면서도 진솔하게 풀어 놓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장영란 · 김광화 부부는 1996년 두 자녀를 데리고 서울을 떠나 2006년 현재 무주 산골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즐기고 있다. 모두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와 2부에서는 귀농해서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이야기를, 3부와 4부에서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 가해진 억압과 굴레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5·6·7부에서는 네 식구 모습을 ‘지식 공부’, ‘몸 공부’, ‘일’ 등의 주제로 나누어 정리했다. 곳곳에서 뿜어대는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과 함께 자연친화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맑고 굵은 물줄기이다. ‘탱이’와 ‘상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들의 두 자녀는 본인들 뜻에 따라 학교 대신 집에서 지내며 부모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는다. 이들 부부에게 아주 거창한 교육 철학이 있거나, 여느 홈스쿨링처럼 아이들을 명문대학에 보낼 정도로 스스로 가르칠만한 박식한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다. 자연이 스스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들은 아이들을 자연에 서슴없이 맡긴 것이다. 닭과 고양이가 새끼를 키우는 방법, 암수 둘이서 집을 짓는 까치를 보며 이들은 함께 집을 짓고 아이들을 자유롭게 집과 들판에 데려다 놓는다. 그러자 아이들은 그들 스스로 알아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고, 먹을 것을 만들어 먹고, 부모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더 대단한 것 같다. 진정한 자신으로 여물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기가 자기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줄 한 줄이 모두 살아 있는 자연이 들려주는 교과서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알려 주는 책이 널려 있다. 그러나 이 책처럼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을 적어 놓은 책은 드물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탱이와 상상이가 사회와 어떻게 소통을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성장기에 놓인 아이들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심심함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지. 그러나 이것도 걱정할 게 없었다. 심심하면 일하고 일이 심심하면 공부하면 된다. 참 간단하면서도 명쾌하다. 사실 인간관계의 가장 기초는 가정이다. 가정생활이 원만하고 행복하면 그것이 힘이 되어 사회성도 스스로 찾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럼 점에서 가족 간에 서로 배우고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아이가 견디고 이겨내도록 기다리거나 참아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아이를 잡아끌고 방향을 알려주려고 애를 쓴다. 그런 점에서 지나치게 ‘좋은 엄마’ 그만두기도 필요한 것 같다. 문득 <레이> 라는 영화 속 어머니가 떠올랐다. 빨래를 삶는 뜨거운 물에 눈을 다친 여섯 살 흑인 아이가 소나기를 피해 집안으로 들어오다 넘어졌다. 무언가에 긁혀 무릎에서 피가 나고 아이가 통증을 느꼈다. 아이는 있는 힘을 다해 엄마를 소리쳐 부른다. 엄마는 아이에게 달려가려던 마음을 누르고 그 광경을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지켜본다. 한참을 그렇게 외쳐대던 아이가 눈물을 씻고 주위 소리에 온통 신경을 모은다. 그러다가 책상 밑으로 기어가는 벌레를 잡아 귀에 대면서 레이는 어머니 숨소리를 느낀다. 아이는 “어머니, 거기 있는 것 난 다 알아요.” 속삭인다. 어머니가 달려와 레이를 끌어안는다. “얘야, 앞으로는 지금처럼 누구도 널 돌봐주지 않을 거다. 네가 기어가는 벌레를 잡은 것처럼 네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이처럼 때론 상처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 레이는 그 후 혼자 힘으로 세계적인 팝 가수가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 모습에서 자연적인 치유와 터득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집에서 지내면서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어간다. 이 점은 집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사회성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주기도 한다. 다음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이 <‘부모 권력’이 무너지는 아픔>이다. 이 부분은 공감성이 커 본문을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부모가 자기 뜻대로 자식을 통제하고자 하는 걸 ‘부모 권력’이라고 불러본다. 아이들과 몇 해를 가까이서 지내보니, ‘부모 권력’이 생각보다 우리 몸에 깊숙이 배어 있음을 느낀다. 그동안 아이들을 뒷바라지한다는 구실 아래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게 많았다. 그러면서도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부모의 많은 부분을 감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지내자 부모 삶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 집안의 경제는 물론, 부부 사이의 애정 관계, 부모의 친구나 사회관계에 대해서까지 알게 된다. 한마디로 아이들에게 알몸 그대로 낱낱이 드러난다. 부모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면 아이들에게 할 말이 없어진다. -중략- <아빠는 가끔 큰소리를 내는데 그럴 때는 마음이 쪼그라들어요> 가슴이 뜨끔하다. 내용을 떠나 큰소리조차 아이를 어둡게 한다는 사실. 나만은 상상이에게 권력적이지 않다고 자부했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결국, 아이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모든 게 해결된 것은 아닌 셈이다. 아이가 자라면 아이의 권리도 자란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중요한 건 아이들 권리가 자란다고 어른 권리가 박탈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는 권력의 허울에서 벗어나, 어른 자신의 올바른 자리매김 과정인지도 모른다.” - (본문 101~105쪽에서) “아이는 키우는 것보다 스스로 큰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강하게 느꼈다. 자연은 모든 것을 품어주는 본성으로 아이들을 품을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부모들은 자연에 자신을 풀어 놓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이 책 이야기의 주 무대는 자연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자연과 벗하며 도시인들과 다르게 사는 그들의 ‘특별함’이 담겨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나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함께 살아갈 친구’로 여긴다. 오히려 자연보다 ‘아이들’이 돋보인다. 어쩌면 ‘탱이’와 ‘상상이’가 바로 자연일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서로를 키우게 하는 것, 서로에게 배려하는 아름다움이 이 책 곳곳에서 배어나온다. 탱이와 상상이는‘자연스러움’이 진짜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것 같다. 겉멋으로 ‘나와 다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순리에 맡겨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이들의 내면에는 하고자 하는 것에 자신을 맡기는 힘이 있다. 몸이 시키는 대로, 필요한 것을 만들고, 만들기 위해서 배우고, 배운 것을 나누고, 나누는 기쁨에 또 배우고. 교육이란 이와 결코 다르지 않다.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장점은 다른 사람을 억지로 설득하여 끌고 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생각하고 느끼도록 하고 있다. 오히려 이것이 더 큰 설득력으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는 것이리라. 이 책에 나오는 가족처럼 밥해 먹고, 집 짓고, 농사짓고, 글도 쓰고, 가끔이지만 그림도 그리고, 옷도 짓고, 악기도 다루고, 세계여행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 책에서 온전한 사람이란 여러 가지를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탱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지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인이 무언지를 알 듯했다. 배가 고프면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 걸 보면서, 진달래꽃에서 꿀을 따먹는 걸 보면서, 사람이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게 전인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 거기서 주는 풍요로운 영감을 느끼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해내는 게 전인의 기본이리라. 무협지에서 보면 훌륭한 노사부는 수제자를 전인으로 기른다. 무술을 가르치기 전에 바느질, 빨래와 같은 살림살이, 강과 산에서 먹을거리 해오기, 연장 만들기처럼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본을 가르친다. 그리고 사물을 바로 보는 법도 가르친다. 자기가 바로 서고,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책에 나온 지식은 살아 움직일 수 있다. 만일 자기 눈앞에 놓인 것들을 바로 보고 거기서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한다면 책이 무슨 소용이리오.”(본문 156쪽) 의미 있는 말이다.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의 단순함이 부럽다. 내가 버리지 못한 것을 버리고 자유를 얻은 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평화와 시원한 바람소리를 듣는다. 자기 생각대로 삶을 가꾸며 사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많은 것을 포기하고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용기가 있는 자만이 온전한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한 책에 이렇게 온전히 빠져보기는 근래 들어 드문 일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진정한 대화가 무엇인지,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삶을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김자연 | 동화작가이자 아동문학평론가이다. 1985년 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 제 10회 방정환 문학상 수상,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바 있다. 저서로 동화집 ‘항아리의 노래’외 3권, 『한국동화문학연구』, 『아동문학 이해와 창작의 실제』, 『유혹하는 동화 쓰기』 등이 있으며 현재 전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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