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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 |
[제 105회 백제기행] 뭉클함으로 기억되는 4월!
관리자(2006-06-10 11:07:23)
글│ 정성엽 강령탈춤전승회 대표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 예보를 접하고 조금은 스산한 날씨 속에 전주를 출발한 우리 일행은 조선의 청백리라는 맹사성의 고택인 맹씨행단에 도착하였다. 맹씨행단은 본디 최 영 장군의 집이였던 고려시대의 민가 안채이다. 원래는 양쪽 백회벽에 부엌 칸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일부의 모습만 남아 있어 아쉬움이 컸지만 단아함과 소박함이 그대로 남아 있어 고려시대 민가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동안 조선의 한옥만을 보아온 나로서는 새로운 풍경에 조금은 생경한 느낌이랄까, 묘한 느낌이었다. 한옥 하면 남향집이 기본인데 이집은 북향이었고 사랑채인지 안채인지 (조선의 사대부집은 크게 사랑채 행랑채 안채 등으로 구분) 구분하기도 힘들어서 한옥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보통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부엌이 있었다 하고 마당이 꽤나 크게 자리 잡을 걸로 봐서는 안채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하나씩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잘 지은 집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바람의 세기나 방향을 잘 계산해서 창문들의 크기가 제 각각이라든지, 창문을 열면 바로 꽃밭이 보이게 만든 센스(!)라든지, 방에서 밖에 누군가 왔을 때 내다보는 눈꼽재기창(해설해주신 이흥재 선생님께서 알려준 내용임)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집 구경으로 정신없이 이리저리 둘러보다 문득 이집이 맹사성의 고택이란 말이 떠올랐다. 정승의 반열에 오른 사람의 집 치곤 조금은 초라(?)해 보이게 작은 규모에 청백리의 표상이라는 말이 과연 그렇구나 싶었다. 요즘 우리는 물질의 유혹과 집착으로 정신이 황폐해지고 권력이나 돈이면 다 되는 물질과 권력의 만능 시대에 살고 있지나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그래서 절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맹씨 고택을 나왔다. 여행이 주는 재미로는 그 곳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뺄 수가 없다. 맹씨 고택을 나와서 우리 일행이 도착한 곳은 그 곳 특산 먹거리인 묵밥을 하는 집 이였다. 도토리묵을 양념을 쳐서 국물에 담근 국밥 같은 것으로 별미인 것 같기는 한데 전라도 식성에는 잘 안 맞는지 다른 일행들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허나 나는 어디를 가든 어떤 음식이든 다 잘 먹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새로운 음식을 접한 즐거움이 좋았다. 외암리 민속마을이 다음 목적지, 이곳은 어떤 곳일까? 용인 민속촌일까. 낙안읍성일까. 아니면 또 다른 풍경일까,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도착한 민속마을은 기대보다는 조금은 개발의 손길이 먼저 느껴지는 곳이었다. 잘 정비된 주차장이며 하천이며 손님맞이에 분주한 상가들이며…. 원래 이곳이 하나의 집성촌이었고 그 형태가 어느 정도 보존되었다는 점 빼고는 특별한 감응이 전해 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우리 일행들도 주변에 핀 꽃이며 나무 이야기들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았다. 분명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았는데 도무지 주민들은 눈에 띄지 않고 논이며 밭이며 누구 하나 농사짓는 사람도 없고 개발 과정에서 주민들이 이주비를 줘서 다 내보냈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주민들 없는 민속마을이라니, 집은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서 뭘 보라는 건지…. 전공하는 학자들이야 집 구조가 어떠니 마을 형태의 원형이 어떠니 하면서 연구 할 가치가 있는지 몰라도 우리 같은 사람이야 사람 냄새나는 마을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용인민속촌처럼 직업 주민들이라도 채워 놓을 용기가 없었던 걸까…. 예산이 부족했겠지 라는 생각했지만 제대로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도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말이 좀 심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제는 개발에 의한 원형 훼손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의미 있는 방문이 된 것은 외암리 민속마을에서 3년 시묘살이를 행한 이득선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시묘살이의 과정과 어려움 등,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와 선생님의 말솜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대화 중 일부를 옮겨본다. 일행: 3년 시묘 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선생님: 육체적 어려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지요. 특히나 겨울에 눈이라도 올라치면 맨손으로 무덤에 덮인 눈을 치우느라 손이 장난이 아니었지요. 일행: 빗자루나 다른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잖아요? 선생님: 아버님 누워 계신 곳을 빗자루로 쓸어내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어요. 일행: 또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요? 선생님: 장마철 비가 오는 날 우산으로 무덤을 받치고 있을 라면 나는 비를 쫄딱 맞고 있어야 하는데 몇 시간이 지나면 몸이 마비지경에 이르게 되지요. 일행:……. 일행: 다른 재미난 경험들은 혹시 없으신가요? 선생님: 옛말에 정성을 다하여 시묘를 하면 산신령이 내려와서 정성에 탄복하여 조상님을 편히 받아주신다고 하는 말이 있어요. 나도 큰 호랑이를 몇 번 봤고 끝날 즈음에는 산신령과 호랑이가 아버님 무덤 주위를 돌고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을 봤지요. 비로소 아버님이 편히 저세상으로 가시겠구나 생각했지요. 일행:……. 일행: 그러면 그 힘든 시묘살이는 왜 하시는 지요? 선생님: 3년 시묘살이를 해도 부모님의 은혜를 만분의 일도 못 갚는다는 말이 있어요. 나도 그래요, 나를 있게 해주고 길러주시고 먹여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겨우 만분의 일 만큼도 갚지 못한 것이지요. 일행:……. 우리들 마음속의 뭉클함이 무거워질수록 하늘도 어두워지더니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늘도 울고 있음인가? 내리는 비를 따라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 눈물이 흐르는 까닭은 왜일까?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오늘은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는 우리를 문 앞까지 배웅해주시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비를 피해 뛰어 가다보니 어느새 비가 개였다. 신기하게도 그 집에 있는 시간동안만 비가 내렸다. 우리에게 효행을 일깨워 주려고 했다는 듯이……. 다음 행선지는 온양 민속 박물관이다. 생활사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친숙할 만큼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사용하시던 여러 도구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진입로에서부터 잘 정돈된 조경들과 정성들인 나무들로 여느 박물관하고 사뭇 다른 풍경이다. 건물의 미적 감각이 눈에 들어오고 마당과의 조화도 일반 박물관하고는 많이 다른 것을 느꼈다. 전주의 역사박물관하고 품격이 다르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우리는 왜 이렇게 못 만들고 콘크리트 구조물만 덩그러니 지어 놓고 사람들을 오라고 하는지 짜증이 날려고 했다. 전시공간은 또 어떤가? 테마별, 시대별, 역사적 사료 등 짜임새 있는 사료들도 아주 꼼꼼하게 수집, 정리해 두어서 볼거리와 이야기꺼리가 풍성했다. 일행들과 웃고 떠들고 재미있게 관광할 수 있음에 세심하고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전시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주의 역사박물관에서도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이것저것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다른 일행은 이미 버스에서 대기 중이니까 빨리 오란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전시장을 나와 입구 쪽으로 가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비석이다. 비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계몽사 어쩌고 하는 내용과 기념식수를 했다는 내용인데 나무는 밑동부터 잘려져 있고 비석만 있다. 아! ‘이곳은 계몽사에서 조성하고 관리하는 박물관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문도 보지도 않고 그냥 관람부터 한 내 소홀함도 있지만, 오히려 깔끔하고 잘 정돈된 박물관을 먼저 보고 이후에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다행이지 싶었다. 기업의 이윤을 사회로 환원하자고 이론에서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이렇게 행하는 기업도 있구나 생각하니 그동안 기업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부정적으로 생각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모아 박물관으로 조성하여 후손들에게 우리 조상들의 생활 모습이 담긴 유산들을 지키고 보존하는데 앞장선 계몽사에 박수를 보낸다. 근데 기념 식수한 나무는 왜 밑 둥이 잘려져 있지? 고사? 갈등? 부실관리? 궁금해진다. 이곳에 숙제를 하나 남겨 놓고 다음에 또 오기로 하자. 보통 5월을 계절의 여왕 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4월의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5월은 겨울을 지나 봄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계절이라 생각되고 4월은 그 과정의 갈등과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달인 것이다. 그래서 변덕도 심하고 몸살도 제법 한다. 우리네 삶도 어떤 결과에 이르기까지는 번민과 갈등의 연속이리라. 때로는 굴절되고 주춤하기도 하겠지만 5월의 화려함은 4월의 번민과 갈등에서 이루어짐이다. 4월에 여행을 떠나 보자. 정성엽 | 강령탈춤전승회 대표. 전통문화사랑모임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제 47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제 13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 총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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