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 |
[사과나무 갤러리] 사과밭에서의 쉼
관리자(2006-06-10 11:05:41)
글 | 최정학 기자
아쉬웠다. 사과꽃은 2주 전에 이미 다 떨어져버렸다고 했다.
부안방향으로 빠지는 김제 외곽도로에서 다시 콘크리트로 포장된 시골길을 따라 가길 5백여 미터. ‘사과나무 갤러리’(김제시 신곡동 43-1)는 김제시 외곽의 사과나무 과수원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사과나무 갤러리’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변변한 이정표 하나 없이 시골 콘크리트길을 달려갈 때,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길잡이는 사과나무 과수원이었다. 사과나무 과수원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사과꽃 수북한 사과나무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것이 ‘사과나무 갤러리’를 찾게 된 이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 양순애 씨와의 통화에서 이미 실망했듯, 저 멀리 보이는 과수원은 이미 녹음으로 우거져 있었다.
‘사과나무 갤러리’에 가기 위해서는 과수원에 난 소로를 질러야 했다. 덕분에 좀처럼 가까이서 보기 힘든 사과나무를 바로 눈앞에 마주하는 순간, 이미 져버린 사과꽃에 대한 아쉬움은 작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사과꽃이 떨어진 그 자리자리마다 어느새 작은 사과들이 몽글몽글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녹음의 생명력 가득한 사과나무 밭 한 귀퉁이에 ‘사과나무 갤러리’는 숨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아늑한 분위기가 전해져 왔다. 주방이 있는 한쪽 벽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통유리를 적절하게 배치해 과수원의 녹음이 시원스럽게 내다보였다.
“언젠가 후배가 놀러 와서는 입식인데도 왜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했느냐고 투덜대더라구요. 이곳까지 오는 분들은 마음을 먹고 오는 분들인데, 기왕에 쉬로 왔으면 신발까지 벗고 들어와서 편하게 쉬었다 가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어요. 신발을 신고, 벗고의 차이가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양순애 씨는 이곳이 사람들에게 편한 쉼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접근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사과나무 갤러리’는 더 없이 쉬기 좋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5천여 평 과수원에 사과나무가 7백여 그루, 그리고 과수원 곳곳에 배나무와 자두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등 각종 과실나무가 풍성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양순애 씨가 직접 만든 쌍화차, 오미자차, 대추차, 배주스 등을 마시며 얘기를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갖가지 과실나무 사이로 난 소로를 산책할 수도 있다. 지난봄에는 과수원에 난 쑥이며 미나리를 캐는 손님들로 과수원이 떠들썩했다고 한다. 유기농 인증을 받아 농약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산된 사과는 물론이고 나물들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양순애 씨의 욕심은 단순히 이곳을 ‘쉼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이곳이 작은 문화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조각이 되었건, 그림이 되었건 간에 꼭 전문가들이 아니더라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좋은 작품들을 함께 공유하고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앞으로 꾸며나가려고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기도 하구요.”
이곳이 문을 연 것이 지난해 11월, 생긴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이곳을 찾아올 수 있는 변변한 표지판하나 없지만, 이미 이곳은 소규모 동호인들이 ‘비밀장소’ 삼아 즐겨 찾는 장소다. 카페 한켠에 양순애 씨가 직접 제작한 천연염색제품과 한지공예제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도 이 공간의 ‘내일’을 보여주는 표지였다.
요즘 과수원은 사과를 솎아 주는 일로 한창 바쁘다고 한다. 지금 몽글몽글 매달린 귀여운 사과들은 8월초부터 11월 말까지 품종별로 수확된다. 때에 맞춰 온다면 물론, 맛있는 유기농 사과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