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 |
[전주대사습놀이]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
관리자(2006-06-10 10:56:36)
글 | 이상덕 전라일보 문화·교육부장
예향 전주라는 말속에는 항상 국악의 본고장이 그 중심부를 이룬다. 그 기저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전주대사습놀이와 같은 타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좋은 전통문화의 판이 있기 때문이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전주의 문화자존심과 직결된다. 수도 없이 늘어난 대통령상이 있지만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예비명창들이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 득음반열에 오르기 위한 열정을 불사르는 것에서 우리는 대사습의 권위와 위상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올해 대사습을 바라보는 눈은 그리 곱지만 않다. 예비명인명창들의 치열한 공력도 그렇지만 운영 면에서도 본래의 모습을 돌려놓기 위한 노력보다는 더 외형적인 면에 공을 들인 현상이 짙어만 가기 때문이다. 32주년을 맞은 전주대사습놀이가 참가자들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면에서는 평년작을 유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올해 학생부와 일반부를 같은 시기에 전면 배치해 축제의 열기를 더했던 전주대사습놀이는 겉으로도 많은 변화를 모색하며 전국적인 대회의 위상을 이어내는데 성공했다. 특히 전국대회 전 축하공연과 대회를 마친 후 퍼레이드를 개최하는 등 외형적으로 많은 변화를 시도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도 올 대사습이 거둔 소득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대회 상금도 대폭 늘리고 부상제도가 도입돼 그 어느 해 보다 열기를 더해줬다.
전주시와 (주)문화방송이 공동주최하고 사단법인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와 (주)전주문화방송이 공동주관해 지난 7일 예선에 이어 10일 전주화산체육관에서 폐막된 제 32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영예의 최고상인 판소리명창부의 대통령상에 대전출신의 고향임씨(49)을 선택하고 총 9개 분야의 명인명창을 배출했다.
판소리 명창부 13명, 농악 6팀, 247명, 무용 25명, 기악 38명, 가야금병창 10명, 민요 19명, 시조 32명, 궁도 200명, 판소리 일반 14명 등 총 357팀, 598명이 출전해 지난해보다 참가율에서도 높은 열기를 담아낸 올 대사습놀이는 전체적으로 심사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고 질적으로도 분야별 편차가 있었다는 총평을 받았다.
장원을 차지, 명창반열에 오른 고향임씨는 심사위원 7명 전원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아 최고의 기량을 뽐냈으며, 50대를 바라보는 중견 명창답게 성음이나 전체적으로 판을 끌어가는 힘이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아 새로운 ‘여류명창 탄생’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했다.
여기에 농악부의 경우 수원재인청 농악단이 처음으로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 호남좌우도농악과 강원농악과는 분명한 변별력을 선보여 대사습놀이에 대한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무용부문에서는 60대의 무용수가 출전해 장원을 차지한 반면 기악부문은 20대가 장원에 올라 부분별 나이의 편차가 심해 나이제한에 대한 심각한 노력도 요구됐다. 그리고 무용과 민요, 가야금병창은 지난해보다 실력이 향상되었으며, 판소리와 기악부문은 평년작 이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대사습의 위상과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실력이 부족하다면 장원을 내지 않는 방안이 심도있게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전주대사습놀이가 지금과 같이 진행된다면 한국 최고의 명창명인을 발굴하는 장으로 승화될 수 없다는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참가자들의 기량이 해를 거듭할수록 퇴보하고 있다는 국악계의 중론에서 쉽게 납득이 간다. 올해에도 20대 젊은 국악인들이 대거 참가하면서 상대적으로 대회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국악이라는 것이 세월의 공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참가자들이 젊어지면서 대회의 질도 동반 하락하고 있는 것 같다”며 “타 대회의 변별력을 위해서는 나이제한 등과 완창발표회 강화가 절실하다”고 보완책을 내놓았다.
운영면에서는 갈수록 태산이다. 특히 대사습 본래의 모습을 찾아내는 작업은 전무하고 생방송이 가져다주는 틀 갖추기는 여전히 아쉽다. 여기에 30주년을 넘어섰지만 대사습의 유래와 그동안 진행과정에 대한 학술적 검토가 없었다는 점은 국내 최고의 국악등용문을 무색케 했다는 평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컴퓨터 채점으로 점수를 즉시 공개해 긴장감이 떨어졌던 기존 대회운영 방식을 마지막 일괄 발표로 변경해 긴장감을 더한 것 등이 올해 달라진 부분이지만 이 또한 경연대회를 극적으로만 몰아갈 수 있다는 부정적 시각도 제기됐다.
올해 대사습은 심사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자가 출전한 명창·명인은 심사위원 위촉과정에서 배제했다. 심사위원들은 예년보다 심사위원 구성이 잘됐다는 평가를 내놨지만 일부 국악인들은 심사위원의 대다수가 대사습보존회 회원들이라며 엇갈린 평가를 했다. 진행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경연장소 선택도 경연부문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참가자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본선 경연도 부문별 집중평가가 아니라 교차 진행돼 심사의 집중도와 상대평가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대회 진행요원의 확충도 필요한 과제로 부각됐다.
이밖에 새로운 이사장은 판소리명창부 장원자에게 협찬을 받은 조선시대 왕비의상과 머리 장식을 겹치는 이벤트를 연출했다, 그러나 이 것 또한 축제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비난을 사기에 족했다. 서민들의 애환을 받은 분야가 바로 판소리인데 아무리 이벤트지만 명창에게 왕비의상을 선물하는 것은 판소리의 뿌리를 왜곡한 처사로 평가된다.
결국 외형에 공을 들여 효과를 본 만큼 내실을 다지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아쉽기만 하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왔다. 매년 지적하는 문제점도 있고 올해 새롭게 드러나는 문제점도 있다. 물론 긍정적인 문제도 많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이제 한국 최고의 소리경연장이 됐다. 그에 걸맞은 모습을 담는 작업이 절실하다. 겉만 화려하게 포장하지 말고 안을 단단하게 다지는 문화적 토양이 절실하다. 이 문제의 해결은 대사습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