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 |
[한지문화축제]장기적인 지원으로 생명력을 키워나가야
관리자(2006-06-10 10:56:02)
글 | 이준호 삼천문화의 집 관장
너무 쉽게 바뀐 축제의 명칭, 아쉬움으로 남다
전주한지문화축제의 원형은 1997년 전주한지축제에서 출발한다. 전주한지축제는 한지공예대전과 페이퍼 마켓, 기획전을 세 축으로 1997년, 1998년 2년 동안 진행되었다. 전주한지축제는 1999년 전주종이문화축제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그 해에 문화관광부 우수기획축제로 선정 되는 성과를 내왔다. 1999년 당시 ‘전주한지축제’에서 ‘전주종이문화축제’로 명칭을 바꾼 이유를 들면, 한지라는 말이 너무 어렵고 고래(古來)의 문화라는 것, 종이는 누구나 쉽게 설명을 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한지는 ‘Korean Traditional Paper’ 라고 해야 외국인들에게 설명이 가능한 지엽적인 용어라는 것, 종이는 청주의 직지를 예로 보듯 지적 산물로써 젊은층 및 가족형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것, 종이는 신문지 재활용, 종이조형물 등 풀어낼 것들이 무궁무진한 반면에 한지는 아이템의 한계가 많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볼 때 한지는 세계형, 미래형 축제로 가기에는 성격상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전주종이문화축제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 동안 브랜드 이미지를 키워왔다. 그럼에도 전년도의 평가참고 자료인 설문조사와 불확실한 한브랜드 사업에 휩쓸려 축제의 이름을 바꾼 것은 조급한 감이 있다. 한번더 쉼 호흡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브랜드는 한국어, 한식, 한복, 한지, 한옥, 한국학 6개 분야의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통 문화콘텐츠의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를 위해 문화관광부가 직접 육성에 나서는 국가브랜드 사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 브랜드 중 하나의 분야인 한국어만 놓고 보아도 개념이 서지 않는다. 종이의 순수우리말은 한지가 아닌 종이 그 자체이니 말이다.
한지문화축제의 생명력, 풍남제와 별도의 장소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2006전주한지문화축제의 주제는 ‘한지 미래를 열다’ 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주제는 있으되 기획은 주제를 따라가지 못한 듯 하다. 조직위 측에 의하면 ‘한지산업화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생활 속 첨단제품을 보여주는데 축제의 초점을 맞췄다’고는 하나 참가업체들이 너무 지엽적이었고, 미래형 축제라고 보기에는 너무 왜소한 감이 들었다. 전문디렉터 없이 실기인이 주가 되어 움직였던 축제조직위는 처음부터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러한 것을 알면서도 조율을 해내지 못한 축제 실행위원들에게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실행위원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진 전북예술회관기획전은 공예품전시에 머물렀고, 전주공예품전시관에서 이루어진 특허상품기획전은 기존에 나와 있던 상품들을 재전시하는 수준이었으며 별반 호응도 높지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에 비해 예산(시비 2억, 패션쇼 별도, 자체수입 등)은 높아졌으나 행사의 내실성 면에서는 떨어진 감이 있다. 체험프로그램의 경우 작년 프로그램과 특별하게 차별성을 찾을 수 없었고, 조직위에서 내심 자랑하던 ‘한지의 멋과 맛’은 상식 밖의 수준이었다. 장소문제도 심각히 고려해 보아야한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전주한지문화축제를 풍남제의 부속행사처럼 인식한 것 같다. 실제로 전주한지문화축제의 하이라이트라는 한지패션쇼는 풍남제조직위에 무대사용료를 지불하고 풍남제 메인무대에서 진행됐고, 풍남제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한지문화축제의 체험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전통한지뜨기 체험이었다’는 관람객들의 얘기는 쉽게 흘려들을 수가 없다.
한지문화축제는 전시장과 체험장, 마켓이 하나의 동선에서 이루어져야 제대로 빛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고 큰 조직의 눈치만 보는 조직위가 아니라 전주한지문화축제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살릴 그 무엇에 조직위는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일을 도모할 열정 있는 디렉터는 필수조건이다.
전주시의 정책적 지원,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 한다
전주한지문화축제는 산업형 축제로 방향을 설정했고, 그 과도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산업형 축제가 되려면 돈이 되는 업체들이 신상품을 들고 나와 세일즈프로모션을 통해 계약체결이 이루어지고 실적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전주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생산업체가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 특허출원은 할 수 있지만 아직은 특허의 실용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또, 한지의 산업화가 얘기되면서 지자체마다 닥나무를 심고는 있지만 닥나무만 심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닥나무가 종이가 되기 위해선 아흔 아홉 번의 손이 가야 한다고 하듯이 인건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작금의 현실은 외국에서 펄프를 들여와 전통기법으로 한지를 제작했다하여 전통한지라고 시장에 유통시키는가 하면, 중국현지에서 아예 한지를 제작해 들여와 판매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다. 한지관련 상품이 최소한 10% 라도 실생활에 사용되었을 때 한지산업이 그나마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6 전주한지문화축제에서 예전보다 업체들이 많이 참여했고 수익을 창출했다 하여 자축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후속작업이 꾸준히 병행되고 그 성과물이 1-2년 후에는 가시화 되어야 한다. 한 브랜드 사업은 일정부분 거품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초기 지원은 있을 수 있지만 한시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지문화축제가 성숙기로 가기 위해선 전주시의 장기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축제 때만 부스 몇 개 지원해 줄 것이 아니라 참가업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어야 하고 이를 통해 신제품 제작발표회 등을 연계시켜내야 한다. 또한 전주시의 산업지원과 등이 힘을 보태줘야 하고 상시적으로 업체들과 장인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신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워크숍등 유기적 관계를 맺어 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언론에 보도된 전주시의 한지산업클러스터 조성계획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축제는 1년 동안의 성과가 총화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랬을 때 진정으로 삶이 녹아 있는 지적 산물로서의 산업형 축제가 될 것이며, 시민들에게 환영받는 축제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에피소드
2005년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문화관광부 년사업보고 동영상을 본적이 있다. VIP가 해외순방이나 외국의 국빈들에게 변변히 줄 선물이 없다고 하자, 국무총리와 문화재청장이 맞장구를 쳤다. 그 이후에 한 브랜드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Gift에서 출발한 것이 2010년까지 정부의 역점추진사업인 한 브랜드사업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전주는 한 브랜드사업의 ‘전주판’ 완성을 벼르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준호 | 전주공예품전시관 사무국장으로 일했었다. 현재는 전북민예총 정책위원과 삼천문화의집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