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 |
[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관리자(2006-06-10 10:55:01)
글 | 문윤걸 문화저널 편집위원
“전주국제영화제는 실험영화를 지향하는 동시에 인간적인 면이 많은 영화제이다”(아르헨티나 모궐란스키 감독)
“스탭이나 자원봉사자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잘 대처하는 걸 보니 확실히 틀이 잡혔다”(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위 두 사람의 증언이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7년 동안 얼마나 성장해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확실히 전주국제영화제는 이제 확실한 자기 자리와 역할을 찾았다고 자부해도 될 듯하다. 지난 7년, 숱한 실망과 질타를 견디면서 한발 한발 진화해간 조직위원회와 스탭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명확히 드러난 자아 정체성
올 전주국제영화제의 최고 성과는 무엇보다도 영화팬들이 ‘전주국제영화제가 누구인가’에 대해 명확히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전주국제영화제는 다른 영화제와 확실히 구별되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영화제’로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자격이 생겨난 것이다.
이는 지난 7년 동안 대중친화적인 영화제가 아닌 영화 매니아들만을 위한 영화제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믿고 한 길을 걸어온 결과이다. 확실히 전주국제영화제는 재미있는(?) 영화들 대신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낯선 영화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제이다. 따라서 헐리우드식 상업영화에 익숙한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불편한 영화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계 영화의 변방 중의 변방인 전주에서, 그것도 20여억원 규모의 예산으로 아카데미나 칸느처럼 세계적인 유명배우들이 모여드는 상업영화제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부산과 같은 개념의 영화제를 반복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전주국제영화제가 그동안 ‘대안영화’, ‘독립영화’, ‘디지털 영화’ 같은 비주류 영화, 새로운 기법의 영화, 제3세계의 영화 등을 줄곧 고집해 온 것은 참으로 적절한 선택이었으며, 올바른 전략적 판단이었다.
이제 영화팬들은 전주를 주목하게 되었다. 최소한 아시아권에서는 그 어디도 전주만큼 특별한 영화들을 이처럼 대규모로 모아서 상영하는 영화제는 없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찾아와야 하는 영화제가 되었으며, 영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참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영화제가 되었다.
더욱 풍부해진 프로그램
프로그램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주제를 집중시켜 엄선하였지만 더욱 다양해진 상영작들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42개국 194편의 영화를 상영하였다. 편수도 만만치 않지만 그 내용이 더욱 풍요롭다. 우선 영화를 꾸러미로 담은 각 섹션들이 명확한 성격을 드러냈으며 작품마다 완성도가 높아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특히 이란 영화로 개막작을 삼은 것이나 인도의 뉴 시네마 기수 '리트윅 가탁 회고전', 그리고 신인과 거장들의 신작들로 주목받은 '인디비전'과 '디지털 스펙트럼', 소비에트 연방의 금지된 영화들을 불러 모은 '소비에트 특별전'은 영화제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하였다. 또 ‘불면의 밤’과 ‘전주 소니마주’, ‘영화보다 낯선’ 등의 프로그램도 전주영화제의 특별함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한국영화 쇼케이스’를 두고 그것이 한국 상업영화를 모은 것이어서 영화제의 정체성을 흐린다는 지적이 일부 있었는데 이는 전주시민을 위한 서비스 차원의 것이므로 지나치게 심각한 판단을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축제로서의 가능성도 열었다
관객들의 참여와 관객을 위한 배려부분 역시 괄목할 만큼 성장하였다. 조직위측의 자체 결산에 따르면 전체관람객이 작년 6만9,000명(유료 5만2,000명)에서 대폭 늘어난 8만5,000명(유료 5만9,000명, 외지관람객 40,000여명)이며, 해외 게스트(작년 63명, 올해 81명), 방문 기자수(작년 668명, 올해 693명) 등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게스트나 기자들도 크게 늘었다. 이러한 관람객의 증가는 기념품 매출 증가로도 이어져 작년에 비해 40%의 신장율을 기록했다 하니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을 동시에 이룬 셈이다 .
특히 영화제의 주무대인 영화의 거리에는 야외 상영장, 이벤트 무대 등을 만들어 거리 축제를 만들어내며 영화제를 축제화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1회 영화제부터 전주영화제의 상징이 되어 온 노란 옷의 자원봉사자들의 친절은 전주영화제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외지 관람객들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하려 한 노력이 컸다. 싼값에 숙박을 제공하고, 전주의 값싼 맛 집들을 소개하여 외지 관람객들의 만족도를 높여 체류기간을 늘렸다. 또 심야 관람객들을 위한 깜짝 도시락 제공은 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관객을 위주로 한 주의 깊은 운영은 영화제를 보는 축제에서 즐기는 축제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어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래도 과제는 있다
이번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한 한 감독은 이런 충고를 남겼다. “전주가 영화제의 도시, 영화촬영의 도시일지는 몰라도 아직 영화의 도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말은 영화제가 단순히 일회성 행사나 축제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는 하필이면 전주가 왜 국제영화제를 버거워하면서도 지속해가는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겠다. 전주는 전주영화제가 궁극적으로 세계 영화인들의 전주 방문을 유인하여 지역의 영화 인프라를 확장하고, 지역의 인재들이 세계로 나가는 터미널로서의 기능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또 지역이 영화를 이해하고 영화에 투자하는 것이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은 물론 지역의 산업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제가 확인시켜 주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번 영화제에서는 이와 관련한 기초적인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로컬시네마 전주’와 ‘전주지역 중단편 영화 제작 지원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역의 독립영화 감독들을 발굴하고 관련단체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시도한 것이나 ‘인더스트리 스크리닝’을 통해 필름마켓을 시도한 것 등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로 완성도는 높지 않지만 그 전주영화제의 새로운 역할을 조직위가 준비하고 있다는 시그널로서의 의미는 충분하였다.
4월 27일 개막해서 5월 5일까지 42개국의 영화 194편을 모아 상영한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이번 영화제를 통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내가 누구이며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주고 있다. 그동안 영화제를 두고 가장 고민해왔던 큰 문제를 마침내 해결한 것이다. 이로써 전주국제영화제는 진화를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더 이상 ‘넌 누구니?’하는 질문을 받지는 않을 것이고, 행여 그런 질문을 받더라도 더 이상 당황해 할 이유도 없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전주국제영화제는 한차원 높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전주국제영화제가 지역사회의 발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해 가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