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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 |
[패러디]돼지바와 패러디
관리자(2006-06-10 10:51:03)
2002년 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와의 연장전 상황에서 우리측 패널티 지역까지 질주해 들어온 이탈리아 선수가 우리편 수비수와 함께 넘어졌다. 예선부터 시작된 운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칠 때, 경기장 카메라는 검은색 상의를 입은 심판을 비추었고, 심판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도리어 이탈리아 선수의 퇴장을 선언하였다. 이어 달려오는 많은 이탈리아 선수들 속에서 다소 키가 작은 심판은 붉은 색 카드를 꺼내 들었고, 항의하는 선수들과 시선을 맞추지 않은채 약간 치켜뜬 눈으로 연방 “노”를 반복하는 듯 했던 그 모습은 지난 4년간 수도 없이 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런데, 최근 이 장면은 인터넷을 통해 다시 한번 뜨고 있다. 연기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하는 임채무라는 탈랜트가 모레노(주심) 역을 하였다. 심판복장을 한 임채무는 모레노의 뛰어가는 모습을 다소 과장하여, 뒤뚱거리며 달려가 레드카드 대신 돼지바라는 아이스바를 꺼내어 뽑았고, 이어 우걱우걱 씹어 먹는 모습은 조만간 시작될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장안의 화제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원작의 약점이나 진지함을 타겟으로 하여 이를 흉내내거나 과장하여 왜곡시킨 다음 그 결과를 알림으로써 원작이나 사회적 상황에 대하여 비평하거나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을 패러디라고 한다. 본래 원작을 변형하여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예컨대 번역과 같은 것을 2차적 저작물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2차적 저작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작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패러디도 원작을 변형하여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다는 점에서 원작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2차적 저작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번역, 편곡과 달리 패러디의 경우는 원작을 비꼬고, 풍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작자들이 이를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작권법의 최종 목표는 문화의 향상발전, 문화의 창달에 있다. 그런 점에서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을 특정인(원작자)의 동의유무에만 달리게 하는 것은 저작권법의 목적에 반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패러디는 속성은 2차적 저작물과 같지만, 원작자의 동의를 요하지 않는 것으로서, 저작권자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자유이용의 한 태양으로 규정되게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을 이재수라는 음치가수가 패러디하여 “컴배콤”이라는 노래를 음반으로 출시한 적이 있다. 서태지는 위 컴배콤이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여 그 음반의 판매금지가처분신청을 냈다. 이재수는 음치가 놀림받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거나 대중적으로 우상화된 서태지도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등의 비평과 풍자가 담겨있다고 하면서 패러디일 뿐이라는 항변을 하였으나, 법원은 이재수의 노래가 원곡에 나타난 독특한 음악적 특징을 흉내내아 단순히 웃음을 자아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일 뿐 원곡에 대한 비평적 내용을 부가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이재수의 패러디항변을 배척하였다. 뒷걸음질 하면서 브래이크 댄스를 추는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이라는 노래는 폭력성을 배제하는 교훈적 내용의 노랫말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얀코비치라는 패러디가수는 이 노래를 같은 멜로디에 다이어트를 조롱하는 듯한, 모든 것을 먹어치워 버리라는 내용의 "eat it"이라는 노래로 패러디하여 발표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얀코비치는 이 노래로 1984년도 Grammy 상 single chart top15에 오르기도 하였는데, 이후 얀코비치에게 패러디되는 것이 인기의 척도가 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이래저래 패러디는 저작권법 전공자 입장에서 볼 때, 저작권자의 저작권과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의 갈등 속에 마치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은 긴장감을 맛보게 하는 분야임이 틀림없다.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 hd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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