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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 |
[세바스티앙 살가도, 김중만, 성남훈 사진전시회]1+2 초특가 사진전시 셋트상품을 700원에 모십니다
관리자(2006-06-10 10:24:21)
글 | 김정우 전주 유니버셜스튜디오 대표 전북도립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우선 긴장과 설레임이었다. 어쩌다 사진계의 오지가 되어버린 전북에서 세계 최고의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AO SALGADO)의 173점의 방대한 오리지널 프린트를 한 공간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더불어 한국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의 사진작업이 얼마나 대등하게 살가도의 사진과 맞설지,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높은 대중적 인기와 지명도를 가진 감각적인 사진가 김중만의 사진이 어떤 다큐멘터리적 태도로 이들의 작업과 어우러질지 기대되었던 이유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작년 11월 이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입장에서 감당키 어려운 높은 작품대여비와 여타 어려운 여건에 포기했던 세바스티앙 살가도 전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함도 함께했다. 우선 전시장에서 받은 첫 번째 충격은 700원의 입장료였다. 이 초호화 사진종합선물세트(?) 전시 관람료가 700원으로 세계적 사진가 세바티앙 살가도, 성남훈, 김중만의 사진전시를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 예향전북 전라북도 도립미술관의 괴력이었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이곳저곳에 엡손이 후원한다는 가족사진이벤트며 사진콘테스트 안내 A4 벽보들, 중앙 홀 월드비전 구호부스와 모금함 등 이 파격적인 관람료를 만들기 위해 불가피한 것들 이었나 싶어 답답했다. 하여간 가장 큰 충격과 서글픔은 분명 텅 빈 전시장 모습과 그 넓은 공간에 부담스러이 빽빽하게 메워져있는 살가도의 사진이며 회고전을 연상시키는 성남훈의 작품들, 모호한 접근과 텍스트로 혼란스러운 김중만의 사진 등 개인적으로는 당혹감(?)마저 느껴지는 전시였다. 어쩜 파격적 가격에 미안스러워 할 관람자의 마음을 배려한 전시기획의 세심함인지 전시공간은 적당히 어수선했고 전시된 살가도의 사진은 또 그렇게 적당히 가벼워져 있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전   ‘절망에서 희망으로’ ‘라틴아메리카’, ‘노동자들’, ‘이민, 난민, 망명자’ ‘기아, 의료’ 4가지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사진 모두가 1977년부터 2001년까지의 24년의 방대한 사진작업 분량이며 전시된 173점 모두가 살가도가 직접 선정한 오리지날 프린트로 구성되어 있다 한다. ‘라틴아메리카’는 77년부터 83년까지 미국이 중심이 되는 선진 자본주의 경제구조가 세계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시기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육체노동자로 살아가는 인디언 농부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지에 대한 7년여 대규모 프로젝트였고 이는 가난한 브라질을 강타한 자본주의 물결에 브라질 사회의 격동에 대한 사회학적, 경제학적 사진 보고서였다. ‘노동자 시리즈’는 1887년부터 1993년 사이 7년여 동안 중국, 인도, 소련, 방글라데시, 쿠바, 브라질, 미국 등 세계 26개국 50여 작업현장을 방문 촬영한 결과였다. ‘이민, 난민, 망명자’ 시리즈는 1993년에 시작하여 7년여 기간동안 세계 43개국을 돌며 매년 9개월 동안 그들과 함께하며 이 사진들을 완성하였다. 유고슬라비아와 체첸의 독립전쟁, 르완다의 민족분쟁, 이라크 걸프전, 아프카니스탄, 보스니아 인종문제 등 살가도의 사진은 전쟁의 최대 희생자인 민간인들의 참상을 보여준다.   ‘기아, 의료’ 사진은 살가도가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찍은 사헬의 기아로 알려진 아프리카의 참혹한 상황을 담은 사진이다. 사헬지역, 샤드, 에티오피아, 말리, 두산 등을 촬영하였고 그 지역의 사회, 문화와 역사 전반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공유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한 살가도의 장엄한 서사시로 평가 되어진다.(김영섭사진화랑 전시 안내글에서 발췌 인용) 필자는 이상의 전시 안내 글의 살가도의 작가적 태도과 작업에 투여한 긴 세월에 대해 일단 경의를 표한다.   역시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작업은 분명 살가도의 전형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깊이 있는 대상에 대한 이해와 애정 그리고 충분히 사진적이며 이미지적으로 드라마틱한 프레임구성과 공간 활용, 카메라워크에서 활용된 적절한 테크닉, 흑백사진프린트의 은염입자가 가져다주는 감성적 전율, 사진을 통한 피사체와 사진가, 감상자 사이의 공감대까지 그의 작업을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의 정형으로 평가되는 이유를 사진작업으로 증명해주기에 충분했다. 분명 살가도는 어떤 섹션에서도 사건적, 소재적 접근 이상의 작가적 양심으로 충분히 학습하고 고민했으며 넉넉히 함께하며 아는 만큼만 자신의 언어로 발언하는 듯싶다. 적어도 여타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업행태와 비교한다면 충분히 당당하다.   어느 전시 관련 글에서는 노동자의 착취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 작업들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언급되지만 필자의 견해는 별반 동의하지 않는다. 차라리 지나치게 감성적인 휴머니즘의 접근(육체노동의 인간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휴머니즘에 기초한 인간애의 시선)은 그 자신의 주관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가적 태도의 한계로 문제될 수도 있었다. 살가도의 사진이 현실의 고통과 문제의식이 사라지고 너무도 서정적이고 미학적인 모호함만 남아난다는 평가나 편협한 작가 개인적 견해로 감성을 자극한다는 평가의 한 축에 대해서도 필자는 일정부분 공감한다. 분명 그에게도 어쩔 수 없이 일정부분 프랑스에서 학습한 경제학박사로서 익숙해진 나그네(?)적 동정이 남아나고 자본주의의 경제논리가 현실적 상황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할테니…. 살가도의 사진은 사진에 대한 전문적 학습과 교육을 받았다는 신상의 정보가 없음에도 더욱 사진적이고 기능적이며 어느 사진가의 사진과 견주어도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점이 살가도를 더욱 빛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분명 살가도 자신이 사진화 되는 메시지에서 내용을 담는 용기인 사진적 어법에 얼마나 충실하려 노력해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다.   그 예가 되는 몇 가지를 지적하면 우선은 살가도의 사진 속 라이팅의 활용이다. 촬영공간에서 자연광의 상태를 읽어내고 대상에 극대화할 수 있는 앵글을 찾고 노출을 조율하며 인공광을 적용했다는 측면에서 살가도는 세계적 사진가다웠다. 더불어 살가도의 사진은 프레임의 구성이 탁월하다. 직접적인 사건과 사실이 지나치게 절제(?)되어있는 살가도의 사진에는 오브제가 상징화되고 살가도의 메시지를 만드는 프레밍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사각의 사진적 프레임에 배치되는 인물들과 오브제, 배경은 치밀하며 충분히 디자인적이다. 또 다른 사진적 특징은 살가도적 시선이다. 혹은 태도이다. 그는 상황이나 대상 옆을 맴도는 나그네나 관찰자적 시선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동행하며 참여하고 있다. 물론 그 접점이 좁고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의사가 없을 따름이지 분명 다정한 시선을 나눌 만큼 친숙해 있고 그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공감에서 가능한 사진적 친밀감이 어떤 대상에서든 공통적으로 형성되어있음이 살가도 사진이 차별화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작 사진의 전시공간의 활용은 참 많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나치게 좁게 부여된 전시공간에 촘촘히 나열식으로 진행한 전시형태나 사진마다 부여된 사진텍스트가 지나치게 사건 위주로 언급되어 사진 나름의 분위기를 반감한 측면이나(살가도의 사진은 사건적이지 않다.) 액자나 유리면에 남아나는 얼룩이며 먼지, 사진디스플레이 과정에서 그어진 듯 한 연필자국들이 액자주변에 어지러이 남아있는 흔적들은 대작에 걸 맞는 전시디스플레이는 아닐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가도의 사진은 밀도 있는 사진가의 태도와 접근 그리고 집중적인 사진작업과정 그리고 최종적 이미지의 완성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사진이었다. 누군가는 아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보이며 보이는 만큼 찍는다고 했다. 살가도는 누구보다 이러한 세계사적인 문제의식과 남미의 경제적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었고, 인디언 민족의 금욕과 위엄 있는 역사를 인식하며 살가도 나름으로 공감하고 느끼는 그 이야기만큼을 사진답게 이미지화한 사진가였다. 포토저널리즘에서 횡횡하는 강요하는 매체권력의 획일화된 문제의식이나 어설픈 동정심이 살가도의 사진에서는 그래도 자유로웠다.    김중만, 성남훈 사진전    ‘슬픈 눈 맑은 영혼, 내일을 열다’ 김중만, 성남훈이 대한민국 대표 사진가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전시는 역사적이다. 그럼에도 드러나는 모순과 조악함은 필자 개인의 무지의 소산이며 편협한 문제인식이길 기원한다.   김중만은 분명 한국의 대표적 패션, 상업 사진가이다. 언젠가부터 예술과 다큐멘터리적으로 격상되는 역량을 지닌 사진가로 독보적 위상을 지니고 있음도 사실이다. 우선 김중만의 이력은 누가 봐도 남다르다. 그의 외모에서 드러나는 패션(?)함에서도 매체적 스타성을 더하기에 충분하다. 오랜 외국생활이나 유명한 패션사진가의 지명도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포튜레이트에 내면의 빛, 신(神)을 읽어내는 미감(美感)까지 읽어내는 사진가로 극찬하는 데 여러모로 일조했던 것일까…. 아쉬운 건 이번 전시에는 도립미술관이 극찬한 그 사진들이 오지 않았나보다. 대형 카메라라 만들어내는 섬세한 디테일이나 대형프린트로 관람자를 압도하는 위엄까지는 공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과연 사회학적 시각을 가미하지 않았다는 태생적으로 존재(?)했다는 천부적 미감이 다큐멘터리 사진 안에서 어떤 다큐멘터리적 태도를 감당할 수 있는지 혼란스럽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혹여 사진에 붙어가는 알 듯 모를 듯한 모호한 언어적 유희가 김중만의 신화성에 걸맞게 제멋대로 핵융합반응이라도 일으키는 건지…. 하여간 디지털 프린트의 냉냉한 칼라에서나 프린터의 한계로 등장하는 알록달록한 결이나 얼룩 그리고 압정으로 고정한 위태로운 사진의 구부정함도 김중만의 거대한 이름값에 의문부호만 가중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물론 나의 무지함 때문으로 보이지 않는 걸 어쩔까 싶으니 답답함만 쌓인다.   성남훈은 분명 한국의 최고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세계적 저널인 타임, 리베라시옹, 르몽드 등에 사진을 싣고 어떤 세계분쟁지역이든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는 살아있는 한국사진의 전설이다. 불행히 그의 작업이 저널리즘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이미지의 차용과 단기적 순발력, 연출력에 경쟁력이 집중된다는 혹자의 비난에도 충분히 그의 열정과 추진력이라면 극복 가능하다 확신하기도 한다. 물론 줄기차게 생계의 문제로 고민하기는 하지만 결국 한국에서 메그넘 작가가 나온다면 단연 성남훈이다. 하지만 이번 사진전시는 의문이다. 전시기획 의도였을까? 세바스티앙 살가도와 대등할 장중한 스팩터클에 대한 성남훈의 동경이었을까? 루마니아 난민들, 소록도, 사라예보, 르완다, 인도네시아, 코소보, 에티오피아, 아프라니스탄, 이라크, 인도네시아 등 살가도에 대적할 만한 수많은 지역명으로 몇 장도 안 되는 사진이 하나씩 묶여져 있었다. 앱손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프린트는 칼라도 흑백이 되고(아프카니스탄의 사진은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전시될 당시 칼라사진이었다) 그 정감어린 흑백의 톤과 입자들은 과감히 뭉게져서(루마니아 난민들의 은입자 흑백프린트는 전설로 남아있는 걸작이었다) 거창한 사이즈로 확대되어 있었다. 사진에는 곳곳에 얼룩이 남아나고 간간히 어두워져 겹겹으로 메워져 있었다. 성남훈 회고전이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였던가? 아직도 혈기왕성한 그가 벌써 진행 중일 미완의 작업을 정리를 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건가? 고향사람들에 대한 지역적 안배였을까? 필자는 성남훈의 선택이 마냥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번 도립미술관의 전시는 한국사진계에도 길이 남아 날 대규모 기획전시 임은 분명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북까지 대작의 사진을 유치한 전북도립미술관의 추진력에 감사를 전하며 새로운 암흑기로 접어드는 한국사진계에서 흔들림 없이 작가적 역량을 발현하는 김중만, 성남훈 선생께도 경의를 표한다. 다양한 해석과 접근 그리고 발언은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경향이다. 정통 다큐멘터리의 공론성과 더불어 매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적공간의 소소한 일상의 다큐멘터리 또한 새로운 정형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 또한 다큐멘터리의 현실이다. 사진예술의 다원화된 틀이 동호인 중심의 살롱사진 일색인 전북의 사진문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김정우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백제예술대학교 및 여러 대학에 출강한 바 있으며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재 민족예술인총연합 전북지부 사진분과 이사, 전주시예술상 심사위원, 전라북도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 평가위원으로 활동하며 고사동에서 유니버셜스튜디오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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