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 |
[유미옥전]모성(母性)의 회화적 울림
관리자(2006-06-10 10:23:19)
글 | 최정환 작가·문학박사
지난 5월 4일, 우진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청년작가 초대전≫의 첫 번째 전시로 유미옥의 ‘열 두해의 그림일기’전이 열렸다. 전시 부제에서 보여지듯이 열두 살 난 자폐아의 어머니인 작가가 아들과 가족에 대한 애정과 신념을 드러낸 자전적 성격이 강한 전시회였다.
그녀가 이 지역에서 활동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전시가 시작된 주말에 습관처럼 전시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차 속에 여섯 살 난 딸아이가 잠들어있는 탓에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전시장 분위기만 살피고 나왔다. 이튿날 공교롭게 유미옥전에 대한 시평(時評)을 의뢰받았다. 그날 밤, 무심결에 집어와 책상 한쪽에 던져놓았던 카탈로그를 유심히 펼쳐 보았다. 그녀의 심경을 담담하게 토로한 문장 하나하나는 당황스럽게 했다. 경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문체가 감정을 짓이겼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견디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적 고뇌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허공만 바라보고 온 스스로에게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 후 한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다시 전시장을 찾았을 때 그제서야 필자의 눈에는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작가 유미옥의 삶과 가족에 대한 애정을 그린 한편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여타의 전시회와 다르게 작품의 명제가 그림 옆에 적혀있지 않고 전시장 입구에 명제가 적힌 카드가 따로 있었다. 그림이 명제로 해석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작품과 명제를 하나하나 찾아나갔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상태를 고해성사 하듯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있었다.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감정을 회화적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드러냈다. 어떤 장식적 요소나 조형적 현학 그리고 회화적 은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회화적 기반은 현재의 삶과 현실이었던 까닭에 작품은 다분히 직설적이고 묘사적이었다.
여인의 뱃속 태반을 통해 출산 후 느끼는 모성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 덤불 속에 가려진 자신의 모습이라든지, 핏빛 심장을 드러낸 여인의 모습으로 극한의 자기감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작가는 이에 대해 “아픈 마음을 좀더 승화해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림일기이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직설적이고 싶었고, 심장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자신의 가공되지 않은 본래의 감정상태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그녀의 심리적 추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작가의 불안한 심리와 가족에 대한 애정과 애환 그리고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인 관조적 입장이 순차적으로 드러났다. 이는 심리적 여유를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심리묘사와 감정표현에 많은 작품을 할애했다. 뒤엉킨 실타래와 핏빛 심장, 아이와 함께 차도르를 뒤집어 쓴 모습, 십자가에 내걸린 자신과 달빛 고요한 밤하늘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형상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녀의 공허한 심리는 <그리움>에 잘 드러난다. 자신의 시골집이 있는 석포리의 길을 보며 그린 이 작품은 타지에 와서 느끼는 작가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암갈색 길이 화면을 가로 지르고 어두운 청색과 함께 탁한 녹색이 대지를 이루고 있다. 어둠이 깔린 길 한가운데에 외로이 핀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상사화는 어느 스님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와 뒤엉켜 진한 외로움을 자아낸다. 손수건인지 새인지 알 수 없는 흰색의 조형은 화면에
적막감을 더하는 한편 노스탤지어적인 그리움과 향수의 메타포로 작용되어진듯하다. 작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다만 그녀의 시선을 통해 낯선 타향의 정적만이 느껴질 뿐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어머니 마리아가 감싸 안았듯 모든 인간의 상처를 안고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가족이라고 그녀는 확신하고 있다. 그녀가 아들을 감싸 안았던 것처럼 그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 역시 고치 속에 깃든 가족이었다.
그녀가 지켜야할 그리고 치유 받아야 할 가족과 아들에 대한 애정은 어떤 지독한 가뭄에서라도 사랑으로 지키고 피워내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드러난다. 아들과 늘 묶여 번지점프를 하듯, 샴쌍둥이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지만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확인하며, 가슴속에 한 땀 한 땀 새겨진 사연과 함께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득,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 가져오라 하여, 천사는 곱게 핀 꽃과 천진난만한 아이의 미소,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가지고 하늘로 가서 보니 변하지 않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뿐이었다는 이야기가 스친다.
자신과 가족에 대한 신념은 관조적 입장으로 정리된다. “세상에서 가장 무애한 웃음 짓는 아이를 통해 그윽하고 영원한 기쁨을 얻어 더 이상 바랄 것 없다”는 언급에서 작가의 정리된 시각이 잘 드러난다.
구름 위에 누운 아들과 구름을 머리에 인 자신의 모습으로 이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 초연한 상태로써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넓은 바다를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고사포 앞바다가 그녀에게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르쳐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은 정신적 안정이 그녀를 그림 앞으로 이끌었고, 이번 전시를 가능하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사포 앞 바다의 모습을 색색의 색연필로 거침없이 표현한 아들의 의지적 행동에 고무된 작가는 벽면 한쪽에 아들의 작품을 가득 채움으로써 ‘희망’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다.
수동적 여성성에서 벗어난 작가는 그녀를 둘러싼 여건에 담담하게 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자신과 가족을 위한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에 걸린 작품 중 몇 작품만을 제외하고는 근(近) 100일 동안에 열 두해의 경험과 감정의 파편을 모아 이미지화시켰다고 한다. 아이를 재우고 난후에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교동작업실에서 새벽까지 작업해야 했던 작가의 고충과 함께 심리적 안정의 방증(傍證)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기간이 짧았던 탓에 재료적 안정감이 다소 떨어지며 상징성만 강조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정련되지 않은 거친 느낌이 주제와의 관계에서 이질적 요소로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가 이를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어떤 조형적 궤변보다 솔직한 것이 사실이다. 독창성, 조형성과 작품의 완성도, 표현기법 등등을 떠나 자신과 자신의 일상을 묘사한 그림일기라는 성격을 구현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작품을 언급하는 것은 항상 부담스럽다. 개인적 감정에 치우쳐 작가의 내면을 오해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개인사를 들여다본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를 다시 문자로 드러내야 하는 부담감도 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열 두해의 그림일기’는 작가 유미옥이 약간은 다른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드러나는 자전적 성격의 전시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자신의 삶과 고통을 담담하게 드러낼 수 있을 정도의 정신적 여유 속에서 진행된 이번 전시회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가족’ 또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가정의 달 5월에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전시임이 분명하다. 아울러서 작가는 도록 마지막 장에서 보듯 사심 없이 그려놓은 암청색 그릇을 통해 “얼마만큼의 마음그릇을 비워야 할까?”라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며 전시를 마무리 하고 있다.
최정환 |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다. 전주신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조형미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4회의 개인전과 120여회의 단체전을 가졌으며 전라북도미술대전·전국무등 미술대전 초대작가, 구상작가회·토색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