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 |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열다섯번째 이야기]곰삭은 전통과 싱싱한 희망
관리자(2006-06-10 10:21:57)
글 | 조석연 (사)고악기연구회 대표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이라는 표현은 이제 어엿하게 하나의 고유명사, 혹은 상표로 확실히 자리 잡은 듯하다. 대가인 스승과 그 제자가 한 무대에 나와 전승과 창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선보였던 열다섯 번째 공연을 통해 필자가 느낀 첫 소감이 그랬다. 그곳에는 현재와 미래가 있었고, 곰삭은 전통과 함께 갓 버무려 내놓은 듯한 싱싱한 희망이 한 자리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무대가 열리자 먼저 네 대의 장고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어서 힘차게 내려치는 힘에 댓가지가 스스로를 이기지 못해 파르르 떠는 열편…. 젊은 네 남자가 뿜어내는 장고가락은 가히 끓어오르는 힘의 원천이었다. 이 화려하고 멋들어진 가락은 바로 뒤에 이어질 명인 명창과 그리고 그 제자의 미래가 어떨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서막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서로 한 나라에 태어나는 인연은 천겁,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하는 인연은 2천겁, 하룻밤을 함께 하는 인연은 6천겁, 부부가 되는 인연은 7천겁,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8천겁, 형제자매가 되는 인연은 9천겁, 그리고 스승과 제자가 되는 인연은 1만겁이라 한다. 부부가 되고,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지는 인연보다 더 지난한 길이 사제지간의 인연인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앞서 노래를 부르고 무대 뒤에서 제자의 노래를 숨죽여 듣던 이일주 명창이 제자인 장문희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한걸음으로 뛰어 나와 제자의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어깨를 감싸던 모습은 노래가 주는 감동보다 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그래, 내 새끼 수고했다!….
첫 무대는 이생강의 단소산조로 채워졌다. 전라도 가락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요성, 반음, 변청 등 시김새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음악이 산조라면 단소는 이러한 특징을 표현해 내기에는 악기구조상 한계가 크다. 그러나 이 한계를 뛰어넘어 신기의 연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추산 전용선은 어느 악기 산조에도 뒤지지 않는 기가 막힌 단소산조를 창조해냈다. 하지만 전추산은 워낙 까다로운 성격이라 제자육성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고, 마침내 그가 타계한 후 그의 산조를 제대로 재현해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생강은 녹음 자료를 통해 <추산류 단소산조>를 재탄생시킨 명인이었다. 특히 다른 악기의 산조에서 볼 수 없는 동살풀이장단이나 자진모리장단에 실린 새소리 묘사 부분은 추산의 단소산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생강만의 절정에 이른 기량이었다. 물론 단소산조 이전 그의 대금산조 안에도 새 한마리가 이미 살고 있었다. 푸르른 녹음과 같은 그의 연주 중간에 ‘뻐꾹! 뻐꾹! 뻑 뻐꾹! 뻐꾹!’하는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청아하고 싱그럽다. 이 고운 봄날 저녁에 그의 제자 이항윤은 스승과 나란히 앉아 함께 뻐꾸기를 불러냈다. 이생강이 연주하는 대금산조는 전남 진도출신의 대금명인 박종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가락이 한주환, 한범수를 거처 이생강, 서용석에게 이어졌는데 이생강은 그 가락에 자신의 음악성을 덧붙여 대금산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제 그 가락은 이항윤에게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젊은 연주자 이항윤은 조용하면서 끈기 있는 연주자로 정평이 나있다. 20여년을 스승으로 모셨으니 이제는 헛기침 하나만 듣고도 어디가 넘치거나 부족한지를 깨치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대금소리에는 묵직하면서도 화려한 스승의 선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푸르른 봄날 숲 속에서 암 수 한 쌍의 뻐꾸기가 울어댄다. 나, 당신을 닮고 싶다고….
두 번째 무대는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불리는 거문고의 무대였다. 소리 없는 거문고는 흰 화선지고, 그 위에 이윽고 술대인 붓을 내려찍으면 한 점의 수묵화, 곧 거문고 소리가 된다. 선비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그 무릎에 올려져 절제된 감정으로 고이 어루만지던 거문고가 발바닥으로 내려와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드러내는 산조를 담아내기 시작했을 때, 아마도 그때의 상황은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사건이었고, ‘망국적 풍조’라고까지 비난을 받았지만 거문고산조야 말로 다른 악기에서 맛볼 수 없는 남성적인 힘과 죄고 푸는 맛이 절묘하게 구사되는 기품 있는 최고의 산조로 꼽힌다. 이런 맛을 일찍 깨달았던 것일까, 명인 윤화중은 우연히 만나게 된 거문고산조와 거침없는 열애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 뜨거운 짝사랑은 결코 식지 않아서 폭풍우 같은 애착과 집념은 거문고산조 창시자인 백낙준에서 뻗어나간 한갑득류, 신쾌동류, 임동식류 거문고산조까지 모조리 섭렵하게 만들었다. 거문고 연주자답게 외모에서부터 고집스러움과 단아함이 배어나오는 위은영은 스승인 윤화중명인의 열렬하고 뜨거운 거문고 사랑을 먼저 배운 듯하다. 거문고를 다루는 모습이 조심스럽지만 야무지고 냉철하지만 뜨거운 스승의 손길을 그대로 닮아있다. 먼 산조 여행길에서 스승은 먼저 길을 내주기도 하고, 한 발 앞서 길을 안내해주기도 하고, 때론 정겹게 조곤조곤 얘기를 나누는가 하면 또 때론 감정이 격렬하게 폭발하여 생애의 굴곡과 아픔을 토하듯 해가면서 먼 길을 나란히 걸었다. 그들이 숨 가쁜 여행을 끝냈을 때 비로소 관중들도 거친 숨을 내쉬며 함께 미소 짓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목적지는 이미 가까워지고 있는 듯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면 산림풍경 너른 들 만자천홍 그림 병풍 앵가접무 좋은 풍류
세월 간 줄얼 모르게 되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세 번째 무대는 서술과 구성의 소리, 깨끗하면서도 힘찬 목청이 돋보이는 이일주 명창과 제자 장문희가 채웠다. 감기에 걸려 소리를 제대로 못 할지도 모른다는 사회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명창 이일주는 관록이 돋보이는 단가 사철가를 들려주었다. 새타령을 부르면 새가 날아든다는 독보적인 새타령의 명창 이날치의 손(孫)으로 태어나, 타고난 목과 능력으로 김소희의 애제자가 되었고, 오정숙에게 심청가와 춘향가를 배운지 4년 만에 전주대사습놀이 장원의 영예를 안았던 이일주는 한 평생 소리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흥보가 중 첫 번째 박타는 대목…. 그녀의 소리에는 탁하고 거친 수리성과 거칠면서도 무쇠처럼 단단하고 높은 철성이 모두 들어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사설은 귀에 정확하게 들려온다. 너름새 역시 넘치거나 흐트러짐이 없이 정교하다. 가히 동초제의 맥을 이어오는 최고의 명창이라 할 수 있으리라. 동초 김연수가 1930년 초 여러 판소리 명창들의 소리 중 좋은 점만 골라 창시한 동초제는 이일주 명창이 보여주는 정확한 사설, 정교한 너름새, 다양한 장단이 그 특징이다. 일찌감치 이일주 명창에게 동초제를 이어받은 장문희는 그 실력 역시 일찍 인정을 받았다. 이날치의 손으로 태어났음이 이일주 명창의 천복이라면, 장문희 역시 이일주 명창의 조카로 태어난 행운이 깃들었다. 그런 천운(天運)의 화답으로 장문희는 이일주 명창에게 배운 춘향가 중 한 대목을 받쳤다. 스승 앞에서 장문희의 춘향가는 유난히 열정적으로 느껴졌는데, 스승에게 건네받은 부채를 꼭 쥐며 의지하는 모습 하나로도 가히 스승의 존재가 얼마나 큰 지를 짐작케 하였다.
마지막 무대는 전라삼현과 승무…. 전라도의 독특한 삼현 가락인 전라삼현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겐 그야말로 자랑이며 행운이다. 이를 이어가는 몇몇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이 전라삼현 가락에 맞춘 춤사위는 정결한 승무였다. 승무는 정자선을 정점으로 그 꽃을 피웠다 하는데 그 후 그의 아들인 정형인에게 전수되고 정형인은 전주농고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승무와 삼현육각, 농악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 가락이 대금은 전태준, 피리는 이정열에게 전해져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고 승무는 전광옥에게 계승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오늘에야 전라삼현과 승무가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던 것이다. 이렇듯 어렵사리 마련된 자리에서 승무는 도립국악원 무용단장인 문정근이, 반주는 전태준, 이정열이 중심이 되는 전라삼현보존회 회원들이 맡아 연주하였다. 텁텁하고 강한 피리소리는 전라삼현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마치 약속된 선율이 없이 그냥 쭉쭉 뻗어 내리는 듯한 전라삼현 가락은 이음새보다는 끊고 맺는 듯한 느낌이 두드러졌고, 세련미보다는 거친 야생미를 더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그 가락에 맞춰 세모시 장삼에 고깔을 쓰고 빙빙 도는 연풍대며 살짝 살짝 내비치는 까치 걸음사위는 경기 승무와는 사뭇 달랐다. 전통음악마저도 일률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지금, 특징적인 지역 예술을 지켜가는 일은 다른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며 급선무라는 사실을 이 무대가 일깨우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 전승과 창조의 아름다움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참으로 가슴 뿌듯한 공연이었다. 제자를 위해 기꺼이 출연한 명인 명창의 참여로 무대는 값졌으며 또한 빛났다. 사실 제자라고는 하지만 이미 명인 반열에 들어있는 예인들이 그들 스승의 목전에서 때론 수줍고 때론 바짝 긴장한 채 공연을 펼치는 모습을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로 믿고 보듬어 주던 모습이 그 어떤 선율보다 아름다웠음을 고백한다. 그 제자들이 훗날 자신의 문하생과 스승을 한 자리에 나란히 모시고 펼치게 될 공연, 필자가 그 감격적인 무대를 구경하는 호사를 과연 누려볼 수 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가 되면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은 분명 역사가 될 것이다. 그때를 기다려본다.
조석연 | 한양대학교 음악학과 음악인류학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현재 (사)고악기연구회 대표이자 전북대학교 국악과에 출강중이며, 전주 MBC 라디오 ‘우리가락의 향연’ 진행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