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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 |
[자전거]스물아홉에 배운 자전차
관리자(2006-06-10 10:20:50)
글 | 이근수 그림쟁이 어느 이른 봄날에 큰 형 집에 놀러갔지. 올해 대학 졸업반인 종찬이가 막 중학교에 들어갈 때였지 아마. 아마! 이렇게 적고 보니 궁금하여 “사랑스런 이종찬 1994년에 몇 학년이었지?” 전화문자를 보냈더니 서 너 시간이 지나서 ‘띵동.’ “삼촌 답이 늦었네유 당시 까까머리 중학교 2년차였지요.” 까까머리 중학생이라. 씩씩한 젊은이 이종찬이 밤톨같이 작고 귀여웠던 제 모습을 떠올리나 보네. 아! 그러고 보니 벌써 열 두해가 지나가는구나. 이송민, 이종찬 만나면 공놀이도 하고 이런저런 놀이로 신났는데 그날은 저네들끼리만 자전차를 타고 집둘레를 빙빙 도는 게야. 혼자 제기를 차며 한바퀴씩 돌아오는 걸 구경하다 “나도 한번 타보자” “놓치마” “뒤에 꽉 잡아 절대 놓치마” 넘어지려는 쪽으로 손잡이를 돌리라는 조카 선생님 말씀을 굳게 잡고 아무리 작아도(그때 종찬이가 느긋하게 자라고 있어서 좀 작았거든) 삼촌이 꽈당 넘어지지 않도록 잘 잡아 주리라 억지로 믿으면서 첫 바퀴를 굴렀지. 한 바퀴, 두 바퀴 어라! 열 바퀴를 굴러가도 넘어지지 않아 종찬아 잘 잡고 있지. 하고 보니 벌써 놓았네. 한 두 걸음 뒤에 바로 놓았다 하네. 야호! 나도 자전차를 탄다. 그길로 신나서 집둘레를 빙빙빙 돌고 또 돌았다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아홉 봄날이었지. 자전차 부대 이건 다른 동네 아이들이 붙여준 우리동네 아이들 이름이에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른을 훌쩍 넘고 만난 어느 날 옆 동네 살던 동무가 다시 떠올려준 이름 ‘자전차 부대.’ 그 동무는 우리동네 아이들을 어느 영화 속 이야기처럼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떠올려줘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하나·둘 늘어난 자전차를 한대에 둘씩 셋씩 나눠 타고 각시바위·평평바위·우전시내로 다니며 멱도 감고 고기병·족대질로 고기 잡아 매운탕 끓여먹고 고등학교 때는 동네끼리 야구나 축구로 내기 시합을 많이 했는데 세 번에 두 번 넘게 이겼어요. 아까 옆 동네에 살던 동무네는 우리동네한테 거의 졌나봐요. 허름한 자전차에 키도 들쭉날쭉 오동나무 깎아 만든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타난 우리동네 아이들을 얕잡아 봤는데 붙고나면 늘 졌다네요. 생각 할수록 고소롬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나한테만은 이 부대생활에서 두 가지 아픔이 있었다오. 자전차를 못탔거든.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아이들은 자전차를 배우기 시작하는데 더 작은 내가 다리가 닿아야지. 자전차 한대 놓고 동무들이 줄지어 타려 드는데 한번 두 번 꽈당꽈당 넘어지다 보면 뒤로 밀리거든. 우리집 자전차를 끌고 나왔어도 다음에 타지 미루다 보니 나이는 먹고 동네 동생들은 벌써 배워 내달리는데 어린 마음에 못 탄단 말도 못하고 (동무들이야 다 알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오르도록 배우질 않아 늘 실려 다녔지. 짐받이 없는 자전차를 탈 때는 손잡이와 안장사이 봉 위에 앉아 가거든 내려서까지 엉덩이가 아프지. 다음에 또 타게 되거든 바라만 봐도 아픔이야. 두 번째 아픔은 그때 자전차 여행이 유행처럼 돌았는데 한번도 끼지 못한 아픔이 있지. 모래재를 넘고 마이산으로 남원으로 임실 순창으로 전설처럼 낑낑대며 다녀온 이야기를 들을 때 같이 신나며 땀 흘리다 침만 꿀꺽 그럼 자전차를 못 탔다고 아픔만 있는가. 아니지 엉덩이도 아프고 동무들 힘들 때면 내려서 냅다 내달렸거든. 자전차와 발맞추어 달리다 보니 이게 오늘 내가 잘 달리는 한 터무니라오. 자전차 전용도로 스물아홉에 배운 자전차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이길 저길 온 동네를 돌아다녔네. 서른 몇 살까지는 아직 한창이라 사람을 태우고 덕진마을에서 평화마을 집까지 이십분만에 왔다고 자랑하고 효자마을로 이사해서는 우전시내길을 달려 빠르면 십오륙분 천천히 가도 이십분이면 달린다고 뽐내며 다니던 어느날 보니 그 길이 ‘★’자전거가 못 다니는 길이라 이걸 어쩌나 궁리 끝에 내 것은 자전차요 또한 이 표지판이란게 거리거리 있지 않고 골목에 있는거라 딴데 보고 눈감고 못 본척 들어섰지. 그래 모르고 들어선 걸 어떻게 해. 냅다 내달렸지요.(이거 공소시효가 있는지 몰라도 있어도 벌써 지났을게요.) 그 뒤 얼마쯤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가던데요. 이게 자전차를 타고 사는 내가 보기로는 허울이라. 옛날엔 길이 사람 다니는 길이었는데 오늘 길은 찻길이라. 물론 차야 사람이 몰고 가지만요. 사람 길은 인도라 폭이 좁은데 거기를 다시 쪼개 자전거 전용도로를 내는게 아슬아슬 묘기더라. 인도도 좁은데 끼어 가자니 사람과 부딪칠라. 차 막는 말뚝 피하랴 막아 세운 차 비키랴. 날마다 숨 막히는 외줄타기 나는 못하겠더라. 그래 난 오늘도 자전차전용도로를 달리고 있네. 알록달록 깃발 꼽고 떼 지어 새만금을 놀러가는 자전거가 아니라 일터로 학교로 시장으로 동무 만나러 가는 길에 기름 탄내 날리지 않는 내 땀으로 굴러가는 자전차를 꿈꾸네 자전차길을.   이근수 | 전북민중미술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전주 교동에서 미술가(家) 아름다운 살음 ‘님바래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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