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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 |
[자전거]그래도 사라지지 않을
관리자(2006-06-10 10:19:12)
글 | 황성희 정읍통문 기자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인기를 얻었던 시절, 집집마다 한 두 대 꼴로 자전거를 소유했던 때가 있었다. 일단 자전거를 사게 되면 자전거는 타는 시간이나 타는 사람의 성정에 따라 자전거 수리점인 자전거포를 들락거리게 된다. 자전거포는 단지 수리점만이 아니다. 자전거 판매점 역할 또한 점포를 지탱하는 주요 기능이다. 소도시나 시골에서 자전거 판매점은 동시에 자전거 수리점인 자전거 포였다. 정읍의 남산동, 행정구역상으로는 시기3동인 이곳에 오래된 자전거포 하나가 있다. 주인 최인기씨(44)는 자전거 수리공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자전거포를 소유하게 된 '자수성가형' 이다. 인근에 남자 고교인 호남고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점포에서 주인 최씨는 70년대 초반부터 자전거를 다룬 이후 근 30년 가까이 자전거와 더불어 살고 있는, 정읍 자전거 역사의 산증인이다. 인구가 30만에 가까웠던 시절, 중고교 남학생들의 90%이상이 자전거로 통학하고 자전거가 시민들의 주 교통수단이었던 호시절은 15년 정도 이어지고 막을 내렸다. 점점 줄어가다 어느덧 절반이상이 빠져나가 버리고, 자전거 대신 차가 주요 교통수단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자전거 인구도 거의 반으로 줄었다는 것이 남씨의 진단이었다. 특히 자전거포의 일손을 한가하게 만든 요인은 학생들의 자전거 이용률 저하였다. 80년대를 자전거 전성기로 꼽는 최씨에 따르면 80년말과 90년대 초반 자전거 보유율이 최정점을 이룬 후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중·고등학교 학생들 중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예전 7~80년대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대신 요즘은 초등학생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는 편이다. 경제적 이유로 초등학생들에게 자전거를 사주지 않았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은 거의 자전거 한대씩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생들 자전거는 통학 등 이동 수단이기보다는 놀이용이다. 그렇듯 요즘 도시인들에게도 자전거는 취미나 운동 목적으로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과거 자전거의 주종을 이뤘던 신사용이나 반신사용 자전거 자리를 산악자전거(MTB)가 잠식해 들어가 절반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씨의 자전거포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절반은 산악자전거를 사간다. 주요 이동수단의 자리를 자동차에게 내준 시점에서 자전거가 살아갈 방법은 자전거 도로를 확보하는 길이다. 정읍도 시를 한바퀴 순회할 수 있는 도로를 계속 만들고 있고 정읍천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형성돼 있어 외관상으로는 제법 조건이 갖추어진 편이다. 천변 자전거도로만 보면 자전거와 친한 도시처럼 보인다. 그런데 최씨에 따르면 자전거 도로가 견고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지지 않아 자전거 도로 이용률이 낮다고 꼬집었다. 도로의 노면도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은 여러 번 있었다.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된다면 자전거 타는 인구가 훨씬 늘 것이라며 기대 반, 아쉬움 반을 표현했다. 최씨 가게처럼 시내의 자전거포는 자전거 판내점을 겸하면서 살아나가고 있었다. 자전거 수요가 절반 수준으로 줄긴 했지만 자전거는 놀이나 운동용으로 정착, 여전히 잔잔한 수요를 이어가고 있어 최씨가 가게 문을 열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한다. 시골의 자전거포는 어떤가? 순수한 자전거포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도 사회 경제적 변화가 가인돼 있다. 도시인들이 자전거에서 자동차로 교통수단을 옮겨간 반면 시골 사람들은 바로 차로 점프하지 못하고 오토바이를 선택하게 된다. 오토바이는 90년대 이후 농촌지역 주요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주로 배기량 50cc가 주종이다. 농촌지역의 경제여건상 선뜻 차를 구입할 수는 없었다. 또 한가지, 자동차는 오토바이에 비해 까다로운 면허시험을 거쳐 면허증을 따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정읍과 부안의 경계 정읍 영원 지역. 소재지에 하나 있는 오토바이 판매점의 전신이자 정체는 자전거포였다. 주인 우동균씨(57)는 군대가기 전인 20대 초반에 자전거포를 시작하여 현재는 오토바이 판매와 수리를 하는 것으로 생계를 도모하고 있다. 그 역시 30년 가까이 면소재지에서 자전거를 만지고 팔며 터전도 잡고 아이들도 교육시켰다. 하지만 시골에도 교통수단의 주종이 변함에 따라 먹고살아야 하기에 그의 직업에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메뉴가 추가됐다. 시골 사람들은 근검한지라 한번 자전거를 타면 꾸준히 고쳐가면서 타서 수리점 일이 항상 넘쳤다고 말했다. 현재도 마진을 남기는 자전거 판매보다 자전거 수리를 여러 대 하는 편이 이윤이 남는다고 전했다. 간단한 농기계 수리도 물론 하고 있다 시골에 자전거가 집집마다 보급된 시절, 시골 장터를 도는 장꾼들도 짐 자전거를 이용하여 물건을 운반했다고 한다. 특히 장날 고추푸대를 잔뜩 실은 짐 자전거가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우씨의 손은 오랜 기계수리에 손등과 손가락, 손톱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 손에 든 담배를 들면 유난히 하얗게 보인다. 아스팔트 포장이 안 된 시골길 덕분에 자전거포에는 일감이 항상 넘쳤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담배연기처럼 공중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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